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밤지기 이문세가 요즘은 낮지기가 되어 아침방송을 한다.

  금요일은 아침음악회가 있는 날인데 초대된 사람들은 보컬 팀이다.  그들은 치과 의사라 했고, 그래서 이름도 ‘이빨스’ 란다.  각자가 맡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데 리듬이 경쾌하다.  가사를 들어보니 역시 이빨에 관한 내용이다. 

  “ 이가 아프면 치과를 빨리 찾아요. 이빨 이빨,  이빨스,” 

  나는 아침을 먹다가 그만 웃음이 터졌다.  그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단다.  짐작컨대 학창시절은 학업에 충실해 치과의사가 되었을 것이고, 지금은 병원을 운영하며 틈틈이 연습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봉사를 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렸을 것이다. 

   “사모님들, 시간을 허락해주어서 고마워요” 팀 한사람이 안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건강한 사회일원으로 유쾌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른 아침, 시흥계곡을 오르려면 산 아래 있는 도로를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산을 감고 도는 담벼락아래 고유번호가 적힌 거주자 주차선이 그어져있는데, 작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오후 2시면 들어옵니다.

  차를 세우시게 되면 전화번호를 남겨주십시오. 죄송합니다.’

  단정한 글씨가 팻말에 쓰여 있다.  글을 읽으며 어떤 사람일까, 나는 궁금증이 일었다.  좀처럼 남을 배려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이렇듯 사려 깊은 사람이 있다니, 내 마음속에선 그야말로 싱그러운 바람이 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주 작은 일에 유쾌해진다.  일테면, 운전 중에 옆 차가 앞으로 들어오겠다고 점등을 켰을 때, 나는 거반 양보를 하는 편이다.  물론 잘하지 못하는 운전 탓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라져갈 때 또 기분이 유쾌해진다.   뿐인가, 버스가 정차하면 노인이 탑승하도록 뒤에서 도와주며 기다려주는 사람,  이사를 가면서 필요한 전화번호를 현관문에 부쳐주고 가는 사람, 사소한일이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평범한 일상, 인생이란 그냥 그렇게 무탈하게 흘러가면 다행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때때로 스치는 풍경에서 유쾌함을 느낄 때, 나는 삶이란 것이 더 좋게 느껴진다.

                                                      

Posted by 물오리
 

 

      일주일에 두 번, 나는 초등저학년 꼬맹이들과 동화책 읽기를 한다.

     책상을 마주하고 둘러앉은 아이들은 차례로 책을 읽는다.  열 두 명의 초롱초롱한 눈은 친구가 읽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착한 소녀가 돌 아래 깔린 용을 구해주고, 말만 하면 모든 것이 나오는 요술 맷돌을 얻어, 행복하게 잘 산다는 동화다.  어느 대목이 재미있었는지, 느낀 점은 무엇인지, 돌아가며 이야기내용을 정리하고 나면, 나는 한 가지 더 질문을 한다. 

  “만일, 요술 맷돌이 여러분에게 생겼다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요?” 

  “돈이 많이 나와서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하겠어요.”

  “좋은 집하고 맛있는 과자 나오라고 말 하고 싶어요.”

  “동생 하나 달라고 할래요.” 

아이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헌데 마지막에 한 아이가 하는 말에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저는 요, 먹을 것을 많이 나오게 해 달래서, 아프리카에 배고 푼 아이들 도와주고 싶어요.”

“어머나 신통해라, 그런 생각을 했구나.”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돈을 이야기 한 아이는 부모가 맛 벌이를 하는 환경이고, 동생을 원하는 아이는 자기하나여서 외로운 모양이다.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기특하게도 남을 배려 할 줄 아는 마음이다.  아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마치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화선지가 떠오른다.  뿐인가, 웃는 얼굴은 순수 그 자체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날은 내 마음도 즐겁다.

 

  연세대 교육학자이신 이성호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꼬맹이들의 사회생활은 시작 된다고 한다.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란아이는 언어가 발달이 되고, 이것저것 경험하며 자란아이는 사고력(思考力)이 넓어진다고 하였다. 되도록 보고 듣고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란다. 그리고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사항을 알아내어 키워 주라고 했다. 

   동화책은 아이들에게 호기심과 읽는 재미를 준다. 전래동화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을 알게 해주고, 창작동화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기도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가족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하고, 장애가 있는 친구를 그대로 받아드릴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있는가 하면, 환경을 소중히 해야 하는 지구이야기, 상대방을 배려하는 착한마음이 담긴 내용, 두려움이 많은 아이에게는 용기를 주는 책도 있고,  존재의미를 알고 참된 우정을 알게 하는 이야기, 전쟁의 잔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책, 아이들이 읽기에 좋은 책들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동화책 읽기는 아이들에게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초등학교생활이 시작되는 시기에 엄마와 책을 읽고 이야기내용을 정리해본다면, 아이들의 정서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며칠 전에 읽힌 책은 ‘의사 안중근’이다.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그분의 업적을 다시 새겨보았다.  나무는 땅속에서 자양분(滋養分)을 얻어 성장하듯이, 아이들은 책을 통해 좋은 자양분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은 슬기로운 아이로 자라게 할 것이다. 요즘 내가 즐겨 가는 곳은 어린이 도서관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크는 아이들, 그 순백의 마음에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것이 내 희망사항이다.      




Posted by 물오리

일본규슈여행

여행[Album] 2011. 2. 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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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더덕이 곰팡이가 나서 화단에 묻었더니 싹이 났습니다. 그리고 예쁜 꽃이 피었습니다.
향기도 좋고 꽃모양도 앙징맞게 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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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봄이 되면 반드시 감상해야 할 꽃이 있다. 산허리와 기슭을 뒤덮고 붉게 물들인 진달래의 만발한 무리를 보지 않고 봄을 보내서는 안 된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소나무들의 파아란 색채에 높은 공간을 미련 없이 양보하고 그 아래 사이사이를 수놓듯 여기도 피고 저기도 피어 있는 진달래의 무리. '금수강산'이라는 찬사를 연상하며 한국에 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어찌 진달래뿐이랴. 가는 곳마다 계절을 따라 온갖 꽃이 피고 진다. 산과 들에는 들꽃이 피고, 공원과 정원에는 재배한 꽃이 핀다. 무슨 꽃이 가장 좋으냐고 묻지 말라. 모란과 장미, 매화와 난초, 목련과 라일락, 들국화와 코스모스 그리고 그 밖에도 무수한 꽃들이 각각 독특한 향기와 아름다움을 자랑하거늘, 굳이 비교하여 우열을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피는 꽃의 우열을 말하기는 어려우나 지는 꽃의 모습에는 깨끗한 것과 추한 것의 구별이 완연하다. 아직도 윤기와 광채를 남긴 꽃잎을 바람에 휘날리며 미련 없이 떨어지는 모습과 이미 시들어서 보기에 흉한 꼴로 매달려 있는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깨끗하게 지든 추한 꼴로 지든 꽃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것들이 피어 오르는 모습을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기분이 쓸쓸하고 허전하다. 가지에 매달린 채 하루하루 시들어 가는 라일락이나 덩굴장미의 모습도 보기에 딱하지만, 하늘하늘 바람에 휘날리는 벚꽃 또는 서부해당화의 낙화 풍경은 더욱 무상을 일깨운다. 그러나 새봄이 되면 또다시 생명력 넘치는 꽃을 피우며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까닭에, 우리의 마음은 가벼운 아쉬움만 느낄 뿐 크게 상하지는 않는다.


2

빼어난 여자의 아름다움은 꽃의 그것보다도 더욱 눈부시고 신비롭다. 막 피기 시작한 흑장미나 반쯤 열린 자목련의 자태를 세밀하게 관찰한 사람은 너무나 탁월한 조물주의 솜씨에 크게 감탄한다. 그러나 뛰어난 미녀의 눈이나 코 또는 입술을 눈여겨 바라본 경험을 가진 사람은, 조물주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은 식물의 세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차라리 눈을 감는다.

그러나 여자의 얼굴이나 몸매를 꽃을 바라보듯 자세히 살펴볼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남의 집 정원에 만발한 꽃을 담 너머로 발길 멈추고 바라보면, 그 집 주인도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과년한 딸이나 아름다운 아내의 탐스러운 모습을 외간남자가 뚫어지게 관찰하는 것을 기분좋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의 정원의 꽃을 욕심으로 바라본다고 의심하지는 않지만, 남의 딸이나 아내의 미모를 바라보는 눈에는 불순한 생각이 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꽃은 한 송이 한 송이 떨어져 있는 것보다도 공간을 꽉 채우고 무리져 있는 것이 더욱 볼 만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은 혼자서 조용히 떨어져 있을 때 한층 귀하게 보인다. 미인 선발 대회의 실황이 중계 방송될 때마다 집 안의 여자들은 다투어 다이얼을 돌리지만, 나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사람이란 남자든 여자든 한 곳에 너무 많이 모이면 그 진가가 흐려진다는 생각을 나는 오래 전부터 가지고 살았다.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는 마음도 아름다울 것임에 틀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마음이 곱지 않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신문이나 주간지에 실리는 기사 가운데는 우리네의 상상을 뒤엎는 가석可惜한 이야기가 허다하다. 아름다운 여자를 그렇게 만든 것은 이 땅의 남성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공연한 연대 책임을 자청하기도 한다.


3

아름다운 마음씨는 아름다운 꽃이나 빼어난 미모보다도 더욱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아름다운 행위를 남이 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거나 또는 그런 미담을 들었을 때의 감격은, 아름다운 꽃이나 미녀를 만났을 때의 감동보다도 더욱 깊게 가슴에 사무친다. 아름다운 마음씨가 이토록 고맙고 거룩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마음씨는 아름다운 꽃이나 미녀보다도 그 사례가 희귀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름다운 마음씨는 꽃이나 미녀와는 달리 그 생명이 오래 지속되기 때문일까.

꽃은 열흘 붉기 어렵다 하였고, 절세가인의 자태도 세월이 흐르면 주름살 뒤로 사라진다. 사라진 뒤에도 새로운 꽃이 다시 피고 새로운 미녀가 다시 나타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날의 그 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아니니 역시 덧없고 허망하다. 다만 아름다운 마음만은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간 뒤에도 오래오래 생명을 유지하고 빛을 남긴다.


이 세상에는 꽃과 미녀와 아름다운 마음씨 이외에도 실로 많은 사물들이 존재한다. 그 많은 존재들 가운데는 추한 것도 많고 악한 것도 많다. 그 추악한 것들로 인하여 세상이 온통 어두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추악한 것들 가운데 섞여 있는 까닭에, 꽃과 가인佳人과 아름다운 마음은 더욱 귀하게 돋보인다. 이 세 가지 존재만으로도 세상은 끝없이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났음을 고맙게 여기며 슬픈 이야기들은 애써 잊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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