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Essay]

안양천에서 무심천으로

물오리 2021. 7. 11. 16:10


유년 시절 우리 집은 개울가 옆이었다.
언제나 그 개울은 맑은 물이 흘렀다. 그것도 장맛비가 지나가면 둑 아래 자갈밭이 잠길 만큼 물은 넘실거렸다. 소꿉놀이하던 동무들과 흐르는 물속에 잔돌로 담을 쌓으면 물은 가슴까지 차 올라왔다. 그 속에서 물장구치며 놀았다. 나는 물속에서 놀던 그 느낌을 지금도 기억한다. 부드럽게 나를 감싸 주었던 간지러운 추억, 뿐만이 아니라 송사리랑 모래무지 잡고 소꿉놀이도 했다. 봄이면 개울가에 돋아난 돌미나리를 뜯었으며 둑방에서는 냉이와 벌금자리를 캤다.

큰 언니 시집갈 때 어머니는 개울 자갈밭에 양은솥을 걸고 양잿물에 광목을 삶았다. 흐르는 물에 누랫던 광목은 하얗게 빛이 났다. 그 천은 이불 홋청, 햇댓보, 방석으로 쓰이고 언니는 광목에 수를 놓았다. 그 시절은 부모님이 계셨고 형제들이 있었다. 여름밤이면 박하 향이 나는 냇가에서 언니랑 목물로 더위를 식혔으며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밀개떡을 먹었다. 들마루에 누워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세었고 아버지가 피우는 모깃불 곁으로 반딧불은 불을 밝히며 지나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무심천 냇가를 걷는다 . 마음을 내려놓고 걷는다는 무심천, 물을 따라 거닐다 보면 고향 냇가가 보인다. 거의 사십 년 살았던 안양천을 뒤로하고 고향땅 청주로 이사를 했다. 평생을 냇가 곁에서 살았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아름다운 유년의 개울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냇가를 따라 거닐다 보면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졌다.
"잘 잤니? "

물오리 한쌍이 사이좋게 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침 햇살에 비늘을 반짝이며 튀어 오르는 피라미 떼를 보노라면 나는 걷던 길을 멈춘다. 마치 살고 있음이 기뻐서 축제를 벌이는 몸짓인 것만 같다. 생각해 보면 매일매일 새날을 맞이하는 우리의 삶도 축제가 아닌가.

이사를 앞두고 생각이 많았다. 딸들이 살고 있는 일산으로 갈까, 아님 고향땅으로 갈까, 생각지 않게 이년 넘게 병치레를 했다. 그간 딸들은 나를 캐어 하느라 애를 많이 썼다. 곁으로 가면 나를 또 살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터, 조금이라도 편히 살게 해 주고 싶었다. 결국 나는 내가 흐르는 무심천 곁으로 왔다. 우선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선배님이 계시고 유년에 함께 놀던 동무들도 있다. 같이 자란 사촌 동생도 곁에 있고 글 친구도 있어 감사하다.

집수리, 이사짐, 여러 가지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사를 한 새 보금자리는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정 남향집이다. 몇 해 꽃을 피우지 않아 뽑아 버릴까 했던 게발선인장이 이곳에 와서 연분홍 꽃봉오리를 달았다. 그리고 지난해 선배님 댁에서 한가닥 얻어온 안시리움도 꽃이 핀다. 꽃들도 햇님 덕분에 다투어 핀다. 볕이 가득 들어오는 창가에 동그란 테이블을 마련하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꽃들과 인사하며 차 한잔 마시는 여유도 누린다.
'삶은 하나님 아버지가 주시는 선물' 모든 일을 주관 하시는 그분이 계시기에 나는 평안하고 기쁘다. 그래서 일상이 감사다.

돌돌 여울지며 흘러가는 징검다리에 앉아 있으려니 초등학교 때 불렀던 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

2022 3월 ㆍ 한국수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