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만난 얀씨부부 그들은 다정했고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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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다.

   마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 가슴에 아기가 등을 대고 안겨있다. 바람이 불어 아기랑 엄마랑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날린다. 그리고 엄마가 아기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바람소릴 들어봐” 라고.  이것은 큰 아이가 화강석으로 조각한 [세로50CMㅡ가30CM] 모녀상이다.

‘바람소릴 들어봐’ 는 작품명이며 우리 딸이 아끼는 작품이다.

   눈 코 입이 또렷하지는 않으나 두 걸음 물러서 보면 분명 다정한 모녀의 모습이다.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나는 골똘히 살펴보았다. 과연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 아기를 양손으로 포근히 감싸 안은 자태는 따듯함이 전해온다.

‘바람 소리라’ 나는 입 속으로 읊조려 보았다. 싱그러운 어느 봄날, 바람이 대지를 깨우고 오색가지 꽃을 피우는 그런 소릴 들어보란 것일까. 아니면 한 소녀가 착한 일을 했는데, 그 아이에겐 칭찬을 해줄 부모가 없었단다.  언덕에 앉아있으려니 부드러운 바람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란 동화 속의 바람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열정의 여름을 지나 탐스런 열매를 맺고 잎을 떨어뜨리는 쓸쓸한 초동(初冬)의 바람인가. 여러 가닥으로 생각이 피어올랐다.

  작업실에서 며칠 만에 돌아온 딸에게 저녁을 먹으며 나는 물었다.

  “바람소리는 어떤 소리야?” 잠시 머뭇하더니 입을 연다.

  “엄마, 그 바람 속엔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있어요.” 

  순간 나도 모르게 손끝이 떨려왔다. 세월 저편에 묻어 버렸던 아픔의 상처가 움찔하고 있었다.

  ‘그래, 아홉 살 되던 해, 아빠가 떠나셨지’ 어린 가슴에 그때의 슬픔이 어떠했는지, 비로소 나는 아이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큰 착각 속에서 살았는가. 모든 어려움을, 슬픔까지도 내가 맡는다. 내 우산 아래서 탈 없이 성장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이라는 한 그루의 나무가 깊은 상처를 입으면 가지마다 아파한다는 것을 나는 잊고 살았던 것이다. 삶의 몫이 따로 이듯이 슬픔의 몫도 따로 인 것을…….  정녕 가슴에선 갈바람이 불었다.


   불경 보왕삼매론에 ‘삶에 고단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하셨거늘 어찌 평생 순탄하기만을 바라겠는가.  생각해 보면 순간순간 부는 바람소리도 그때마다 달랐다. 기분 따라 슬프게도 들리고 어느 날은 위안으로도 들렸다. ‘주저앉지 말고 일어서라’ 호통으로도 들렸다.


   딸아이가 중3, 졸업을 앞둔 무렵이었다. 독서실에 보내놓고 가끔 마중을 가곤 했는데,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관리인은 결석을 한 지가 여러 날이라고 했다. 분명 다녀온다는 인사까지 했는데……. 먹구름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자정을 넘긴 밤은 진한 먹물을 갈아 부은 듯 어두웠고, 십이월의 찬바람은 내 가슴을 더욱 파고들었다.  생각나는 친구들을 깨우고 수소문 끝에 찾아낸 곳은 수재민촌이라고 불리는 산동네. 공부보다는 놀기 좋아하는 같은 반 아이 친구 집이었다. 나는 아이를 잡고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새벽 5시, 잠이 덜 깬 딸 손을 잡고 나는 시장으로 향했다. 침구(寢具) 일을 하는 엄마 일을 돕도록 하기 위함이다. 너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보아야 알리라. 양손에 물건을 잔뜩 들고 힘겹게 따라오는 딸아이 모습을 보며 나는 입술을 물었다.  시장을 다녀오면 오전 8시, 나는 일터로 아이는 학교로 갔다. 그러기를 서너 달, 

   “엄마 잘못 했어요.”

   아이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딸아이 사춘기를 우리 모녀는 그렇게 넘기고 있었다.

   학사모를 쓰던 졸업식 날도, 조각전에 입상을 해 상패를 안겨준 날도, 딸아이는 그때마다 나를 한 번씩 더 울려 주었다.  계절마다 부는 바람 속엔 내 기쁨과 슬픔도 함께 있었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딸은 한마디 덧붙인다.

   “그 바람 속엔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가 많아요. 오늘이 흐렸으면 내일은 다시 해맑은 태양이 떠오른다. 열심히 일하고 당당하게 살아라. 이런 말들요.”

   “그래, 내가 그랬지.” 우리는 마주보고 웃었다.

   이제 딸은 나름대로의 음향대로 살아 갈 것이다. 바람소릴 들려주던 젊은 엄마는 어느 사이 그 딸을 의지하며 산다. 때때로 친구가 되어주고 나를 감싸주는 울타리다. 어찌 보면 바람소리를 들으며, 느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앞으로 20년, 세월이 가고 나면 나는 그 딸의 말을 들으며 살 것이다.

   “어머니, 바람소릴 들어 보세요” 라고.





   

 

Posted by 물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