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Essay]

시골 인심

물오리 2021. 8. 9. 18:05


"제가 들어다 드릴게요. 저도 시골 출신이라 이런 일 좋아해요"
갑자기 달려들어 내 손에서 물이 가득 든 양동이를 빼앗아 들고 갔다. 그리고 두서너 번 물을 더 길어 주었다. 엊그제 텃밭에서의 풍경이다.
당근씨를 흙에 묻고 물을 주는데 일어난 일이다. 선배님과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했다. 삼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얼굴, 가던 길을 가는 그녀에게
"복 많이 받아요" 얼떨결에 내가 그녀에게 해 준 말이다.


얼마 전에는 누군가 상추를 박스에 가득 담아 선배님 사시는 아파트 입구에 놓고 ㆍ가져다 드세요 ㆍ라는 메모가 들어 있었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시골 인심은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서울 변두리 사는 동안 간간이 이곳 고향을 찾았다. 선배님이 계시기도 했고, 내가 자란 곳이기에 부모와 형제, 동무들의 추억이 있어서다. 뿐인가 동창이었던 애들 아빠랑 데이트를 했던 곳도 냇물이 흐르는 이곳 수정교 둑방이다. 기적을 울리며 달리는 기차가 있었고 그와 만나는 날 저녁은 달맞이 꽃이 예쁘게도 피어 있었다.

세월은 어느 사이 나를 이쯤으로 데려다 놓았을까, 한 순간에 급행열차처럼 확 지나간 느낌이다. 그래도 꺼내어 볼 수 있는 추억이 있음이 감사하다.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시월상달이 되면 어머니는 고사를 지내셨다. 나는 그 시루떡을 언니랑 집집마다 나누어 주러 다녔다.
"남서방 딸이 구나"
떡 접시를 받으시며 나를 보고 웃던 이웃집 아주머니, 그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유년의 시간은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해 준다.

정겨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이곳
시골은 지금도 인정이 넘치고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는 주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