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늘 경이롭다.
어둠이 걷히는 조용한 시간, 밤에서 깨어나는 하루를 본다.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이 시간은 이런저런 일들을 묵상하는 시간이다. 어제는 잘 살았는지, 누구를 서운 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내 마음은 편안한지, 그리고 나를 지으신 그분과 대화를 한다. 세상 이야기, 날씨 이야기, 자녀 이야기, 다 아뢰고 나면 평안함이 나를 감싸 안는다.
드디어 산등성이에 붉은빛을 업고 해님이 얼굴을 내민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끝 간곳없이 펼쳐진 광활한 우주가 얼마나 웅장한지 새삼 알게 되고 그 속에 내가 있음도 감사하다. 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내 키를 훌쩍 넘는 억새들, 멋진 그림을 그리는 구름, 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냇가를 걷는다. 발길에 차이는 이슬도 좋고 청초하게 피어있는 자잘한 꽃들도 인사를 한다. 아주 가끔 개울물을 따라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만날 수 있는데 신선이 노니시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이 그리 나쁘지 만은 않다. 왜냐하면 하루하루가 선물임을 알게 되어서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한가로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지내는 지금이 편안하고 감사하다.
젊은 날, 분주하게 살았던 나의 시간 속에는 언제나 새벽이 있었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새벽별을 보며 하루 일을 시작했고,, 그 시간에 운전대를 잡았다. 부지런히 일 했던 시간들이다. 어느 해이던가 작은 키에 몸무게가 너무 많이 늘어 자리에 누우면 숨이 찼다. 그래서 가입하게 된 새벽배드민턴동호회, 구장은 시흥계곡 숲 속에 있었는데, 봄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사계절 숲이 내어주는 향기에 묻혀 살았다.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게임을 마치고 나면 기분은 더없이 상쾌했다. 골짜기를 따라 돌돌 흐르는 물을 손으로 받아 마셨다. 그 시간은 나에게 건강을 주었고 즐거움도 주었다. 둔해서 달리기도 못했던 내가 친선게임에서 은메달을 땄던 기억이 난다. 많은 회원들과 웃고 수다 떨고 함께 여행도 했다. 이십 여 년을 숲 속에서 지냈던 그 시절이 오롯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새벽이면 툭 툭 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열면 수많은 별들이 금세 쏟아질 것만 같았다. 서울에서 희미하게 보였던 별들이 영롱한 빛을 발했다. 면역력 저하에서 암으로 판정이 났고 몸무게가 10킬로 이상 줄었을 때, 내 마음은 의외로 담담했다.. 우선은 살만큼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단했던 삶도 이제 내려놓는다는 것이 홀가분했다.
“자연식으로 치료하는 곳이 있대요.” 나를 염려해주고 지지해 주는 선배님의 권유로 오게 된 경남하동, 이곳은 청정지역이었다. 깨끗한 공기와 자연식으로 치료하는 곳이다. 싱싱한 야채와 현미밥, 기름이 배제된 음식을 먹고 운동을 했다. 그리고 아침저녁 말씀 공부를 했다. 아픈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새벽 5시, 동그랗게 둘러 앉아 간절한 기도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메타세쿼이아가 줄지어 서있는 숲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을 올랐다. 저마다 사연이 깊다. 네 번의 항암을 하고 시력을 잃은 순이 씨, 그런 아내를 자상하게 보살펴주던 신랑, 간수치가 너무 떨어져 들어온 아우님, 연변에서 날아온 조선족 아낙도 있었다. 우리는 몇몇이 함께 어울려 산책도 하고 이야기꽃도 피우고 밤도 주웠다. 차츰 건강이 회복되어갔다. 조석으로 배우며 알게 된 그분의 사랑, 생명이 귀하고 삶 또한 귀함을 알게 되었다. 삼 개월, 육 개월, 아니면 일 년, 다들 건강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갔다. 오 년 전일이다.
‘나는 빛나는 새벽 별이라’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노년에 만난 주님, 그분도 새벽에 계셨다. 그리고 나를 어루만져 주셨다. 하루가 시작되는 신령한 새벽은 언제나 나와 함께 했고 그 속에 내가 있었다. 요즘 내 마음에 닿는 구상 선생님의 시 한 편을 읊조려본다.
<은총에 눈을 뜨니> 구상
이제사 비로소 두이레 강아지만큼 / 은총에 눈을 뜬다.
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상이 / 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
그렇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 / 나고 죽고 그 덧없음이
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
이제야 하늘이 새와 꽃만을 / 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 눈물로 감사하노라
아침이면 해가 동쪽에서 뜨고 / 저녁이면 해가 서쪽으로 지고
때를 넘기면 배가고프기는 매한가지지만 / 출구가 없던 나의 의식 안에
무한한 시공이 열리며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소중스럽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