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생일선물로 받은 난이 꽃대를 내밀었다.

  “어머, 꽃이 피네”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화초를 기르는 것에 자신이 없는 나는 언제나 꽃 앞에 서면 미안한 마음부터 든다.  선물을 받았을 때도 고맙다는 말은 했으나, 실은 걱정이 앞을 섰다.  헌데 오늘 난이 꽃대를 세우고 얼굴을 쏙 내민 것이다. 가끔 물만 주었을 뿐인데 고맙다.

  이른 아침 삼성산을 오르는데 함박눈이 내린다.  12월 초, 늦은 감은 있지만 첫눈이다. 잣나무 가지가 눈을 이고 있고 까치는 여전히 아침인사를 한다. 수채화가 따로 없다. 자연은 늘 이처럼 거대한 그림을 그린다.  산기슭에 있는 배드민턴구장에는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이곳을 ‘삼성카페’ 라고도 부른다. 난로 가에서 차를 마시며, 난이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사님,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네요. 예로부터 난 꽃이 피면 집안 경사가 생긴다고 하지 않아요.” 손아래 후배가 한마디 한다.

  “참, 자네는 말도 예쁘게 하네.”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 경사(敬事)라, 한번 생각을 해 본다.  올해는 유난히 자잘하게 아팠던 기억이 난다.  올 커니, 막내에게 좋은 짝이 생기려나, 언뜻 그런 생각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난 잎을 닦아주며 ‘우리 집에 피어주어 고맙구나, 그 아우님 말처럼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네.’ 나는 혼자 주절 거렸다. 그러나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 어찌 내 집만 경사가 있기를 바라겠는가,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 원을 세우고 이산저산을 찾는다는 어느 등산가도 있는데, 집안마다 좋은 일 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해도 이십 여일, 그러저러 저물고 있다. 다가오는 기축(己丑)년 새해에는 희망이라는 꽃이 피어, 우리 국민 모두 다복(多福)했으면 하는 소망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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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둑길에 하얀 망초가 무리 지어 피어있다.

  바람을 가르며 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달이 뜰 때쯤 핀다는 달맞이꽃, 넝쿨로 뻗어서 군락(群落)을 이룬 분홍색 메꽃, 억새는 내 키를 넘어 가을을 예고한다.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했고 해바라기도 입술을 열었다.  봄에 피었던 유채는 씨를 잔뜩 안았고, 엉겅퀴, 민들fp, 명아주,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다. 

  꽃길을 따라 달린다. 칠월 초, 장마라 하더니 잠깐 소강상태다.  해는 구름 속에 숨어 쾌적한 날씨.  풀을 깎는 아저씨들 덕분에 들 향기가 진하다.  비가 온 뒤라 물가에는 백로인 듯, 목이 긴 새 두 마리가 수초 속을 뒤지고 있다.  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시원하다.  아니 가슴 속까지 시원했다.  머플러가 날린다. 나는 모자 끈을 단단히 조였다.

  “와, 좋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앞서 가는 친구는 초보가 잘 따라온다고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들며 나를 격려한다.  금천대교를 지나 철산교, 광명대교 그리고 오목교가 보인다.  엄마와 딸이 메밀꽃이 핀 모퉁이를 돌아가고,  친구 사이인 듯 젊은 아낙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야기를 하며 페달을 밟는다.  간간이 쉴 수 있는 의자가 있고 식수도 있다. 친구와 나는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벤치에서 잠깐 숨을 돌린다.

  사십 대 중반에 나는 자전거 타기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헌데 둔해서 그런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았다.  웬일인지 안장에만 앉으면 두려움이 앞섰다.  차가 오면 마음은 졸아들고 장애물이 나타나면 피해야지 하면서도, 결국은 그쪽으로 가서 들이받고 온통 멍이 들었다. 그리하여 체념을 한 터였다. 

  

   ‘안양천변에 아름다운 꽃길이 생겼다’ 는 문구가 구(區) 소식지에 실렸다. 나는 저녁을 이르게 먹고 동생이랑 꽃구경을 나갔다.  시흥대교를 건너 둑을 내려가니 천변(川邊)이 말끔하다. 산책하는 길이 있고 그 옆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길게 뻗어 있었다.  키 작은 채송화가 보이고, 빨간 꽃술을 단 봉숭아도 있고, 길섶에는 낯익은 꽃들이 다소곳이 피어있다. 한강으로 유입되는 안양천은 잔잔하게 여울지며 흘러간다.  언뜻 유년의 고향 냇가가 떠오른다. 어디선가 맹꽁이가 울었다.

   “어머 맹꽁이 아냐”

   “그러네, 장마 질 때면 울었는데”

   이곳에서 맹꽁이 소리를 듣다니 반가웠다. 한강 둔치로 이어져 있다는 이 자전거 길을 나는 달려보고 싶었다.

   다시 한 번 도전이다. 안장이 낮은 자전거를 장만했다. 연습할 때는 두꺼운 바지를 입고 그 속에 내복하나를 더 껴입으란다. 다치는 것을 염려하는 친구 말이다. 시장 볼 때도 가벼운 볼일도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친구, 그래서 보기 좋았던 그 친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올라타고 내리는 것, 브레이크 잡는 것 그리고 평행감각을 익히는 것 등 몇 가지 설명을 들었다. 핸들을 잡고 불안해하는 나를 보고 한마디 한다. 

    “자동차 운전은 잘 하는 사람이 겁도 많네.”

    “이 친구야 , 자동차는 네 발이고 자전거는 두 발이잖아”

    친구는 ‘호호’ 웃는다.

    나는 자전거를 끌기도 하고 타기도 하면서 아파트를 돌았다. 이른 새벽과 늦은 저녁, 차가 다니지 않는 한가한 시간을 골랐다. 어쩌다 사람을 만나면 제자리에 서 있고 차를 만나도 멈추었다.  열흘쯤 지났을 때는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조금씩 즐거움이 따랐다.  드디어 오늘, 한강 둔치로 목표를 정하고 출발한 드라이브길이다.

  자전거 길을 따라 달리는 길은 꽃들로 이어졌다. 뿐인가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은 활기가 넘친다.

  “ 바람돌이 같네.”

  친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져 간다. 길게 이어져 있는 갈대숲, 롤러 스케이트장,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느라 작업이 한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담소하며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했다.  바쁜 생활을 뒤로 하고 한가함을 즐기는 것이 보기 좋았다. 곧 도착한다는 말을 들으며 부지런히 따라간다.

   “초봅니다. 길 좀 비켜 주세요.”

   앞서 걷던 사람들은 선뜻 비켜준다.  핸들 앞에 울리는 벨이 있건만 아직은 말이 더 빠른 것을 어찌하랴. 이대목동병원이 보이고 모퉁이를 돌고 나니, 안양에서부터 흐르는 물이 합수(合水)되는 한강이다.  확 트인 시야, 물은 넘실대고 건너편에 하늘공원이 보인다. 시원한 강바람은 나를 감싸 안는다.    

    작지 않은 이 나이에 해냈다는 성취감이 나를 조금 들뜨게 했다. 기분이 좋았다. 바람을 가르며 페달을 밟는 것, 그것은 즐겁고 유쾌한 일이었다. 그리고 통쾌했다. 

   기분이 좀 그런 날은 자전거를 타보라고 권하고 싶다. 온갖 꽃이 피어있는 이 길을 달려 보라하고 싶다. 그리하여 꽃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라,  새로운 것을 해 본다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다.  

   십 년 전만 해도 안양천은 하수구 냄새가 났었다.  밋밋한 천변을 꽃들과 갈대가 있는 숲길로 만들어 시민의 쉼터로 꾸민 것은 참 좋았다. 서울 시내에 내(川)가 있는 곳이면 어디고 연결이 되어 있다하니 나는 그 길을 따라 즐거이 달려볼 것이다.    

   맑은 물이 흐르고 달맞이꽃이 피었던 내 고향. 이맘때면 친구들과  거닐었던 둑길, 그 둑길을 여기서 본다.  새가 찾아오고 송사리가 노니는 천변. 꽃길을 따라 페달을 밟는 내 눈앞으로, 20년 전 두고 온 고향이 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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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 만난 얀씨부부 그들은 다정했고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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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다.

   마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 가슴에 아기가 등을 대고 안겨있다. 바람이 불어 아기랑 엄마랑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날린다. 그리고 엄마가 아기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바람소릴 들어봐” 라고.  이것은 큰 아이가 화강석으로 조각한 [세로50CMㅡ가30CM] 모녀상이다.

‘바람소릴 들어봐’ 는 작품명이며 우리 딸이 아끼는 작품이다.

   눈 코 입이 또렷하지는 않으나 두 걸음 물러서 보면 분명 다정한 모녀의 모습이다.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나는 골똘히 살펴보았다. 과연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 아기를 양손으로 포근히 감싸 안은 자태는 따듯함이 전해온다.

‘바람 소리라’ 나는 입 속으로 읊조려 보았다. 싱그러운 어느 봄날, 바람이 대지를 깨우고 오색가지 꽃을 피우는 그런 소릴 들어보란 것일까. 아니면 한 소녀가 착한 일을 했는데, 그 아이에겐 칭찬을 해줄 부모가 없었단다.  언덕에 앉아있으려니 부드러운 바람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란 동화 속의 바람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열정의 여름을 지나 탐스런 열매를 맺고 잎을 떨어뜨리는 쓸쓸한 초동(初冬)의 바람인가. 여러 가닥으로 생각이 피어올랐다.

  작업실에서 며칠 만에 돌아온 딸에게 저녁을 먹으며 나는 물었다.

  “바람소리는 어떤 소리야?” 잠시 머뭇하더니 입을 연다.

  “엄마, 그 바람 속엔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있어요.” 

  순간 나도 모르게 손끝이 떨려왔다. 세월 저편에 묻어 버렸던 아픔의 상처가 움찔하고 있었다.

  ‘그래, 아홉 살 되던 해, 아빠가 떠나셨지’ 어린 가슴에 그때의 슬픔이 어떠했는지, 비로소 나는 아이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큰 착각 속에서 살았는가. 모든 어려움을, 슬픔까지도 내가 맡는다. 내 우산 아래서 탈 없이 성장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이라는 한 그루의 나무가 깊은 상처를 입으면 가지마다 아파한다는 것을 나는 잊고 살았던 것이다. 삶의 몫이 따로 이듯이 슬픔의 몫도 따로 인 것을…….  정녕 가슴에선 갈바람이 불었다.


   불경 보왕삼매론에 ‘삶에 고단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하셨거늘 어찌 평생 순탄하기만을 바라겠는가.  생각해 보면 순간순간 부는 바람소리도 그때마다 달랐다. 기분 따라 슬프게도 들리고 어느 날은 위안으로도 들렸다. ‘주저앉지 말고 일어서라’ 호통으로도 들렸다.


   딸아이가 중3, 졸업을 앞둔 무렵이었다. 독서실에 보내놓고 가끔 마중을 가곤 했는데,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관리인은 결석을 한 지가 여러 날이라고 했다. 분명 다녀온다는 인사까지 했는데……. 먹구름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자정을 넘긴 밤은 진한 먹물을 갈아 부은 듯 어두웠고, 십이월의 찬바람은 내 가슴을 더욱 파고들었다.  생각나는 친구들을 깨우고 수소문 끝에 찾아낸 곳은 수재민촌이라고 불리는 산동네. 공부보다는 놀기 좋아하는 같은 반 아이 친구 집이었다. 나는 아이를 잡고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새벽 5시, 잠이 덜 깬 딸 손을 잡고 나는 시장으로 향했다. 침구(寢具) 일을 하는 엄마 일을 돕도록 하기 위함이다. 너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보아야 알리라. 양손에 물건을 잔뜩 들고 힘겹게 따라오는 딸아이 모습을 보며 나는 입술을 물었다.  시장을 다녀오면 오전 8시, 나는 일터로 아이는 학교로 갔다. 그러기를 서너 달, 

   “엄마 잘못 했어요.”

   아이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딸아이 사춘기를 우리 모녀는 그렇게 넘기고 있었다.

   학사모를 쓰던 졸업식 날도, 조각전에 입상을 해 상패를 안겨준 날도, 딸아이는 그때마다 나를 한 번씩 더 울려 주었다.  계절마다 부는 바람 속엔 내 기쁨과 슬픔도 함께 있었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딸은 한마디 덧붙인다.

   “그 바람 속엔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가 많아요. 오늘이 흐렸으면 내일은 다시 해맑은 태양이 떠오른다. 열심히 일하고 당당하게 살아라. 이런 말들요.”

   “그래, 내가 그랬지.” 우리는 마주보고 웃었다.

   이제 딸은 나름대로의 음향대로 살아 갈 것이다. 바람소릴 들려주던 젊은 엄마는 어느 사이 그 딸을 의지하며 산다. 때때로 친구가 되어주고 나를 감싸주는 울타리다. 어찌 보면 바람소리를 들으며, 느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앞으로 20년, 세월이 가고 나면 나는 그 딸의 말을 들으며 살 것이다.

   “어머니, 바람소릴 들어 보세요” 라고.





   

 

Posted by 물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