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영국 언론인 다니엘 튜더는 이 책을 통해 지난 50년 동안 한국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 예리하게 분석합니다. 불가능의 기적을 이루고 소프트 파워로 세계를 놀라게 하면서도 정작 국민 안에는 만족감과 기쁨을 잃어가는 정서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언제 기뻐할 수 있을 까요. 부활절 부터 성령강림절까지의 50일을 '기쁨의 50일'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자들은 그 사실로 인해 기뻐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도 부활의 주님을 만남 후,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라고 노래했던 하박국 선지자나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라고 명령했던 사도바울처럼 우리도 기쁨을 회복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기뻐 할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기쁨을 선택하고 누리십시오. 기쁨이 습관이 될 것이고 , 점점 기뻐할 일리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삶의 변화는 습관적인 일상의 선택들을 통해서 옵니다.
부활초를 아십니까, 부활초는 다년생 가시목으로 평소에는 완전히 말라버려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식물입니다. 공처럼 몸을 말고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다니다가 물을 만나면 몸체가 퍼지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립니다.
부활초는 겉으로는 완전히 죽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물을 만나거나 비가 오면 다시 살아납니다. 그 생명력이 얼마나 대단 한지 무려 100년이 넘어서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부활초안에 감춰진 생명의 씨앗과 수분이 주는 생명이 만나니 다시 살아 나는 겁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안에 생명의 씨를 주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생명의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 몸은 변화되어 다시 살아나게 될 겁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비를 기다리는 부활초처럼 믿음과 인내로 끝까지 참으십시오. 100년이 되어도 다시 살아나는 부활초처럼 사망의 승리자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살리실 줄 믿습니다. 이런 부활의 능력, 생명의 소망을 갖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단테의 신곡' 연옥' 편에는 커다란 바위에 짓눌려 허리가 굽은 인간이 나옵니다. 영원히 땅만 보는 벌을 받은 것이지요. 그들은 무슨 죄를 범한 것일까요. 교만입니다. 뻣뻣한 허리로 위만 보며 살았기에 굽은 허리로 아래만 보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이야말로 모든 죄의 어미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겸손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수난을 예고 하셨지요. 그렇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처음 수난을 예고하시자 베드로는 안 된다며 예수님께 항의하지요. 두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셨을 때는 누가 더 크냐며 다툽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 후에는 급기야 자리다툼까지 벌어집니다.
이토록 제자들은 십자가의 길을 모릅니다. 무엇때문 일까요. 예수님은 분명하게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왜 청맹과니처럼 도무지 못 듣는 것일까요. 무엇이 귀를 막고 눈을 가린 것일까요. 교만입니다. 그들은 누가 더 높으냐며 높은 곳만 바라보았습니다. 교만한 눈으로는 십자가의 길을 볼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겸손히 무릎 꿇고 기도하며 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