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책[Poem]
3월의 기도 ---김연수
물오리
2024. 3. 1. 10:05
지난 겨우내 잎지고 눈 덥힌 산과 들에
겨울 복음서를 펼쳐주신 분이시여
나목의 여린 가지가 간직했던 만큼의 꿈이
파릇이 움트는 이 계절엔
금심걱정의 회색 커튼 일랑 훌훌 걷어내고
새로 솟는 기도의 샘물을 긷는 부지런으로 축복하소서
눈발 채 녹여내지 못한 우리네 마음 뜨락에도
따사로운 봄 햇살 넉넉히 부어주시어
소박하지만 드높은 소망을 씨 뿌리게 하소서
꽃 피우는 일 하나로 목숨을 사르듯 눈비 섞어 치는 꽃샘바람 속에서도
가지마다 줄기마다 온통 꽃을 피운 봄들의 뜨거움으로
당신과 우리 사이에 우리와 우리 사이에
사랑의 고운 꽃 피우고만 싶습니다
천천히 복음서를 넘기시며 트여오는 봄 누리에
새 말씀을 적으시는 분이시여
기도의 샘가에서 아직도 침침한 눈을 씻고
봄 말씀 새로읽는 우리들의 척박한 뜨락에
낙화의 믿음 고루뿌려 소망의 순 튼튼히 키워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