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에 실패한 조카로 인해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 졸지에 집을 잃고, 김포 어디에서 월세 집을 얻어 살고 있는 동생. 당뇨병인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된 뒤 아들과 둘이 살던 아파트에 불이 나서 새로 삶을 시작한 칠순의 오빠, 내게서 빌린 자금으로 사업을 벌였다가 3년 만에 날려버리고 여전히 암중모색중인 남자 조카는 마음의 여유까지 잃었는지 신년이 되어도 전화 한통 하지 않았다.
마이너스 통장마저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었지만, 나 자신의 상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어찌 됐든 나는 고흐의 구두가 있는 자리로 되돌아 왔다. 삶이 나에게 베푸는 호의란 현실에서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이 불행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무연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기 없을 까, 마음에 생기가 없어 ’ 하고 남의 말하듯 중얼 거리곤 했다.
- 길이 나를 불렀다 - 중에서다.
‘산티아고는 길이며 숲이고, 낙엽이며 바람이다.
산티아고는 우리 안의 바깥에 있는 마지막 화살표이다.’
2008년 9월,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 길에 오른다.
마음 안에서와 같이, 밖에서도 길은 수시로 변한다. 한 걸음 때 변하고, 두 걸음 때 변한다. 황토 빛깔의 흙이 갑자기 고운 모래로 변한다. 먼저 그 길을 거쳐 간 사람들의 신발 밑창 무늬가 꽃을 뿌려 놓은 듯 모래위에 남겨져 있다.
나의 관심은 오직 이 길 위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 가파른 경삿길이 끝나고 산의 정상 부분에 나무들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성당이 나타났다. 과달 루페 성당 이었다. 성당은 원래 거기 있었다기 보다 하늘로부터 내려와 지상에 잠시 머문 듯 눈 부셨다. 사방에서 시원한 바람이 ‘쏴 아 -’소리를 내며 밀려 왔다. 배낭을 벗어버리니 몸이 날아 갈것 같이 가벼웠다. 두 팔을 쫙 펴고 폐부 깊숙이 바람을 맞아 드렸다. 시원한 바람이 꿀처럼 달았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도가 저절로 입 밖으로 흘러 나왔다. 감사 이외에 다른 말들은 모두 마음 안에서 숨을 죽이는 듯 했다. 성당 안은 소박하고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줄에 십자가 예수님 상이 매달려 있었다.
촛불이 들어오자 성호를 긋고 돌아가신 부모님, 형제자매 조카들을 위해 기도를 했다. 그리고 산티아고에 도착 할 때까지 주님이 동행해주시기를 빌었다. 높은 데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십자가상의 예수님과 눈길이 딱 마주쳤다.
‘나의 피 값으로 너의 죄를 사하노라’
하시는 성경속의 말씀이, 불특정 다수속의 내가 아닌,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나’의 심장 깊숙이 꽂힌 것임을 눈으로 확인 하는 순간이었다.
이 산길에서 길을 안내 하는 표시들은 그것들을 표시하기위해 봉사자들 자신이 고통스런 체험에 동참하면서 뒷사람을 위해 남긴 것이어서 그것 자체가 헌신의 서약이었다.
걷는 걸음마다 가족과 지인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떠올리고 기도를 입속으로 중얼 거리며 내 고통으로 기도의 속을 채워 하나님께 바친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동시에 붉고 힌 줄의 작대기 표시가 나타
날 때 마다 그것이 꼭 천사가 검지와 장지를 붙여 내 이마에 인을 쳐주시는 느낌으로 와 닿았다.
침낭에서 자는 이야기 걸으며 만나는 소녀에게도, 소에게도 축복해주는 이야기, 주님을 오롯이 만나는 이야기가 감동으로 이어진다.
책을 읽으며 산티아고 순례 길을 나도 따라 걸었다. 주님 지으신 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었다.
1부, 끝까지 대면하라. 2부, 길을 잃고 다시 길에 사로잡히다. 3부, 가는 구나 가는 구나 나와 함께한 인연들,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저자의 취미는 ‘걸으면서 묵상하는 것과 낮선 도시의 골목길을 배회하는 것과 춤추는 것’ 이란다.
이책에 허구적인 것은 단 한가지도 없다. 나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었고, 그 화살표가 가리킨 곳에서 나를 벗어 던졌다. 그 결과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내면적 변화를 이끈 초월적 존재를 보고 만졌기 때문에 그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다. 영혼의 부름을 따라 걷는 모든 이는 순례자다. 일상속에서 자기만의 노란 화살표를 찾아 걷고 있는 세상 모든 성스러운 사람들에게 이책을 바친다.
작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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