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여고 시절 아껴주시던 스승님께 인부전화를 드리니 내 나이를 물으셨다.

   “ 저도 육십이 다 되어 가는데요.”

   “ 그래, 아직은 새댁이네.”

   갑자기 하시는 말씀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 나이가 무슨 새댁? 괜한 말씀을 하시네.’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십 년,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이렇다 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 세월은 백 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지나가고 나는 육십 대 끄트머리에 와 있다. 나이란 놈은 많이 먹을수록 가속도가 붙는다고 하더니 괜한 말은 아닌 듯싶다.

  우리 반 기타 선생님은 이십 대 후반이다. 얼굴도 미남이지만 적당한 체격에 속 깊은 마음까지, 요즘 젊은 사람과는 달리 넉넉한 품성이 보인다. 기타를 배우는 회원이 실버들이라 익히는 속도가 느려 답답할 텐데도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자상하게 지도한다. 뉘 집 아들인지 고맙기도 하고 기특한 생각이 들어서 어머니 나이를 물어보았다.

 “아, 어머니요, 오십 대 후반이신데요.”

  “어머나! 그래요, 어머니가 새댁이네”

    젊은 선생님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예전에 내가 그랬듯 새댁이라는 말이 생경해서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만큼 나이에 수를 더하고 보니, 내 스승님이 하신 말씀이 절로 수긍이 된다.

   여자 오십 대는 새댁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낙의 인생에서 또 다른 일을 생각해볼 수 있는 하프타임이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위해 보냈던 일상에서 조금씩은 놓여나 자신의 생을 돌아볼 수 있는 시기가 오십 대다. 무엇보다도 제2의 인생을 계획하기엔 더없이 좋은 때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를 살려 전문가도 될 수 있고, 못 이룬 꿈을 향해 다시 공부해 볼 수도 있는 나이, 백세를 바라보는 이 시대에 인생 이모작을 계획하기에는 더없이 적절한 나이다.

   산을 타는 동호인 중에 남도소리를 잘 부르는 친구가 있었다. 노랫가락, 성주풀이, 선 시조까지 부지런히 배우러 다니더니, 지금은 강사가 되어 문화센터에서 제자들을 가르친다.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같은 연배 제자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산다.

   나 역시 오십 중반에 글공부를 시작했다. 막내가 입시공부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 미루었던 수필공부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집을 나설 때는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기쁘고 생활에 활기가 넘쳤다. 그리고 그때 만난 문우들과 글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지금은 분에 넘쳐 고맙다. 그뿐만이 아니라 독서지도 수료증을 따고 초등생 책 읽기 지도를 할 때는 나름 보람도 컸다. 어느 분야든 삼 년을 배우면 귀가 열리고 빠르면 오 년, 늦어도 십 년이면 그 일에서 전문가가 되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요즘은 자기 관리를 잘하는 시대여서 그런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주름살도 없고 젊기만 한 오십 대, 그들을 보면 나도 ‘아직은 새댁이네!’ 하는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온다.

   이른 아침, 계속되는 장맛비가 조금 멈추었다. 인근에 있는 구름산으로 산책하러 나갔는데 빗방울이 또 떨어진다. 산 중턱에 있는 정자 안으로 들어섰는데, 팔순을 넘긴 어른 두 분이 나를 보더니 불현듯 나이를 묻는다.

  “육십 끝자락인데요.”

  “그 나이만 됐어도 좋겠네.”하며 웃으신다.

   하긴 십 년 후에 나도 그 말을 또 하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은 새댁이네!’ 라는 말을 들으며 활기차던 그 오십 대가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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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