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여행 - 우리나라 좋은 나라 -
“ 엄마 홍콩여행 가실래요?“
“ 홍콩? 좋지”
큰딸이 느닷없이 권했을 때 멀지도 않고 일정도 삼박사일, 크게 힘들 것 같지 않아서 나는 쾌히 승낙했다. 준비하면서 볼만한 곳과 기온을 검색해 보니 홍콩은 우리나라보다 16~20도가량 높은 초가을이다.
정유년(丁酉年) 12월 중순, 성탄절을 앞둔 요즘, 전례 없이 한반도에 한파가 몰아닥쳐 영하 12도를 넘나드는 매서운 날씨인데, 홍콩은 여행하기 딱 좋은 가을이란다. 얇은 옷 한 벌과 몇 가지 부식을 챙겨 짐을 꾸렸다.
19세기 초, 아편전쟁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된 홍콩, 그 홍콩이 백여 년 만에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그리하여 ‘홍콩특별행정구’가 설립되었고 긴 영국의 식민통치가 막을 내렸다는 소식은 매스컴을 통해 들었다. 전자, 금융, 무역이 발달하여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내가 아는 지식은 여기까지인데 그래도 기대가 되었다.
우리는 따뜻한 반코트를 입고 홍콩 가는 밤 비행기에 올랐다. 낯선 나라를 가는 설레 임에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딸과 나는 어느 곳부터 구경할까 지도를 보며 살펴보았다. 드디어 3시간 남짓,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했는데, 포근한 날씨에 입었던 외투를 벗어들었다. 반소매를 입은 사람, 패딩점퍼를 입은 사람, 긴 코트를 걸친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오고 간다. 짧은 시간의 비행에서 지구촌의 기온 차이가 신기했다. 현지 시각 새벽 1시, 우린 공항과 연결된 호텔로 향했다. 길목마다 곧 다가오는 성탄절 트리 장식으로 분위기가 조금 들떠 있었다.
첫날이 밝았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관광을 나섰다. 거리풍경은 중국인과 외국인, 각종 인종(人種)들의 공존이라고 할까, 이층버스가 다니고 사람들은 분주하게 거리를 누빈다. 나는 먼저 란타우섬 서쪽에 있는 '옹 핑 빌리지'를 구경하기로 했다. 시내를 감상하며 낯선 사람들과 버스를 함께 탔다. 케이블카 터미널에서 승차권을 받아 들고 6km 나 되는 하늘길을 천천히 올랐다. 산과 바다, 그리고 해변을 따라 우뚝 선 높은 빌딩들, 란타우섬의 거대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저곳 사방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30분 걸려 정상에 도착했는데, 눈에 띄는 것은 안개 속에서 드러나는 34m 높이의 청동 좌불상이다. 큰 것을 좋아하는 그들답게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이곳은 불교를 테마로 마을을 조성했단다. 높은 계단 오르기 체험을 뒤로하고 딸과 나는 열대성 나무들이 있는 숲속을 걸었다. 전통차집이 있고 음식점, 그리고 홍콩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두 번째 날은 카오룽 반도에 있는 호텔인데 야시장 근처라고 했다. 낡은 고층 아파트가 보이고 주변은 공구상가들이 가득한 지역이었다. 짐을 풀고 침사추이로 가는 일정이다. 나가는 길에 동네 주민들이 이용한다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간판에는 4대째 내려오는 음식점이라고 오래된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나는 채소가 들어간 국수를, 딸은 닭고기 볶은 밥을 주문했다. 이내 음식이 나왔는데 반찬이 한 가지도 없다. 그 흔한 단무지도 없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주문한 음식 한 가지만 놓고 먹는다. ‘우리는 찬이 풍성하게 나오는데’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가져간 김치를 꺼내 놓았다. 침사추이 거리는 유럽의 어딘가를 떼어 놓은 듯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예전에 쇼핑하러 홍콩 간다는 말은 들었다. 명품을 싸게 팔아서라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그 명품에 별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 물건도 너무나 훌륭하기 때문이다. 값비싼 물건들을 눈으로만 구경하고 우리는 곧장 야시장 몽콕에 도착했다.
어둠이 슬금슬금 잦아드는데 시장 통로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어느 팀은 아코디언연주를, 어느 팀은 반짝이 옷을 입고 우아한 댄스를, 그리고 신나게 드럼을 치는 재즈팀, 저마다의 연주와 노래로 솜씨를 발휘하는데 나이가 지긋한 실버들이 많았다. 잠깐 음악 감상을 하고 시장에서 유명하다는 딤섬 집을 찾아갔다. 번호표를 받고 자리에 앉고 보니 이곳저곳 한국의 젊은이가 많았다. 몇 가지 주문을 해서 맛을 보았는데 역시 느끼하고 향이 강했다. 그리고 나는 그 유명한 야시장을 돌며 구경을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눈에 들어오는 상품은 허술했다. 결국, 바나나를 넣어 만든 과자와 사탕 몇 개를 샀다. 삼일 째 되던 날, 행정 중심지라는 빅토리아 피크 관광인데 해발 396m에 있었다. 빅토리아 산의 미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 정상 중간쯤, 중국의 프라이팬 모양으로 지었다고 안내지에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서‘마담투소 홍콩 박물관’을 관람했다. 아시아 유일의 밀랍인형 전시관이다. 마이클 잭슨, 비틀스, 성룡, 오드리 헵번, 엘비스 프레슬리, 그리고‘해를 품은 달’에서 주연을 한 김수현씨 까지, 백여 점이 전시되어있었다. 실감 나는 피부와 표정, 실물 크기, 어찌나 정교한지 그들과 마주 보고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들과 정답게 포즈를 취하고 기념 촬영을 했다. 딸은 꼭 봐야 하는 밤 풍경이 있다고 나를 앞세워 택시를 잡았다. 완차이에서 침사추이로 가는 작은 뱃길, 승선하기 전부터 야경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했다. 마치 별천지에 온 듯했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 옛날 유행가지만 그 노랫말이 떠올랐다. 습도가 높았으나 그 밤은 고단해서 단잠을 잤다.
귀국하는 날, 10시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우리는 서둘러 짐 정리를 하고 6시에 호텔에서 나왔다. 택시를 잡아탔는데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다. 서툰 중국말로 딸은 열심히 설명했고 알아듣는 듯했는데, 그 기사분은 엉뚱한 곳을 돌고 있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을 했고 딸아이는 길 찾기를 핸드폰에서 보여주며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가까스로 탑승했다. 결국, 빙빙 돌아 요금은 더 나왔고 좌석에 앉았을 때, 비로소 기사분의 의도를 알고 나니 헛웃음이 나왔다.
홍콩의 주민 90프로가 중국인이라는데 본토의 느낌이 많이 났다. 내가 본 그들은, 옷차림도 어둡고 표정도 어두웠다. 높은 건물 밖으로 빨래를 널었는데 혹여 바람에 떨어지면 그 옷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여유 있는 부자들도 있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좀 고달파 보였다. 어찌 되었던 큰애가 주선해준 홍콩여행, 공항이 있는 란타우섬, 대륙이 붙어 있는 구룡반도, 홍콩의 중심지 홍콩섬, 나는 곳곳을 즐기며 구경을 했다. 그리고 돌아가기 전날, 이곳에서 일요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또 감사했다.
여행 중에 가장 기분 좋았던 것은, 야시장 길에서 만난 우리나라 화장품 매장이다. 한국의 화장품이 질이 좋다는 말이 실감났다. 그리고 어려웠던 것은 역시 음식이었다. 딸은 그런대로 이곳 음식을 먹는데 나는 나이든 토종 한국인이라 그런지, 도무지 입맛에 맞는 것이 없었다. 진한 향이며 그 느끼함, 조금 싸서 간 김치와 고추장 덕을 톡톡히 보았다.
오후 세시 넘어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아침도 거르고 고생하다 밟은 우리 땅,며칠 만에 만나는 내 나라 사람들은 환하고 예뻤다. 옷차림도 표정도 밝고 활기차다. 우리는 늦은 점심을 칼칼한 주꾸미볶음밥에 된장찌개를 먹었다. 그간의 메스꺼움이 단번에 사라졌다.
역시, 살기 좋은 “우리나라 좋은 나라네.”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나왔다. 딸은 나를 보고 웃었다.
한국문학인- 2018년 여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