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나온 음식은 싱싱하고 깔끔했다.
채소와 과일, 견과류가 넓은 그릇에 담겨 있고 잡곡밥과 무청 시래깃국에 살짝 구운 연어도 있다. 종류는 다섯 가지인데 우선 자연 그대로의 색이 살아 있어 미각을 자극했다. 먹을 만큼 접시에 담아 연어 한 조각을 입에 넣었는데 거의 간이 없다. ‘아 유, 싱거워라.’내입에서 나온 한마디다. 이곳에 차려진 음식은 친환경 식단으로, 인공조미료와 트랜스지방을 사용하지 않은 음식이라는데 먹기 어려울 정도로 싱거웠다. 테이블에는 30분 걸려 내려가는 모래시계가 있고, 그 옆에 있는 메모지를 보니 30분 먹고, 30번 씹고, 30가지를 먹으라는 글이 적혀 있다. 우리는 천천히 이 신선한 음식을 음미하며 먹기 시작했다. 이곳은 나무가 울창한 심심산골이다. 한여름에도 에어컨과 선풍기가 없고, 영상도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오로지 자연과 하나가 되는 마을이다.
6월 초, 오랜 세월 정을 나누며 지내는 지인들과 며칠간의 일정으로 이곳을 찾았다. 굳이 행보한 이유를 찾는다면 몇 가지가 있었다. 안내하는 책자에 쓰여 있듯, 여기는 ‘우리 몸을 깨끗하게 해독시켜 잘못된 습관으로 생기는 질병을 예방하고, 그것을 배우고 익히는 곳’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건강프로그램을 몸소 체험할 수 있고, 또 한 가지는 내 몸에 대한 현주소를 알고 싶었다.
40여 년 교육계에 몸담았던 친구가 지지난해 퇴임을 했고, 나 역시 일자리에서 물러난 작금(昨今), 우리는 자신을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이곳을 택했다. 이 세상 누군들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만, 세 사람 모두 이순에 들고 보니 한 번쯤은 수고했노라고 자찬을 해 주어도 좋을 터였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이곳은 공기가 청정했다. 약간 오르막길에 자리한 건물들은 언뜻 보아도 단순하고 현대적이다. 심신 일여(心身一如), 조용히 명상하는 유르트가 있고, 사색의 길, 해맞이 길, 석양이 아름다운 길, 이름도 예쁜 숲 속을 산책하는 길이 여러 갈래 있는데, 정말이지 새소리, 계곡 물소리 들으며 벗들과 걷는 길은 더없이 즐거웠다. 오르다 숨이 차서 편백나무 아래 있는 평상에 누우니, 그간에 묵은 피로가 모두 풀리듯 편안하다.
그동안 무엇을 먹고 살았으며 어떤 운동을 했는지 설문지가 나왔을 때, 우리는 좀 당황스러웠다. 영양을 생각하고 식사를 했던가. 그리고 몸에 맞추어 적절한 운동을 하였는가. 생각해 보니 가끔 등산을 한 것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생활습관 검진 결과가 나왔을 때는 체지방량이 많으며 운동부족에 약간의 비만, 그리고 골다공증이 심한 편이라고 했다. 그것은 짭짤하게 먹는 내 습관이 문제가 되었다. 소금은 몸 밖으로 배출될 때마다 칼슘을 끌고 나간단다. 그리고 그 나트륨은 골다공증을 비롯해 여러 가지 성인병을 유발하는 근원이라고 했다.
지난해 나는 뜻밖에 무릎 수술을 받았다. 간단한 레이저 시술이라고 해서 가볍게만 생각했는데, 결과는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담당의사는 골다공증 수치가 바닥이라고 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싱겁게 먹는 것이 처방되었다. 반찬도 하나의 요리로 생각하고 저염식으로 만들어 먹으란다. 소금과 설탕은 꿀과 천일염으로 대신하고, 식사 전에 간식 먹기를 권하는데, 아기 주먹만큼 시장기만 가시게 먹어야 한단다. 밥보다는 야채를 싱겁게 조리해 많이 먹고, 나이에 맞는 규칙적인 운동이 처방되었다.
들깨 우엉 탕, 황태 감잣국, 연어 된장구이, 마 구이, 부드럽고 담백한 돈 수육, 청국장 고등어조림, 참나물 무침, 양배추 깻잎 초절임, 견과류 드레싱, 케일 된장 죽, 그동안 먹었던 음식을 메모한 것이다. 그 밖에도 금방 구운 호밀 빵이 나왔고, 싱싱한 야채는 끼니마다 나왔다.
삼 일째 되던 날, 싱거워 먹기가 어려웠던 음식이 점점 고소해진다. 이제는 식재료 고유의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음식을 먹기 시작한 지 며칠, 우리는 드디어 맛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인간의 뇌는 똑똑하면서도 바보 같은 구석이 있다고 한다. 약 2주 정도 계속해서 싱겁게 먹는다면, 뇌는 짜게 먹던 습관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첫 시작이 어렵지 그 고비만 넘긴다면 쉽게 적응이 된다고 한다. 직접체험을 해 보니 이해가 되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것에 우리는 가끔 놀라곤 한다. 내가 일선에 뛰어들 때만 해도 오십 대 중반이면 일손을 놓으리라 계획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90을 바라보는 시대에 와 있으니,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낼 것 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언젠가 방송에서 건강 강의를 하는 전문의의 일침이 생각난다.
“수명은 길어졌는데, 지질하게 오래 살 것인가, 운동 습관, 식습관, 잘해서 나라에도 자식에게도 피해 주지 말고, 건강하게 살 것인가는 본인이 선택하는 것” 이라고 했다. 그 말은 뼈가 있고 맞는 말이었다.
잡곡밥을 먹고 싱겁게 먹기 시작한 지 몇 개월, 나도 모르게 2킬로 감량되어 웃음이 나왔다. 짭짤하게 먹는 습관만 바꾸어도 이렇듯 몸이 가벼울 줄이야, 이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싱겁게 먹자는 말을 자주 한다. 뿐만이 아니라 가끔 있는 술자리에서도 ‘싱겁게 먹고 건강하게 살자‘라고 외칠 정도로 싱겁게 먹기 건강홍보대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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