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선배님은 작은 예수님
내 고향 선배님 세례명은 베르나데트이다. 그리고 이분은 수필의 대가 반숙자 선생님이시다.
힘들고 캄캄했던 내 젊은 날, 선배님은 나를 지켜준 한줄기 빛과 같은 분이시다. 언제나 나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고 험한 세상 잘 헤쳐 나가도록 격려와 용기를 주신 분이다.
1978년 겨울, 심장 마비로 갑자기 떠난 남편 때문에 망연자실 넋이 나가 있을 때, 선배님은 긴 위로의 편지를 보내주셨다. 그 당시 음성읍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고 계셨고, 또 한 사람 제천 초등학교에 근무하다가 사정이 생겨 아가들과 친정집에 살았던 아우, 우리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차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마음이 열리고 입이 열렸다. 선배님은 상한 마음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셨다. 모태신앙인 선배님은 그 당시도 주님의 딸로서 장애 우와 힘든 사람들을 보듬고 계셨다.
나는 일 년 남짓 남편 탈상을 마치고 80년도 봄, 철없는 어린 딸들과 함께 이삿짐을 가득 실고 서울 변두리 이곳에 말뚝을 박았다. 어차피 꺾어진 팔자 딸아이들만이라도 잘 키워보자 내심 작정을 했고 그로부터 나는 일하는 엄마가 되었다.
가끔 보내 주시는 선배님 편지는 늘 길었다. 머리글에는 십자가가 그려있고 <주님의 평화>라는 메시지 아래 몸과 마음이 함께 평화로운지 꼬마들도 충실한지 궁금할 때마다 기도했습니다.라는 안부와 씩씩하게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응원의 글을 보내주셨다. 나는 그 편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자리 잡아갈 무렵 두 분을 우리 집에 초대했다. 우리는 그간 못다 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고 이튿날, 인근에 있는 안양유원지, 숲 속의 빈터라는 카페에서 세 사람은 마주 앉았다. 선배님은 수필로 등단 준비를 하고 계셨고, 아우는 교육장, 나는 사업, 서로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축배의 잔을 높이 들었다.
시간이 가면서 내가 하는 일과 아이들은 그런대로 순항했다. 그러나 사춘기라는 그 폭풍에서 감당이 안 될 때 나는 선배님을 찾았다. 기쁜 일이 있을 때도, 삶이 힘들 때도 박교장 아우와 달려갔다. 그때마다 우리 손을 잡아 토닥여 주셨고 명쾌한 답도 주셨다.
막내가 대학 입학을 했을 무렵 원고지 다섯 권과 볼펜 두 타스가 선물로 왔다.
“혜경 엄마, 이제 시작하세요. 가슴속 이야기를”
라는 메모와 함께 어디에 누구를 찾아가라는 당부의 말씀도 적혀 있었다. 나는 말씀대로 일주일에 한 번 하던 일을 잠시 접고 수필 공부를 시작했다. 그 당시 선배님은 주목받는 작가가 되셨고, 많은 사람들이 선배님의 따듯한 글을 좋아했다. 그리고 수필계에서 받는 상은 다 휩쓸어서 일일이 나열할 수가 없다.
선배님의 삶은 검소하고 알뜰하셨다. 농사를 지어 가을이면 이것저것 보내주셨는데 잘 생기고 튼실한 것만 보내 주셨다. 언젠가 댁에 가보니 손가락 굵기 고구마를 쪄서 식탁 위에 놓인 것을 나는 보았다. 쪼그만 마늘 한쪽. 파뿌리 하나 버리지 않으셨다. 그릇도 누렇게 변한 플라스틱을 그냥 쓰셨다.
“나는 버리는 걸 못해요” 웃으시며 하신 말씀이다
그분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지 어언 40년, 나로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 선배님의 사랑을 먹고 아우님은 교육장, 나는 졸필이지만 수필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늘 감사하며 거룩하게 사신 선배님의 삶, 부족한 필력이지만 글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선배님은 하나님 말씀을 몸소 행하신 작은 예수님이시다.
2020년 올해 '깊은 골짝 옹달샘'에 연재했던 글이 '바오르의 딸' 출판사에서 채택이 되어 <미루지 않는 사랑> 이 출간되었다. 주님께서도 인정해 주신 글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특별한 딸에게 복을 흔들어 주셨다.
'평화의 싹이 돋는 사랑의 숲으로 오십시오!
성경의 깊은 골짜기에서 내는 소리와 울림을 듣고 , 주님의 말씀을 눈으로 읽지 않고 마음으로 읽어 내는 이 분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 한자리에 평화의 싹이 돋는 사랑의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 도종환 시인의 추천 글이다 -
책을 받아 들고 " 주님,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늘 아버지께 감사드렸다고 눈시울을 붉히셨다.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요즘 그런대로 강건하셔서 참 고맙고 감사하다.
사십 년의 긴 시간 "소중하고 귀한 인연을 주신 주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이제 우리 셋은 다 주님 딸이 되었다.
백야리 수목원에서
2020년 10월호 ㆍ한국수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