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Essay]

고향은 따스한 곳

물오리 2022. 8. 21. 16:44

 

이른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이 깬다.
창문을 열면 오른쪽 전나무 숲에서 들리는 새들 노랫소리가 참 좋다.
“너희들도 잘 잤니?”
나도 화답해 준다. 나르는 새도 먹이시는 그분께 감사 기도드리고 하루를 연다.

서울에서 사십여 년 살다가 고향 땅 청주로 이사 온 지 일 년이 되어 간다. 유년 시절 개울가
옆에서 자랐던 까닭에 무심천 곁으로 왔다.
냇가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예쁜 꽃들이 눈에 띈다. 아침 이슬 머금고 피어있는
자잘한 꽃들과 파릇한 풀들,
뿐만이 아니라 피라미 떼는 눈부신 햇살에 비늘을 반짝이며 수면 위로 튀어 오른다.
참 신기하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우람하게 자란 나무가 많다.  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휴양림인 듯 시원한 그늘과 은은한 향기를 뿜어 심신의 안정을 주어서 나는 이 골목 산책길을 좋아한다. 

언제부터인가 길을 나서면 의자를 찾게 된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있던가. 물같이 흐르는 시간들은 어느새 나를 노년에 들여놓고
오늘도 무심히 흐르고 있다. 볕이 잘 들어 꽃들도 다투어 피는 남향집에 편히 살고 있는데,
단 한 가지 아파트 주변에 의자가 없었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데 아쉬웠다.
면적이 부족한 이유겠지만......
이른 저녁을 먹고 주변을 산책을 하는데 실바람이 분다. 이럴 때 벤치에 앉아 여유 있게
바람을 쏘이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궁리 끝에 관리소를 찾아갔다.
의자 이야기를 안건으로 접수를 했는데 위원회에서 결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동안 소식이 없어 어려운 일인가 싶었는데, 드디어 연락이 왔다.
그리하여 전 나무 아래 아담하고 예쁜 의자가 설치되었다.

팔월 중순, 육거리 시장 구경을 하고 들어오는데, 잣나무 의자에 앉아 계신 분이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 연배가 높으신 어른이다.
“나오셨어요? 바람이 시원하네요.”
잠시 담소를 나누고 들어왔다. 입추가 지나고 말복도 지나니 조석으로 가을바람이 분다.
잠자리도 날고 하늘도 구름도 아름답기만 하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흔쾌히 설치해준 관계자분들이 고맙다.
역시 고향땅은 노년을 배려해주는 따스한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