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그리고 그림'에 해당되는 글 463건

  1. 2025.06.04 침묵의 소리 --- 이효재 목사님 by 물오리 2
  2. 2025.05.16 섣부른 판단 --- 조준철목사님 by 물오리
  3. 2025.05.11 새로운 법 --- 정혜덕작가 by 물오리
  4. 2025.04.28 부활절 달걀 이야기 ---김민철 목사님 by 물오리
  5. 2025.04.09 침묵의 영성 --- 서호석목사님 by 물오리
  6. 2025.03.14 미신타파 - - - 김민철목사님 by 물오리
  7. 2025.03.06 솟아오르는 것만 남았습니다 --- 이장균목사님 by 물오리
  8. 2025.02.27 윤동주에게 사과하다 ---김종구 by 물오리
  9. 2025.02.20 하얼빈 쾌거 by 물오리 1
  10. 2025.02.13 입보다는 귀 --- 조주희목사님 by 물오리

 

    대통령 후보들의 세 번째  토론회 다음 날, 나는 대화인지 싸움인지  알 수 없는 그들의 토론에 무척 심란 한 마음으로 공원 안에 있는 카페에 갔다.  야외 테이블에서  멍한 눈으로  찻잔을 바라보는 데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찻잔 테두리에 앉았다. 

   앙증맞은 부리로  내 차를 한 모금 두모금마 셨다. 그렇게 한참을 내 앞에 머물렀다. 마치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  짹짹거렸다.  즐겁게 듣고 있는데  참새가 내 마음에  메시지를 툭 던지고 날아갔다. " 우리는 여기 함께 살고 있어"

    기도와 산책,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침묵의 시간이다. 나는 글을 쓰다 막히거나  마음이 힘들어지면  중단하고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침묵하면  못 들었던 소리가 들려온다.  성경 말씀이나  내 마음 혹은 자연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리는 항상  평안과 통찰과 기쁨을 주었다.

    침묵하는 산이 모든 사람을 품어 주듯 침묵하는 사람은  많은 이를 포용한다.  지난 여섯 달동 안 우리는 광장 매체에서  들려오는  혐오와 분열과  배제 가득한  말 폭탄에 시달렸다. 이제는 우리의 말을 주리고 침묵하며  이 나라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들을 때다.  침묵의 소리는  치유하는 힘이 크다.

Posted by 물오리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한 여성이 미국 콜로라도  공항 바닥에 아기를 눕혀놓은 채 스마트폰을 보는  사진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 여성을 비난했고,  여성은 실직위기까지 처했다.

    그러나 이 사진에는  뜻밖의 반전이 있었다. 당시 콜로라도  공항은  통신시스템 마비로  승객들이  공항에 갇혀  하염없이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0시간째 아기를 안고 있던  여성은 지쳤고  아기를 떨어뜨릴까  걱정이 되어  잠시 바닥에 눕히고  가족들에게 걱정 말라는  연락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한 남성이 몰래 사진을 찍었고 자기 멋대로 판단 한 것이다. 이 사진 한 장 때문에  여인은 몰지각한 엄마가 되었고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리눈에 비치는 순간의 모습으로  상대를 판단할 때가 있다. 한나는 괴로운 마음으로 울면서 기도하다 지쳐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기도 했다.  엘리는  그런 한나에게 " 언제까지 술에 취해 있을 것이냐 포도주를 끊으라"라고 말했다. 이 말이 한나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까 , 이런 실수가  오늘 교회에서도  똑 같이 반복되고 있지는 않을까. 

Posted by 물오리

 

     교회에서 성서 특강을 들었다. 강사목사님은 인쇄술이  보급되기 전에는 성서가 엄청나게  고가였고  문맹률도 높았기 때문에  아무나 성서를 소유할 수도 , 읽을 수도 없었다고 설명하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 그런데 우리가  이 귀중한 성서를  안 읽는 이유가 뭘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은 암묵적인  동의였다.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목사님,  우리교인들은 매일 밤잠을 아껴가면서  두세 시간씩  성서를 읽는 다고요. "  같은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청년시절에  열심히 성서를 공부했다.  그때 다녔던 교회  교회청년부에서는  거의 신학교 수준으로  성서공부에 열을 올렸다. 나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싶었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싶었다.  그 바람에 없어진 건 아니지만  그때만큼 성서를  파고들지 않는다.  대충 알만한 것은  안다는 자만일까,  이 말씀이 나를 깨우고 바꾸고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성서 말씀대로  살기가 부담스러워서일까.

    " 우리는 성서를 언제나 읽을 수 있어서 안 읽는 것입니다. 저는 법을 새로 만들었으면 해요.  성서를 일주일에 한 시간만  소유할 수 있는 법을 요.  그러면 성서를 모두 귀중히 여기고 열심히 읽겠지요." 묘하게 설득되는 말씀이었다.

Posted by 물오리

 

     부활절 달걀에 얽힌 아름다운 중세시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남편이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로자린드 부인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하인들은 영지와 소유를  모두 빼앗고  그녀를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마을의 친절한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닭 몇 마리를  내주어 달걀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은혜를 갚기 위해 그녀는 달걀에 아름답게 색칠하고  "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을 믿으라"는 글을 써서 나누어 주곤 했습니다. 어느 해 부활절에도  그렇게 만든 달걀을  나눠주던 그녀는  어머니가 병으로 위독한 소년을 만나 남은 달걀을 모두  들여보내며 격려했습니다.

   그 소년은 달걀을 들고 가던 도중에 굶주림으로 쓰러져 있는 한 노병을 만나  자신이 가지고 가던  달걀 한 알을 주었습니다. 그는 달걀에 새겨진  글이 아내와  나누던  자기 가정의 좌우명임에 깜짝 놀라 어디서 얻었는지를  물었고  결국 사랑하는 아내와  재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사랑을 낳고  사랑의 봉사는  사랑의 기적을 낳습니다.  "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아래  거하리로다."

Posted by 물오리

 

   한동안 무리한 탓에 온몸이 아프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대화가 어려웠습니다. 의사는 " 잘 쉬고 말을 하지 않아야 낫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말문을 닫고 지내다 보니  말 많이 하고 사는 목사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신학자  리처드 포스터는 현대사회에서 신앙을  방해하는 요소로  시끄러움과 조급함,  혼잡스러움을 꼽았습니다. 세상에는 꼭 들어야할 소리보다  온통 시끄러운 잡소리, 헛소리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너무 많은  불필요한 말을  하면서 시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침묵은 고대에서 부터 기독교 영성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침묵은 단지  말 없음의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해  압도된 상태' '하나님에 의해 사로잡힌 상태'를 의미합니다. 엘리야는 고요한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이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의연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침묵은 하나님의 뜻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고요함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을  더욱 주목할 수 있습니다. "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 10)

Posted by 물오리

 

     오래전에 신문에 실렸던 기사가 기억납니다. 그해도 올해처럼 뱀의 해였습니다. 떠돌이 약장수가  마산의 한 청과 시장  옆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독사를 손에 들고 구경꾼들 앞에서  약을 선전하며 "  올해는 뱀띠해여서  뱀도 사람을  물지 않는다"  며 뱀과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  약장수는 독사에 혀를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

     잘못된 미신을 믿다가  죽게 된것입니다. 매년 정초가 되면 사람들은  그해의 길흉을 알아보려  무당이나 점집을 찾고 , 여행 이사 건축 개업  결혼등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운수를 보고  길일을 택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성도 중에도  그런 분들이 더러  있다고 합니다.

    성경은 이런 일들을  엄히 금하며 " 점을 치지 말며  술법을 행하지 말며 "  라고 했습니다. 신앙인은 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며  모든 날을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허탄한 복술이 정해준 날이 아니라  모든 날이 하나님 주신  승리와 축복의 날임을  기억합시다.

   " 이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것이라  이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Posted by 물오리

 

     봄을 대표하는 절기는 우수와 경칩입니다. 우수는 ' 얼음을 녹이는 봄비가 내린다.'는, 경칩은 ' 얼음이  깨쳐나가는 소리에  놀란 개구리도 뛰쳐나온다.'는 절기입니다. 우수가 지나고 경칩입니다. 봄은 영어로 스프링이라고 합니다. 용수철도 영어로  스프링이라고 부릅니다.

    봄과 스프링, 두 단어 모두  솟아오른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봄은 솟아오르는 계절입니다. 봄에 솟아오르는 대표적인 것은  새싹입니다. 봄이 오면 땅속에 있던  씨앗들이 발아해서 땅을 뚫고  솟아오릅니다.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한 사람들은  봄이 왔음을 확실히 느낍니다. 새싹이 올라오고 나면 쑥도 올라오고 냉이도  올라옵니다.  곧 둔덕과  야산에서  쑥과 냉이를 캐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봄을 맞아 우리의 신앙도  세싹과 같이  솟아올라야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새싹과 같이  싹을 내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 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깨를 활짝펴고  솟아오르는 믿음으로  새봄을 맞이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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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 초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을 방문했습니다. 도시샤대는 1875년 기독교인 니지마조에 의해 설립된  기독교 종합대학입니다.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조그만 예배당이 보였습니다. 방학이라서 예배당 안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스테인드 글라스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교회당 옆 뜰에  윤동주 시인과  정지용 시인의  시비가 서 있습니다.

    윤동주 시비에는 그의 대표 시 '서시'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비옆에 도시샤대  설립 150주년 행사가  열리는 2월 16일  윤동주 학생에게  명예문화  박사학위를  수여한다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윤동주 학생은 1942년  도시샤대학  문화부 영문학과  편입학했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했습니다. 서거 80주기를 맞아  명예문화박사 학위를 수여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2월 16일 500여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학위 수여식이  성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대학 측은 " 당시 시대의 추세에  저항하지 못하고  윤동주라는 한 학생의 소중함을  지키지 못했다."며 일본정부가  자행한 폭력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늦었지만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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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밸런타인데이인 지난 14일 하얼빈 동계아시안 게임이  폐막한 날은  우리 민족이 기억해야 할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던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았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펼친 활약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 이유입니다.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태극기가 가장 높은 곳에  걸린 모습을 보노라니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여자 쇼트트랙 500m 경기에선  태극기가 정 중앙에  걸렸습니다. 순간, 대한민국이  아시아를 제패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여자 컬링팀은 10전 전승으로  금메달 시상대에 올랐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압권은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여자 피겨에서  맨 위엔 태극기가 걸려있고  양옆으로 일장기가  태극기를 받치며  올라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향해  주시는  희망의 사인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역사의 아픔을 딛고 일어난 선진 대한민국을 하나님께서  제사장나라의 위치로  높이 들어 올리시는  감격스러운  꿈을 꾸었습니다. 하얼빈쾌거입니다.  

  영화 '하얼빈'을  감동으로 보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낌없이 바친 선열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Posted by 물오리

 

     요즘 우리 사회는 모이면 말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가운데 모처럼 웃음으로 가득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20여 명이 모였는데  시종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가볍지만은 않은 모임이었지만 웃음이 계속되었습니다.

   돌아오면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마음으로 바라봤기 때문이었습니다. 상대의 생각을 소중하게 다루려고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이야기를  결론처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 생각이 결론되기를 원합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좋은 길을 찾으려 하기보다  생각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법정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습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이야기를 경청하는 것, 내 이야기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제로  남의 의견을 듣는 것, 이것들은 조금만 열린 마음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용납하셨는지  일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입이 발달한 사람보다는  귀가 발달한 사람으로 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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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