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여러분의 소리를 마음을 다해 들어주는 분을 곁에 두고 계시는 가요.  우리 소리를 진정성 있게 들어주는 대상을 만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들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그 말씀애 순종하는 게 신앙의 마땅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또 다른 면을 강조합니다.  출애굽 사건만 봐도 그렇습니다. 출애굽의 출발 지점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이처럼 '들으시는 하나님' 에 대한 기록은 성경 곳곳에  넘쳐 납니다.  예수님 또한 그런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귀를 크게 열고 온 마음을 다해 들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리를 허투루 듣지 않으시고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천둥 보다  더 크게 들으십니다. 우리 내면의 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반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Posted by 물오리

 

     성경에서 말하는 평안이란 감정적으로 요동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할 때 마음의 평온 함이나 요동치 않음을 목표로 한다면 아마도 도교에 가까울 것입니다. 영적 성장은 단순히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  그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 그 은혜를 삶의 환경 속에서 적용할 때 일어납니다. 

    성경은 사랑을 단순히 감정적 평온한 상태라고 말하지 않고 ,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래 참는다는 것은 힘든 과정입니다. 즉 사랑이 자라는 것은 오래 참는 과정을 통해  생겨납니다. 

     참된 평안은 평안 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때 생깁니다. 참된 기쁨은 기뻐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하늘의 기쁨을 누릴때  생깁니다.

    " 범사에 감사하라 " 는 말씀은 기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감사를 선택하라는 말입니다. 신앙의 성장은 평안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이 요동치는 선택의 순간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때 이루어집니다.  이 땅에서 경험하는 모든 갈등과 어려움은 결국 우리를 더욱 성장하게 하는 하니님의 도구입니다. 

Posted by 물오리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

사무엘하  1장 ~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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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의 유혹에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뱀의 말 핵심은 " 하나님은 너의 자유를 제한하는 분이시다."라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하와의 마음 안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의심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품을 분리하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 앞에서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 말씀을 오해하기도 하고 왜곡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이 분리되지 않으면,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이 내게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아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것이 의심이 될때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그분의 사랑이 선명하게 우리를 비춰주고 있습니다.  모든 죄의 시작은 그분의 성품과 그분의 말씀이 분리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Posted by 물오리


성 빈센치오의 '물을 마셔라' 스페인의 격언입니다 .

존경받는 사제 빈센치오는 남편과 갈등하는 부인에게 '성수' 한 병을 주었지요.

남편과 부닥치면 얼른 입에 한 모금 먹으라는 것입니다.  

부인이 그대로 했더니 놀랍게도 다툼이 사라졌습디다.

왜 그랬을까요.빈센치오의 성수는 '침묵의 지혜' 입니다.

거친 말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갈등을 이르킵니까 .

그런데 침묵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

사랑으로 위로하는 따뜻한 말, 희망을 불러 이르키는 말입니다.

"빛이 생겨라" 성서에서 하나님이 하신 첫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태초는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어두웠 습니다.  도대체 원칙도 질서도 없는 카오스였습니다.  

 한탄하고 절망하는 거친 말을 하겠지요 .

그러나 하나님은 그 깊은 어둠속에서 빛을 말씀하셨습니다.

빛을 희망하는 말씀이요 .빛을 창조하는 말씀입니다.  어두울 때 필요한 것은 빛입니다.

어두울수록 빛을 발하는 사람들이 더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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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하는 바울과 베드로
-  램브란트 -

Posted by 물오리

 

 

" 부족함이 없으시다고요?  나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그 이유를 계속 말했습니다. " 저는 모든것이 부족했습니다. 키도 작았습니다. 돈도 늘 부족했습니다.  죽는 게 낫다 싶어 

2층에서 뛰어내리려 했는데 그곳까지 갈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

그러던 분이 그 말씀을 이해하게 된것은 선한 아내를 맞이한 후였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남자를 기쁘게 남편으로 맞이하고 함께 사는 동안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아내 덕분에 자신의 부족함을 전혀 느끼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나는 음식을 먹다가 어느반찬이 맛있다고 말 못 합니다." 왜 그럴까 궁금했습니다.

"제가 말하는 즉시 아내는 더 이상 그  반찬을 먹지 않습니다. 나만 먹으라고요"  자기를 어떻게 채워주는 아내인지 은근히 자랑했습니다. 아내 덕분에 자기의 부족함을 잊은 그는 시편 23편을 깊이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을 향해 " 부족함이 없으시다고요?"라는 항변은 절대 하지 않는 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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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

성화 그리고 그림 2022. 10. 8. 09:39


까마귀와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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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이삭은  100배의 축복을 받습니다. 마침내 거부가 됐다고 창세기 26장은 이야기합니다.

이삭이 이 놀라운 축복을 이유는 간단합니다.  먼저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다음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네 곳의 우물을  팠더니 

샘물이 나왔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믿음의 길을 걸었던  이삭은 거부가 됩니다.

다음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

하나님 마음과 하나가 된 사람입니다. 

다윗의 길을 따랐던 여호사밧 왕, 히스기아 왕, 요시아 왕도 거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시고 , 모든 일이 형통한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다웃의 길은 왕과 민족 그리고 나라들을 풍요롭게 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온 우주의 거부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를 믿는 우리는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가야합니다.  그 길은 주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영혼 구원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라 영혼을 구원하는 거부의 길을 갑시다.

Posted by 물오리

 

 

"매일 우리 강의 실과 화장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어느 대학 간호학과의 기말시험 문제랍니다. 세상에 청소하는 사람의 이름을 누가 기억하겠습니까. 학생들이 조심스레 교수님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은  간호사의 기본은 사람을 향한 관심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간호사만 아니라 모든 직업의 기본은 사람일 것입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  예수님이 최후의 심판 비유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인자기 천사들과 더불어 영광에 둘러 싸여 올 때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모든 사람을 양과 염소 가르듯 갈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 양무리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세 때부터준비한 나라를 차지하게 되지요.  이 사람들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기에 엄청남 복을 받게 될까요. 그들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지극히 보잘것없는 한 사람을 돌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이 곧 예수님에게 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로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Posted by 물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