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으로 왼팔을 쓸어내리며 주먹을 살짝 쥔다. 동시에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이 행동은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수화 인사다. 나는 요즘 수화를 배운다. 집을 나서기 전, 거울 앞에 서서 지난 시간에 배운 것을 복습해본다. 몇 가지 단어와 노래를.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사랑으로’라는 가요인데, 서너 가지의 동작이 가물가물하다. 교본을 보면 지루함을 배려했는지, 가끔 악보와 함께 노래가 실려 있다. 수화는 가슴 높이에서 양어깨를 한계점으로 하는데, 필요에 따라 동작을 크게 하기도 작게 하기도 한다.

   수화가 목소리를 대신한다면 손가락으로 하는 지화(指話)는 필체를 대신한다. 강의를 듣기 시작하면서 놀란 것은, 수화는 생각했던 것보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합리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중국어의 한자를 그대로 접목한 용어도 있고, 표현하기 어려운 낱말은 생긴 모양에서 특징을 잡았다. 봄은 태어남을, 여름은 더위, 가을은 바람, 겨울은 추위로 표현했다. 그리고 더욱 기발한 것은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하는 손짓, 그 무언(無言)의 대화를 수화에서는 그대로 흡수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가라, 먹는다, 드리다, 받다, 그 외에 많은 동작이 포함되어 있었다.

 

   강의하는 선생님은 수화가 이용되기 시작한 유래를 흑판에 그려가며 설명을 한다. 토씨가 생략되는 것과 문장 배열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 어미의 변화가 표현 강조로 많다는 것도 이야기한다. 청각장애인과 대화를 할 때는 예의를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고, 동작을 정확하게 해야 하며 무엇보다 그들의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동정은 절대 금물이며 즐거운 마음으로 여유 있게 하란다. 나는 꼼꼼하게 기록을 했다.

 

    나에게는 농아 조카딸이 있다. 그 딸을 보며 늘 마음 아파하던 올케가 지지난해 지병으로 돌아가고, 궁금하던 차에 이번 설 명절에 우리 집을 찾아 주었다. 나는 반가워서 덥석 안았지만, 엄마를 잃은 슬픔 때문인가 웃는 얼굴에는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때때로 그 아이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귀여운 발음으로 말을 막 배울 무렵, 급체한 것이 경기(驚氣)로 이어지고,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한방으로 뛰었으나 고막은 파손되어 허사였다. 들리지 않으니 몇 마디 하던 말마저 하지 못했다. 할머니도 엄마도 가족 모두 발을 동동 굴렀지만, 야속한 운명은 끝내 그 아이를 청각장애인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동안 농아 여고를 졸업하고 교회에서 뜻이 맞는 배필을 만나 지금은 고맙게도 두 아이 엄마가 되었다. 조카딸이 돌아간 다음 많은 생각을 했다. 미루고만 있었던 수화를 배우자, 그래서 그 아이의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우리나라 청각장애 인구는 뜻밖에 많았다. 선천적인 농아보다는 후천적인 농아가 많고, 장티푸스를 앓다가 고열로 고막이 손상될 수가 있는가 하면, 조카딸처럼 급체가 경기로 이어져 청력을 상실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일상에서 쉽게 생기는 질환으로 농아가 된 사람들이기에 참으로 안타까웠다. 삼 개월로 접어들고 초급반에서의 마지막 수업시간, 나는 귀를 막아 보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는 그야말로 답답하기 그지없는 공간이었다. 선생님의 음성은 물론, 그나마 배운 수화도 들리지 않으니 뒤죽박죽이다.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들리지 않는 세계- 그것은 무슨 말로도 표현할 길 없는 참담함이었다. 그

리고 나는 조카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이 적막 속에서 살고 있을 그 아이의 고충을 생각하니 어느 한 쪽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재잘거리는 꼬마들의 웃음소리, 노래하는 새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아름다운 모든 소리들, 어찌 꼽을 수 있으리.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마냥 시야가 흐려짐을 어쩌지 못했다. 그간 짐작만 했을 뿐, 무심하게 지낸 세월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잘 지내니, 고모야. 오늘 저녁 함께 먹자. 데리러 가도 될까.”

“네 좋아요. 기다릴게요.”

 

   손 전화에 문자를 보내니 이내 답이 온다. 마주 앉아 저녁을 먹으며 ‘고모가 수화를 배우고 있어요.’

   동작이 더듬더듬했는데도 뜻이 전달된다. 놀란 얼굴로 내 손을 잡는다. 서툴지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필담으로 나누는 대화보다 의사소통이 훨씬 쉬웠다. 이제 우리 더불어 살자. 수화로 하니 고맙다는 답을 한다.

 

   지난 일요일, 아이들이 읽을 책을 사야겠다는 문자가 왔다. 시간이 괜찮다면 고모와 함께했으면 하는 내용이다. 책을 많이 읽혀야 한다는 내 말을 귀에 담았나 보다. 나는 쾌히 승낙하고 만나기로 한 서점 앞에 도착했다. 무슨 책을 골라줄까, 조카딸이 읽으면 좋을 책도 두어 권 사 주어야지 하고 살펴보고 있는데, 내 어깨를 덥석 끌어안는 손길이 있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 다가선다. 우리는 팔짱을 끼고 책도 고르고 이것저것 쇼핑을 했다. 돌아가는 차 속에서 조카는 유난히 많은 말을 했다. 아이들 이야기, 신랑이야기, 그리고 까르르 웃는다.

   내가 배우는 수화 덕으로 조카의 그 쓸쓸한 마음을 덜어 줄 수만 있다면 내 무엇을 더 바라랴, 손을 흔들며 집으로 들어가는 조카딸 등 뒤로 사월의 벚꽃은 화사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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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