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가 달포나 끈질기게 나를 잡았다.
콩 만 한 편도선이 부어 침을 삼키기도 어렵고 기후 탓이라는데, 신종 바이러스가 체질 따라 침투해 나갈 줄을 몰랐다. 코 막힘과 띵한 머리 하루거리처럼 해질녘은 더했다. 심해지는 공해 때문이겠지만 ‘오뉴월 감기는 뭐도......’ 하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고생하지는 않았는데, 큰 병이라도 생긴 것 같아 우울했다. 약을 먹고 어 한기가 들어서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쿠션을 기댄 채 누웠다.
2002년 월드컵, 드디어 막이 올랐다.
6월4일, 폴란드와의 첫 경기를 보기 위해 큰아이, 둘째, 그리고 사위까지 우리 가족은 이른 저녁을 먹고 TV 앞에 앉았다.
백일 남았다, 한 달 남았다, 매스컴에서 이야기 할 때마다 세계의 눈이 집중되는 나라 잔치이니 잘 치러 내야할 텐데 하는 염려의 마음이 앞섰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축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열 한 명이 뛰는 것과 볼을 발로 차서 골대 안에 넣으면 한 점을 득점한다는 것 그 정도다. 중계방송에서 ‘골-인’ 하면 그냥 ‘공이 들어갔구나.’ 했다. 노년을 심심하지 않게 보내려면 각종 경기에 취미를 가져야한다는데, 운동 신경이 둔한 편이라 그런지 좀처럼 마음이 가질 않는다. 하긴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가 군대 이야기와 축구 이야기라고 했다지 않은가. 약 기운 때문에 설핏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와-” 하는 함성이 귓전을 때렸다.
“골인, 골인, 어머니 골인입니다” 사위도 딸도 박수를 치며 소리소리 지른다. 그러고 보니 밖에서도 난리다. 아파트 전체가 들썩들썩 할 것 같은 함성이다. 첫 꼴을 넣고 달려 나오는 황선홍, 땀에 흠뻑 젖은 얼굴이 거듭 클로즈업된다. 전반전 26분의 선제 골, 나도 가슴이 요동을 친다. 그리고 후반전 유상철의 두 번째 골, 아- 놀라운 첫 승리였다.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의 5만여 관중은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48년만의 쾌거라고 해설자도 신명이 났다. 광화문, 세종로 네거리, 대학로, 수천 명씩 모인 붉은 악마- 나라 안은 그야말로 감격(感激)의 물결이다.
공격수가 있고 상황에 따라 뛰는 미드필더, 수비와 골키퍼, 그리고 반칙으로 발생되는 옐로카드와 퇴장을 당하는 레드카드, 코너킥과 프리킥, 상대팀에게 쉽게 득점을 내줄 수 있는 페널티 킥, 경기를 보며 배우니 한결 재미가 더 하다.
볼이 바나나처럼 휘어서 들어가는 것은 바나나킥, 몸을 공중으로 날려 머리위로 차는 것은 오버헤드킥, 이 슈팅은 멋지고도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태극전사들의 승승장구(乘勝長驅)와 함께 감동은 이어졌다.
6월 15일, 참가국들의 경기 속에 유독 내 눈길을 끄는 선수가 있었다. 전차군단으로 불리는 독일 팀의 골키퍼 ‘올리버 칸’이다. 나는 이 선수를 보는 순간 언 뜻 고릴라가 떠올랐다. 눈과 눈썹 사이가 좁고 잇몸은 조금 튀어 나왔으며 가느다란 눈에서는 광채가 났다. 어느 쪽에서 날아오든 간에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는다. 신문에서는 그를 거미손이라고 했다.
21일 준준결승 날 미국과의 경기에서 칸은 왼쪽 깊숙이 들어간 결정적인 슛을 모서리까지 나와 잡아냈다. 미국의 공세를 철벽(鐵壁)의 수비로 방어한 것이다. 공격수가 힘차게 슛을 하면 거미 손은 어김없이 잡고 만다. 스피드와 순발력, 결코 놓치지 않는 동물 적인 감각에 나는 그만 입이 딱 벌어졌다. 인간이 저토록 빠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거미 손 이운재- 22일 4강을 눈앞에 두고 연장전까지 몰고 간 스페인과의 120분, 이기고 지는 것이 결정되는 승부차기의 아슬아슬한 순간, 모든 것은 골키퍼 이운재의 손에 달려 있었다. 숨을 죽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는 양손을 감싸 쥐었다. 드디어 네 번째 키커- 호아킨이 슈팅한 공을 그는 거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동작으로 막아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아이를 얼싸안고 겅중겅중 뛰었다.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를 쳤다. 이 통쾌함 속에 슬금슬금 찾아왔던 한기(寒氣)도 꼬리를 감추고 태극전사 이운재 얼굴만이 흐려진 시야 속에 들어왔다. 그는 4강 신화에 주역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 공놀이는 직사각을 그려놓고 했다. 양쪽 라인밖에는 공격수가 있고 안에는 상대팀이다. 한 사람 한사람 공으로 공격을 하는데 맞으면 탈락이다. 공을 받다가 놓쳐도 퇴장이다. 그 대신 날아오는 공을 잘 받으면 실격되었던 친구가 다시 살아 합류한다. 문제는 유감스럽게도 나는 매번 공을 놓치고 만다. 마음으로는 다른 아이처럼 잽싸게 받아 우리 편 하나라도 살리고 싶었지만 피하는 것도 못해 눈총을 받았으니 게임에서 인기가 없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어쩌다 공을 두 손으로 받아 가슴에 안으면 그 성취감은 대단했다. 날아오는 공을 받는 것, 그것의 묘미를 나는 그때 터득했다.
예측할 수 없는 공을 척척 받아내는 거미 손, 넘어지면서 막아내고 몸을 날리면서 낚아채는 모습은 너무도 놀랍다. 그들은 역시 아름다운 프로였다.
모든 경기를 끝내고 칸의 웃는 얼굴은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칸과 이운재, 이들의 거미손은 4강이란 영광의 고지 위에 조국을 나란히 올려놓았다. 그리고 피파가 골키퍼에게 주는 최고의 상 ‘야신상’ 후보에도 함께 올랐다.
한 달 여의 감동 속에 독감은 사라지고 나는 이제 축구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아졌다. 이 시대를 살아서 극도에 기쁨과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오늘을 위해 우리 가족은 축배를 들었다.
200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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