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둑길에 하얀 망초 꽃이 무리 지어 피어있다.

바람을 가르며 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달이 뜰 때쯤 핀다는 달맞이꽃, 넝쿨로 뻗어서 군락(群落)을 이룬 분홍색 메꽃, 억새는 내 키를 넘어 가을을 예고한다.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했고 해바라기도 입술을 열었다. 봄에 피었던 유채는 씨를 잔뜩 안았고, 엉겅퀴, 민들레, 명아주,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다.

꽃길을 따라 달린다. 칠월 초 장마라 하더니 잠깐 소강상태다. 해는 구름 속에 숨어 쾌적한 날씨, 천변 풀을 깎는 아저씨들 덕분에 풀 향기가 진하다. 비가 온 뒤라 물이 많아진 개천에는 백로 두 마리가 수초 속을 뒤지고 있다. 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시원하다. 아니 가슴 속까지 시원했다. 머플러가 날린다. 나는 모자 끈을 단단히 조였다.

“와, 좋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앞서 가는 친구는 초보가 잘 따라온다고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든다. 금천 대교를 지나 철산교, 광명대교, 그리고 오목교가 보인다. 엄마와 딸이 메밀꽃이 핀 모퉁이를 돌아가고 친구 사이인 듯, 젊은 아낙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야기를 하며 페달을 밟는다. 간간이 쉴 수 있는 의자가 있고 식수도 있다. 친구와 나는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벤치에서 잠깐 숨을 고른다.

사십 대 중반에 나는 자전거 타기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헌데 둔해서 그런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았다. 웬일인지 자전거에만 오르면 두려움이 앞섰다. 차가 오면 마음은 졸아들고 장애물이 나타나면 피해야지 하면서도, 결국은 그쪽으로 가서 들이받고 다리엔 온통 멍이 들었다. 그리하여 체념한 터였다.

‘안양 천변에 아름다운 꽃길이 생겼다’는 문구가 지역소식지에 실렸다. 나는 저녁을 이르게 먹고 동생이랑 꽃구경을 나갔다. 시흥대교를 건너 둑을 내려가니 천변(川邊)이 말끔하다. 산책하는 길이 있고 그 옆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길게 뻗어 있었다. 키 작은 채송화가 보이고 빨간 봉선화도 있고, 길섶에는 낯익은 꽃들이 다소곳이 피어있다. 한강으로 유입되는 안양천은 잔잔하게 여울지며 흘러간다. 언뜻 유년의 고향 냇가가 떠오른다. 어디선가 맹꽁이가 울었다.

“어머, 맹꽁이 아냐”

“그러네, 시골에서나 들었는데 ”

동생과 나는 놀랐다. 이곳에서 맹꽁이 소리를 듣다니 반가웠다. 한강 둔치까지 이어져 있다는 이 자전거 길을 나는 달려보고 싶었다.

다시 한 번 도전이다. 안장이 낮은 자전거를 장만했다. 연습할 때는 두꺼운 바지를 입고 그 속에 내복하나를 더 껴입으란다. 다치는 것을 염려하는 친구 말이다. 시장 볼 때도 가벼운 볼일도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친구, 그래서 부러웠던 그 친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올라타고 내리는 것과 브레이크 잡는 것, 그리고 평행감각을 익히는 것 등, 몇 가지 설명을 들었다. 핸들을 잡고 불안해하는 나를 보고 한마디 한다.

“자동차 운전은 잘하는 사람이 겁도 많네.”

“이 친구야, 자동차는 네 발이고 자전거는 두 발이잖아”

나는 자전거를 끌기도 하고 타기도 하면서 아파트 마당을 돌았다. 이른 새벽과 늦은 저녁, 차가 다니지 않는 한가한 시간을 골랐다. 어쩌다 사람을 만나면 제자리에 서 있고 차를 만나도 멈추었다. 열흘쯤 지났을 때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조금씩 즐거움이 따랐다. 드디어 오늘 한강 둔치로 목표를 정하고 출발한 드라이브 길이다. 자전거 길을 따라 달리는 길은 꽃들로 이어졌다. 뿐인가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은 활기가 넘쳤다.

“바람 돌이 같네.”

친구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긴 행렬은 사라져 간다. 천변을 따라 이어져 있는 갈대숲과 롤러 스케이트장,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느라 작업이 한창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담소하며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했다.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한가한 시간을 즐기는 시민들이 보기 좋았다. 곧 도착한다는 말을 들으며 부지런히 따라간다.

“초봅니다. 길 좀 비켜 주세요.”

앞서 걷던 사람들은 선뜻 비켜준다. 핸들 앞에 울리는 벨이 있건만 아직은 말이 더 빠른 것을 어찌하랴, 이대목동병원이 저만큼 보이고 모퉁이를 돌고 나니 안양에서부터 흐르는 물이 합수(合水)되는 한강이다. 확 트인 시야에 강물은 넘실대고 건너편 하늘공원이 보인다.

작지 않은 이 나이에 해냈다는 성취감이 나를 조금 들뜨게 했다. 기분이 좋았다. 바람을 가르며 페달을 밟는 것, 그것은 즐겁고 유쾌한 일이었다. 그리고 통쾌했다. 운동과는 거리가 먼 내가 이렇게 해내고 보니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우울하게나 몸이 처지는 날은 자전거를 타보라 하고 싶다. 그리하여 온갖 꽃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라, 새로운 경험은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

맑은 물이 흐르고 달맞이꽃이 피었던 내 고향, 이맘때면 친구들과 거닐었던 둑길, 그 둑길을 나는 여기서 본다. 꽃길 따라 페달을 밟는 내 눈앞으로 20년 전 두고 온 고향이 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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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안에 있는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로마서 14장  17,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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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론’ 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틀이 잡힌 책한 권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40여 년의 긴 세월에 걸쳐서 비교적 많은 글을 쓴 편이고, 그 대부분이 삶의 문제를 이모저모에서 살펴본 기록이었으니, 이제 새삼스럽게 ‘인생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 걸고 쓸만한 말이 있겠느냐는 의문은, 저 욕심에 눌려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마 내 마음의 세계와 필력(筆力)을 과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계간지 <철학과 현실>에 연재하기로 하고 원고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92년 봄부터였다.

개인의 생애는 출생으로부터 시작하여 유년기와 청소년기 그리고 장년기를 거쳐서 노년에 이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붓을 들기 시작했다.

-머리말에 쓰신 글이다 -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사실을 비관하는 것은 부유한집에 태어난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빈약한 체격을 불평하는 것은 건장한 체격과 비교하기 때문이요, 두뇌가 나쁘다고 불평하는 것은 머리가 좋은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광막한 우주에는 수없는 별들이 돌고 있으며 그 가운데 지구는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운 별이다. 우리는 이 쾌적한 지구에 살고 있으며, 동물의 왕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인간으로서 살고 있다. 우리의 처지에 불만을 품는 다면, 조물주는 우리를 생각이 좁은 배은망덕의 무리로서 괘씸하게 생각할 것이다.

현대에는 부모의 빈부가 가문을 대신하여 벽을 쌓고 있다. 이 빈부의 벽도 결코 만만한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옛날의 가문의 벽과 같이 절대로 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것은 아니다. 꾸준한 노력으로 역경을 이겨냄으로써 입지적인 인물이 된 사람의 생애는 귀하다고 보아야한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기르는 일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많은 과정이다. 이 어려운 문제를 슬기롭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의 성패가 판가름 난다. 문제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다름 아닌 덕성(德性)이다. 덕성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으로 얻어지는 사회생활의 능력이다.

나의 인생은 나 스스로 설계해야한다는 말씀, 기나긴 삶의 과정 속에서, 더러는 예상치 못했던 상황의 변화가 생겨서 도중에 부분 적으로 설계를 변경해야할 경우도 생기지만, 어쨌든 내 삶은 내가 설계하고 내가 살아야 한다는 말씀, 그리고 자신의 소질과 개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이를 살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산다는 것은 힘들고 괴로운 일, 때로는 흥겨운 일도 생기고 영광스러운 축복이 파묻히기도 하지만, 보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어려움과 싸워야하고 외로움을 견디어야 한다는 말씀,

길가의 민들레가 행인들의 발길에 밟히면서도 굴하지 않고 일어서며 꽃을 피우듯이,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하며 보람을 찾아 성실하게 살아야한다는 것, 지혜로운 건강관리 ,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자아의 성장, 폭 넓은 전문가의 길 , 새 시대를 위한 삶의 지혜, 사랑의 근원,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 놀이와 쾌락주의, 심덕, 삶과 늙음, 멋있는 삶, 책은 12장으로 나누고 있다. 인생 전체를 다룬 지혜로운 말씀이 그야 말로 무궁 무진 하다.

김태길 교수님은 충북 중원이 고향이시다. 윤리학을 전공하신 철학가이시며 서울대학교 물리대학 학장과 한국철학회 회장님을 역임하셨고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받으셨다.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와 지표를 주시고 2009년 5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웃는 갈대>(1961.처녀수필집) <빛이 그리운 생각들>(1965) <검은 마음, 흰 마음>(1968) <삶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멋없는 세상 멋있는 사람> <장관 대우> <껍데기와 알맹이> <마음의 그림자> <꽃 떨어져도 봄은 그대로> <초대> 그 외에 다수가 있다.

Posted by 물오리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 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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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손자 손녀에게 들려주는 할머니의 성경말씀

오늘은 창세기 21 장 1절입니다.

                                                                                                    

 

 


 


                                            성경은  [서울말씀사 쉬운성경]그림은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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