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서 물이 나온다는 석수(石水)동에서 이년 살았다.
유래를 찾아보니 관악산과 안양 유원지 일대에 석공이 많아 석수(石手)동이라고도 했다. 아파트 바로 뒤에는 높지 않은 산이 있는데 그 숲 속에 <석수 도서관>이 있었다.
책을 읽다가 창밖을 보면 숲 속 풍경이 운치를 더해주었다. 봄에는 뻐꾹새가 울었고 여름에는 철새들이 새끼를 키웠다. 가을에는 단풍이 고왔고 겨울에는 설경이 볼만했다. 신간에서 고전까지 책이 많았다. 그곳에서 나는 근래 없이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집에서 조금 걸어나가면 이내 안양천이다. 청계산 계곡에서 흘러오는 물은 한강으로 유입되는데 늘 깨끗하고 맑았다. 흰 고니는 아침 햇살에 날개를 고르고 물오리가 새끼를 데리고 소풍을 나왔다. 그뿐이 아니라 징검다리에 서면 언제나 어린 치어들이 몰려다닌다. 냇물이 돌아오는 산모롱이에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크고 작은 산들이 보이는데 그곳에 서면 냇가에서 소꿉놀이했던 내 유년의 고향이 다가선다.
지난봄, 안양천을 따라 광명시 하안(下安)동으로 한 번 더 이사를 했다. 구름산 아래 있는 편안한 동네란다. 지인에게 이곳 이름을 말하니 ‘이름이 참 예쁜 동내네요’ 한다. 베란다에 서보면 오른쪽은 구름산이고 왼쪽은 안양천이다. 그리고 내가 사는 이곳은 지은 지 오래되어 그런가,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은 침엽수가 있고, 제법 몸통이 굵어 가지가 휘도록 잎을 달고 있는 나무가 많다. 그 덕에 아침 공기가 신선하고 새는 노래한다.
이른 아침, 나는 안양천으로 산책 하러 나간다. 유유히 흐르는 내(川)는 여전히 맑은 물을 흘려보낸다. 천변 둑길을 걷다 보면 마주 서 있는 벚나무를 만나는데, 어찌나 튼실한지 그 아래서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많은 상춘객을 불러 모았다. 나도 가까이 지내는 문우들을 불러 꽃 마중을 했다. 요즘은 조금 때 이른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했고 키 큰 갈대가 바람에 일렁인다.
고향을 떠나 삼십 년 살던 00아파트가 안양천을 끼고 있었다. 그곳이 재개발로 들어가서 그야말로 노년을 새집에서 살아보자는 꿈을 가졌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한 조합장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조합원들의 예상과는 달리 삼 년을 계획했던 공사가 육 년이 걸렸다. 일차 분담금이 있었고, 시간을 끄는 동안 자제 값이 올라 이차 분담금을 내게 되어 손해를 보고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 좀 무리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입주를 기다리는 동안 본의 아니게 몇 번의 이사만 하고 아쉽게도 새집 꿈을 접었다.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면 나는 내(川)를 끼고 살았다. 왠지 냇가에 서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했다. 그것은 내가 자란 시골 풍경이 보여서인지도 모르겠다. 흐르는 냇물에 광목을 삶던 어머니가 보이고, 미역 감는 동무들이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라 장마가 지고 물이 늘어나면 친구들과 놀았던 그 냇물에 물장구치는 내 어린 딸아이들 모습도 선하게 보인다.
신세대 문학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며 세계적 작가로 알려진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취미가 이사란다.
‘짐을 챙겨 동네에서 동네로 옮겨 다니노라면 정말 행복한 생각이 든다. 그것은 모든 것을 무(無)로 만들 수 있다는 거다. 이웃과의 교제, 인간관계, 그 밖에 온갖 일상생활에서 자질구레한 일, 그러한 일들이 한순간에 소멸해 버리는 것이다. 이 쾌감은 한번 맛보면 잊을 수가 없다.’라고 했는데 생각하기에 따라 그것도 나름의 취미일 수 있겠다 싶다.
가재도구를 정리하여 짐을 싸고 짐을 옮겨주는 사람을 부르고, 사실 이사라는 것은 생각만 해도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부닥치고 보니 동네마다 새로운 환경이 좋은 점도 있고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취미로 이사를 한다는 하루키의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동네 살아보니 괜찮네.”
“엄마, 어디든 마음 붙이면 다 좋아요.”
지난해 작업실을 강화로 옮긴 큰애 말이다. 하기야 이 강산 어딘들 예쁘지 않으랴, 다만, 내가 흐르는 곳이면 나는 어디라도 하루키처럼 이삿 짐을 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