시 산책[Poem]
                
              향수---정지용
                물오리
                 2018. 5. 1. 10:23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의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우 늙은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섬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짓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