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 연옥' 편에는 커다란 바위에 짓눌려 허리가 굽은 인간이 나옵니다. 영원히 땅만 보는 벌을 받은 것이지요. 그들은 무슨 죄를 범한 것일까요. 교만입니다. 뻣뻣한 허리로 위만 보며 살았기에 굽은 허리로 아래만 보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이야말로 모든 죄의 어미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겸손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수난을 예고 하셨지요. 그렇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처음 수난을 예고하시자 베드로는 안 된다며 예수님께 항의하지요. 두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셨을 때는 누가 더 크냐며 다툽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 후에는 급기야 자리다툼까지 벌어집니다.
이토록 제자들은 십자가의 길을 모릅니다. 무엇때문 일까요. 예수님은 분명하게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왜 청맹과니처럼 도무지 못 듣는 것일까요. 무엇이 귀를 막고 눈을 가린 것일까요. 교만입니다. 그들은 누가 더 높으냐며 높은 곳만 바라보았습니다. 교만한 눈으로는 십자가의 길을 볼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겸손히 무릎 꿇고 기도하며 가는 길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존스홉킨스대 소아정신과 교수로 일하고 있는 지나영 교수는 많은 아이를 상담하면서 자녀 양육에 힘들어하는 한국 부모를 향해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본질에 집중하라"라고 말합니다.
그는 저서 '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 육아'를 통해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절대적 존재 가치를 심어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질 때 자녀는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키가 작은 아이가 엄마에게 키가 작다고 고민할 때 " 그럼 일찍 자야지, 밥 많이 먹어야지 "라고 대답한다면 키가 작은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지금 그 존재 자체가 사랑스럽다는 인식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재 자체로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순종으로 이어지듯 자녀 양육과 복음의 방식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존재 가치를 누릴 때 세상에 이바지 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복음으로 자녀를 양육할 때 가장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