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Essay]

김을 재며 --- 시어머님 생각

물오리 2017. 1. 26. 16:59

 

  

   모처럼 김을 잰다.

   시골 사는 동창 중에 깨 농사를 짓는 친구가 있어 들기름을 부탁했더니 택배로 왔다. 금세 짠 들기름에 참기름 조금 넣어 한 장 한 장 재다 보니, 문득 이맘때면 김을 재시던 시어머님 생각이 난다.

   동지섣달 긴긴밤 두레상 위에 커다란 쟁반을 놓으시고 조선 김을 솔잎으로 정성껏 바르시던 어머님, 그 어머님 생각을 하면 단아하고 고우셨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키는 작으셨지만 매무새가 단정하셨고 어머님 옆에 가면 언제나 코티 분 향기가 났다. 아침에 일어나시면 머리부터 가지런히 손질하시고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뵌 적이 없다.

  음식 솜씨 또한 남달라 어머님이 해 주시는 음식은 참 맛이 좋았다. 요즘처럼 설 명절이 다가오면 큰 가마솥에 사골을 고아, 양지, 간, 콩팥, 무, 다시마, 그 국에 밥을 말아 먹으면 그야말로 일품,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어느해인가 시월 상달 고사를 드리는 날이었다. 돼지 머리가 그대로 배달되었는데 어머님은 돼지 입을 벌리고 이빨을 구석구석 칫솔로 닦으셨다. 눈은 뜨고 있고 젊은 새댁은 도와드리다가 도망을 쳤다. 일을 잘하지 못해서 그릇도 잘 깨 먹고 실수 연발이어도 늘 사랑으로 감싸 주셨던 어머님.

   별이 초롱초롱하던 여름밤, 홑이불 다림질 하실 때 나는 그 끝을 잡고 있었다. 걸터앉은 툇마루에서 숯이 담긴 손다리미를 요령있게 이리저리 구겨진 홑청을 다리시며 하신 말씀은 지금도 미소가 지어진다.

“애야, 지금은 혼인 말이 들어오면 맞선을 보지 않니, 나는 사진만 보고 시집을 왔단다. 만약에 선을 보았다면 키가 작아 너희 아버님과 혼인을 했을까싶다 나는 그 시절 덕을 보았지.”

   하시며 수줍게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긴 아버님은 키도 작지 않으셨고 지금으로 말한다면 훈남이셨다. 아들 여섯 딸 둘, 팔 남매를 사랑으로 키우셨고, 며느리들도 언제나 따뜻한 눈으로 봐주셨던 어머님, 그 시절의 추억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정유 년 설 명절 앞두고 나는 그 어머님이 새삼 그립다.

  이번 설에 외손들이 우리 집을 다녀간다. 손녀딸이 유난히 김을 좋아해 동지섣달 긴밤, 나도 어머님처럼 조선 김을 정성껏 잰다. 조잘대며 맛나게 먹을 손녀 딸 얼굴을 떠 올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