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통하지 않고 소탕하려 할 때 인간관계는 무너져 갑니다.
소통은 대화하겠다는 의지이고 소탕은 누루겠다는 의지입니다.
소통은 져도 된다는 겸손이고 소탕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독단입니다.
소통은 넓은 길로 인도하지만 소탕은 막다른 길로 몰아갑니다. 소통은 너도 보이고 나도
보이는 세계지만, 소탕은 나만 보이고 너는 안 보이는 세계입니다.
소통은 내 탓이라는 반성이자 나도 변하겠다는 마음이고 소탕은 네 탓이라는 지적이자
너만 변해야 한다는 아집입니다. 소통은 공감의 비타민을 소탕은 불통이라는 독약을 줍니다.
소통은 흐르는 물같이 생명을 살리고 소탕은 고인 물같이 생명을 죽입니다.
예수님은 소통하시려고 십자가를 지기까지 낮아지셨고 바리새인들은 소탕하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까지 높아지려 했습니다.
"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 엡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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