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열 시가 되면, 거실에는 햇볕이 가득하다.
그 해님은 돌아서 오후 두 시쯤, 내 방으로 찾아온다. 살구색 커튼을 통해 들어온 햇볕은, 마치 무대 조명등을 켜 놓은 듯 방안이 환하다. 문갑 위에 춘란(春蘭)은 봄을 기다리고 있는데, 햇볕을 받아 난 잎은 푸름으로 더욱 반짝인다. 나는 이럴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차 한 잔을 마신다. 지리산자락에서 보내온 감잎차를 마시며, 그리운 벗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동지섣달, 이 깊은 겨울에 내가 누리는 호사다.

요즘 햇볕을 마주하면 새삼스레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딸 덕분에 이곳 남향집으로 이사를 온 지, 일 년이 막 지났다. 아파트 뒤로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 있고, 앞으로 조금 나가면 내(川)가 흐르는 안양천이다. 꽤나 많은 세월을 살았는데, 지금처럼 남향집에서 살아보긴 처음이다. 젊은 날은 일하느라 바빴고, 추운 기운이 들어온다는 북향집만 피했지, 집값이 더 나가는 남향집을 택하기에는 부담도 되었고, 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예로부터‘남향집에 살려면 3대가 적선을 해야 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곳에 살면서 사계절을 맞고 보니 왜 그런 말이 있는지,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하다. 그래서 남향집을 길(吉) 한집으로 꼽았나 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면, 화가 오지호(1905- 1982)의 대표작인‘남향집’이 전시 되어있다. 조선의 빛을 처음으로 화풍에 담았다는 이 그림은, 언제 보아도 정감이 넘친다. 햇볕이 쏟아지는 오후, 빨간 원피스를 입고 대문을 나서는 단발머리 소녀와 담벼락 아래 낮잠을 즐기는 흰둥이, 보고 있으면 내 유년의 고향이 떠오른다. 그 담벼락 앞에 옹기종기 앉아 소꿉놀이했고, 공기놀이했던 어린동무들이 보인다.

‘남향집’은 1935년, 개성에 있는 ‘송도 보통학교’ 미술교사로 있을 때, 화가 오지호가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대문을 열고 나오는 여자아이는 둘째 딸이라고 했다. 이 그림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2년 벽두에 무료전시회를 하고 있는데, 그의 유족이 미술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지구의 건강상태가 예전 같지 않아, 대체로 일사(日射)량이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난여름은 많은 비가 내려서 피해도 컸지만, 볕을 보기가 정말 어려웠다. 햇볕의 고마움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을까만, 나는 이 겨울 무량으로 쏟아지는 볕이 마냥 고맙기만 하다. 어느 문학지에‘햇볕이 소중해 한여름에도 양산을 쓰지 않는다.’는, 노(老) 작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문구를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이가 들면 소중한 것이 많아지는가 보다 이 겨울 , 찾아온 햇볕에 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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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