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눈물

수필[Essay] 2016. 11. 3. 04:42

 

    봄을 안고 있는 이월이다.

    나는 오늘 박사 학위를 받는 시상식에 초대되어 가는 길이다. ‘앰버서더 호텔’이 층 연회장에는 축하메시지가 걸려있다.

   <명예경영학박사 학위수여식> 단상 위에 걸려있는 플래카드 아래 주인공의 함자가 보인다. 홀에는 기업인들과 축하객으로 가득하다. 왼쪽 벽면에 걸린 화면에는 회사와 공장 내부, 그리고 가족사가 영상에 나왔다. 잠시 후, 학위 수여식은 시작되고 내빈 인사에 이어 연혁(沿革)보고와 함께 학위수혜자 프로필을 소개한다.

   열다섯 살 소년이 기계공으로 출발하여, 기업인으로 꿈을 이루게 된 역사가 차례대로 소개되었다. 한국 전쟁을 겪고 기아산업 기공 부에 입사하여 일급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1970년도에는 금속부문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국 정밀도 경진대회에서 최우수 금상을 두 번이나 연속 받았다고 한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주) ‘효진오토테크’는 삼십 여년 자동차 국산화를 위해 매진해온 대표적인 회사다. 국산자동차 개발과 차체를 검사하는 로봇시스템을 개발하여, 대한민국 최우수업체로 인정을 받았다. 또한, 기술혁신 우수기업 부문에서도 경영인상을 받았으며, 현재 자회사가 개발한 검구기기를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유럽까지 수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2008년도에는 ‘천만 불 수출 탑’ 훈장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 공적이 미국 버나덴 대학(Univ.대학)에서 주관하는 경영학박사 심의(審議)를 통과하여, 오늘 이 영광스런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오늘의 주식회사 ‘효진’은 인재육성재단에, 미래 장학회에, 소외계층을 위해 소리 없이 후원을 하고 있는 기업이다.

   이윽고 박사 모(博士帽)가 그분 머리 위에 씌워지고 축하객들은 기립 박수를 쳤다. 이내 내빈들의 축사로 이어졌는데, 많은 세월 동안 오늘의 주인공을 보며 변함없는 성실성과 근면함에 입을 모았다. 그리고 그동안 이루어낸 업적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서고 보니 지나온 시간이 생각나 목이 멥니다.”

주인공의 인사말이다. 진정하려는 듯, 물 한 모금을 마시는 그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남자의 눈물, 그 순간의 눈물은 의미 있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객석에 앉은 내빈들과 나는 이 엄숙한 순간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가에 어리는 눈물이라 해도 거기에는 천근만근의 무게가 있고, 긴긴 세월을 지탱해온 깊은 역사가 서려 있지 않겠는가, 오랜 세월 동호인으로 함께 했건만, 오늘은 그분의 또 다른 면모를 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느낀다. 이 자리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나 역시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박사학위 수여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42년 전, 갓 제대한 장병을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신 분입니다.”

팔십이 넘으신 원로 한 분을 소개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상사로 계셨던 분이라고 했다. 스물여섯 살 청년의 착실함이 한눈에 보였으리라, 노장은 빙그레 웃고 계셨다.

   오늘의 주인공은 우리 지역 배드민턴 연합회 회장님이다. 수년간 삼성산 시흥계곡에 체육의 장을 만들어, 동호인들과 지역주민은 그 운동장에서 건강을 다지고 있다. 성품이 소탈하고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히려 그 일을 즐겁게 해내고야 마는 분, 그래서 별명도 작은 거인(巨人)이다.

     어느 해인가, 운동장 확장공사를 할 때였다. 계곡도랑에 뚜껑을 덮고 사각의 코트 장을 만들기 위해, 백여 명의 회원들은 괭이와 삽질을 했다. 돌을 고이고 둔덕을 쌓았다. 그리고 회원들이 하는 게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긴 의자를 곳곳에 설치하는 등, 참으로 큰 공사였다.

   모든 일에 회장님은 선두주자였다. 회원들은 각자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열심히 동참을 했고, 다섯 개의 코트 장이 열 개의 코트 장으로 늘어났을 때, 회원들은 쾌적한 환경을 환호했다. 맑은 물이 흐르고, 철 따라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는 이 숲 속 운동장은,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회장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완공을 앞두고 마무리로 접어들 무렵, 계절은 이른 봄에서 한여름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36도를 웃도는 뙤약볕에 밀짚모자를 쓰고 회장님은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며칠 후, 온몸에 땀띠가 나서 고생을 하고 있다는 말이 들렸다. 어떤 일이든 언제나 몸소 실천하는 분이다.

   객석에 앉은 내빈과 회원들은 축하의 잔을 들었다. 그리고 흐뭇한 정경(情景) 속에 행사는 끝이 났다. 주변 사람이 행복해지면 기쁨은 나누어지는 것이다. 한 사람의 집념과 성공을 지켜보면서 모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인생이 고해라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이렇듯 영광의 날이 있어 삶은 귀한 것, 행사가 끝나고 돌아오면서 나는 한 시간 전에 그 장면을 몇 번이나 회상했다. 밤바람은 차가웠지만, 감동은 여운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인생이란 말속에는 갓 가지 눈물이 있겠지만, 오늘같이 아름다운 눈물이 있어 삶 또한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아마도 사는 날까지 일하느라 손에 장갑을 끼고 있을 것이다.”

  오늘 박사님이 되신 주인공의 끝인사말에는 삶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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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