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벗으로 지내는 친구의 어머님은 올해 아흔넷이시다.
“ 어머니, 쌀 빻아 왔어요.”
“ 응, 쌀 왔어”
가끔 정신을 놓치기도 하는 어머니는 정미소에서 막 찾아온 쌀을 만지며 환하게 웃으신단다. 친구는 올가을도 어김없이 벼농사를 거두어 어머님께 먼저 보여드린 것이다. ‘내 자식들 입에 쌀밥 들어가는 것’을 보아야겠다고 젊은 시절 악착같이 일을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시골 고향에 논을 장만한 것은 1965년대라 했다. 그로부터 오십 여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친구는 아직도 어머니 이름 그대로 그 땅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어머님의 자존감을 지켜드리고, 해마다 햅쌀을 보며 기뻐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다.
1965년 그때는 나라도 국민도 모두 어려웠던 시기였다. 한국전쟁을 겪고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국민의 식생활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부모님들은 빈곤 속에서 ‘보릿고개’라는 고개를 넘어야 했던 때,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쌀밥을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보리쌀에 쌀을 한 줌 넣어 밥을 지으면, 아버지와 오라버니 드리고 남은 식구들은 깡 보리밥을 먹었다. 어쩌다 아버님이 드시던 쌀밥을 남기면 그것을 먹으려고 자매들끼리 다투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야말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을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마른논에 물들어가는 소리와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만큼 즐거운 소리가 없다’라는 옛말, 그 말의 뜻을 우리 세대는 알고 있다.
며칠 전, 햇살 바른 곳에 쌀이 널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바구미’라는 쌀벌레가 눈에 띈다.
“ 떡 해 드실래요? 벌레가 좀 낫지만, 쌀은 괜찮아요.”
경비아저씨 말이다. 아파트 위층에 사는 젊은 아기 엄마가 버려달라고 내놓은 쌀이라고 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가래떡을 해 먹기로 했다. 모처럼 이웃과 나누어 먹는 떡 잔치를 했다.
쌀은 영양이 풍부하다고 한다. ‘본초강목’ 약학 서에는 ‘쌀은 위기(胃氣)를 평 하게하고 몸에 기운을 돋아 정신이 어지러운 것을 없애준다’ 했고, 또한 쌀에는 생명을 유지하는 기본 영양소인 탄수화물이 72퍼센트나 들어 있다고 한다. 그 밖에 단백질, 지방, 식이섬유, 무기질, 비타민도 B1, B2, 복합체가 들어있어 혈중코레스톨과 중성지방 농도를 감소시켜주며 생명을 유지 하는 데는 더없이 좋은 식물이라고 했다.
2016년 요즘 쌀 소비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사람이 하루에 밥 두 공기를 채 먹지 않는 다는 것이다. 반면에 피자나 햄버거 등, 밀가루 소비량이 늘어 어른은 물론, 어린이 당뇨와 비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 기둥인 꿈나무들이 건강하게 자라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갓 시집을 갔을 때, 시어머님은 쉰밥을 찬물에 헹구어 드셨다. 쌀 한 톨에는 농부의 피땀이 서려 있고 수십 번의 손이 가야 밥상에 오르게 되는데 그 수고와 땀을 알아야 한다는 지론이셨다. 그래서 우리는 상 앞에서 흘리는 밥도 주워 먹었다.
지구촌 곳곳에는 지금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다.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도 끼니 해결 못 하는 이들이 있다는데, 벌레가 좀 났다고 쌀을 버리는 철부지 새댁이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올해 공주시가 우리 쌀 소비촉진을 위해 급식 요리사 대상으로 우리 쌀 식품 가공 기술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쌀 파스타, 쌀 떡볶이, 쌀 빵, 더 많은 음식이 개발되어 쌀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시름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쌀, 없으면 살수 없는 귀한 쌀, 이 쌀의 소중함을 젊은이들이 알아 밀가루 보다는 쌀 소비가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요즘도 가끔은 따끈한 쌀밥을 지어, 추억이라는 이름과 함께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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