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7.21 오십 대는 새댁 -인생 하프타임- by 물오리
  2. 2013.07.17 말 말 말 by 물오리
  3. 2013.07.01 이사하기 - 내(川)가 흐르는 곳 - by 물오리

 

 

 

   십여 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아껴주시던 스승님께 안부전화를 드리니 내 나이를 물으셨다.

  “저도 육십이 다 되어 가는데요.”

  “그래, 아직은 새댁이네.”

   갑자기 하시는 말씀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 나이가 무슨 새댁? 괜한 말씀을 하시네.’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십 년,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이렇다 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 세월은 백 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지나가고 나는 육십 대 끄트머리에 와 있다. 나이란 놈은 많이 먹을수록 가속도가 붙는다고 하더니 괜한 말은 아닌 듯싶다.

 

  우리 반 기타 선생님은 이십 대 후반이다. 얼굴도 미남이지만 적당한 체격에 속 깊은 마음까지, 요즘 젊은 사람과는 달리 넉넉한 품성이 보인다. 기타를 배우는 회원이 실버들이라 익히는 속도가 느려 답답할 텐데도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자상하게 지도한다. 뉘 집 아들인지 고맙기도 하고 기특한 생각이 들어서 어머니 나이를 물어보았다.

“아, 어머니요, 오십 대 후반이신데요.”

“어머나! 그래요, 어머니가 새댁이네”

  젊은 선생님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예전에 내가 그랬듯 새댁이라는 말이 생경해서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만큼 나이에 수를 더하고 보니, 내 스승님이 하신 말씀이 절로 수긍이 된다.

 

  여자 오십 대는 새댁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낙의 인생에서 또 다른 일을 생각해볼 수 있는 하프타임이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위해 보냈던 일상에서 조금씩은 놓여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시기가 오십 대다. 무엇보다도 제2의 인생을 계획하기엔 더없이 좋은 때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를 살려 전문가도 될 수 있고, 못 이룬 꿈을 향해 다시 공부해 볼 수도 있는 나이, 백세를 바라보는 이 시대에 인생 이모작을 계획하기에는 더없이 적절한 나이다.

   산을 타는 동호인 중에 남도소리를 잘 부르는 친구가 있었다. 노랫가락, 성주풀이, 선 시조까지 부지런히 배우러 다니더니, 지금은 강사가 되어 문화센터에서 제자들을 가르친다.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같은 연배 제자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산다.

 

  나 역시 오십 대에 글공부를 시작했다. 막내가 입시공부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 미루었던 공부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일을 접고 집을 나설 때는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기쁘기도 했고 생활에 활기가 넘쳤다. 그리고 그때 만난 문우들과 글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분에 넘쳐 고맙다. 그뿐만이 아니라 독서지도 수료증을 따고 초등생 책 읽기 지도를 할 때는 나름 보람도 컸다. 어느 분야든 삼 년을 배우면 귀가 열리고 빠르면 오 년, 늦어도 십 년이면 그 일에서 전문가가 되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요즘은 자기 관리를 잘하는 시대여서 그런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주름살도 없고 젊기만 한 오십 대, 그들을 보면 나도 ‘아직은 새댁이네!’ 하는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온다.

 

   이른 아침, 계속되는 장맛비가 조금 멈추었다. 인근에 있는 구름산으로 산책하러 나갔는데 빗방울이 또 떨어진다. 산 중턱에 있는 정자 안으로 들어섰는데, 팔순을 넘긴 어른 두 분이 나를 보더니 불현듯 나이를 묻는다.

“육십 끝자락인데요.”

“그 나이만 됐어도 좋겠네.”하며 웃으신다. 하긴 십 년 후에 나도 그 말을 또 하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은 새댁이네!’ 라는 말을 들었던 그 오십 대가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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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말 말 말

수필[Essay] 2013. 7. 17. 20:23

 

 

 

  아침 7시, 나는 헤드폰을 귀에 걸고 인접해 있는 계곡으로 간다. 이 시간에 방송되는 라디오에는 ‘말 말 말’이란 코너가 있는데 각계각층의 사건들을 유머러스하게 전해 준다. 실감 나는 것은 성우가 성대모사까지 해 주어서 듣는 이가 재미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유난히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눈에 띈다. 산을 오가며 자주 만나는 분인데, 고령의 어른이시다. 이 어른은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상대가 흥미 있어 하는지 없어 하는지 아랑곳없다. 그럴 땐 상황을 봐가며 슬며시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이다.

 

오늘도 잣나무가 있는 숲까지 갔다 내려오는 길인데, 산그늘에서 몇 분이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계셨다. 그분의 긴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 목이 타셨는가. 단숨에 술잔을 비웠는데, 아뿔싸! 그 잔에 벌 한 마리가 들어간 것이다. 넘어가면서 목구멍을 쏜 것이다. 급기야 신음을 내며 쓰러지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얼굴은 붉게 부어올랐다. 다행히 구급차가 도착해서 병원으로 직행했다.

 

말이 많은 것도 공해다. 각자 바쁜 일상, 여간해서 느긋하게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겠는가.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대화를 구사(驅使)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 같다. 구급차가 사라지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인간관계로 해서 늘 쓰이는 말(言), 이 말이란 무엇일까. 새롭게 화두가 되어 머리에서 맴돈다. 그리고 오래전에 말 때문에 절교를 한 친구들이 생각났다. 다들 막내의 입시를 앞둔 겨울이었다.

“네 딸이 지방 대 00 갔다며 ?”

한 친구의 이 한마디가 화근이 되었다. 아이가 몸이 아파서 학교를 쉬었고, 그 바람에 지방대 분교를 가게 되어 속이 타고 있던 터에, 한 친구가 생각 없이 던진 말이 비수처럼 꽂힌 것이다. 성적도 좋은 아이였는데 몸이 아팠으니 친구의 안타까움이야 오죽했겠는가.

 

살다 보면 마음 아픈 일이 종종 생긴다. 위로는 못할망정 아픈 곳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결과라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 이른다. 말이란 달콤하고 감미로운 언어도 있지만, 동시에 칼날같이 예리하여 마음을 벨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배웠다. 생각 없이 한 말이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함은 물론이고, 시기를 놓쳐버리면 그 실수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젊은 날 아이를 키우며 시집살이할 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았다. 시어머님이 남다르게 사랑이 많은 분이셨기에 더욱 어려움을 몰랐던 것 같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사니, 나 하나 참으면 집안이 편한 법이란다.”

어느 날 어머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 얼마나 보시기에 민망하셨으면 그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하면 그저 죄송한 마음뿐이다.

 

유능한 앵커이며 말하기 전문가 ‘바바라 월터스’가 쓴 <당신도 말을 잘할 수 있다> 라는 책을 보면 몇 가지 요령을 언급했다.

‘나 중심의 생각을 벗어나 상대방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것이 말을 잘하는 첫 번째의 기법이다. 예의 바른 태도, 사려 깊은 행동, 올바른 언어 선택, 웃음을 자아내게 한 이야기는 결코 버리지 않았다.’ 라고 했다. 그리고 때로는 침묵도 필요했다고 강조한다.

정중한 어법으로 매너 좋은 말솜씨,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무척이나 기분이 좋다. 비단같이 고운 말은 사람의 마음을 토닥여 주고, 부드러운 말은 가슴을 따듯하게 한다. 만나는 모임을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준비하고, 전화를 걸기에 앞서 상대가 기분 좋아할 말을 궁리하신다는 나의 스승님, 그분의 말속에는 유쾌하고 배우는 것이 있었고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배어있었다. 세상을 부드럽게 살아가려면 적어도 이 정도 센스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사람은 문이 닫히지 않은 집과 같다.’ 라는 탈무드의 격언처럼 선현들의 가르침을 새겨 말을 아낄 줄 알고 적절히 하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 같다.

말을 잘한다는 것. 그것은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고 나아가서 함께한 그 시간이 유익하고 즐거웠다면 그 사람은 최고의 화자(話者)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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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바위에서 물이 나온다는 석수(石水)동에서 이년 살았다.

유래를 찾아보니 관악산과 안양 유원지 일대에 석공이 많아 석수(石手)동이라고도 했다. 아파트 바로 뒤에는 높지 않은 산이 있는데 그 숲 속에 <석수 도서관>이 있었다.

책을 읽다가 창밖을 보면 숲 속 풍경이 운치를 더해주었다. 봄에는 뻐꾹새가 울었고 여름에는 철새들이 새끼를 키웠다. 가을에는 단풍이 고왔고 겨울에는 설경이 볼만했다. 신간에서 고전까지 책이 많았다. 그곳에서 나는 근래 없이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집에서 조금 걸어나가면 이내 안양천이다. 청계산 계곡에서 흘러오는 물은 한강으로 유입되는데 늘 깨끗하고 맑았다. 흰 고니는 아침 햇살에 날개를 고르고 물오리가 새끼를 데리고 소풍을 나왔다. 그뿐이 아니라 징검다리에 서면 언제나 어린 치어들이 몰려다닌다. 냇물이 돌아오는 산모롱이에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크고 작은 산들이 보이는데 그곳에 서면 냇가에서 소꿉놀이했던 내 유년의 고향이 다가선다.

 

   지난봄, 안양천을 따라 광명시 하안(下安)동으로 한 번 더 이사를 했다. 구름산 아래 있는 편안한 동네란다. 지인에게 이곳 이름을 말하니 ‘이름이 참 예쁜 동내네요’ 한다. 베란다에 서보면 오른쪽은 구름산이고 왼쪽은 안양천이다. 그리고 내가 사는 이곳은 지은 지 오래되어 그런가,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은 침엽수가 있고, 제법 몸통이 굵어 가지가 휘도록 잎을 달고 있는 나무가 많다. 그 덕에 아침 공기가 신선하고 새는 노래한다.

 

  이른 아침, 나는 안양천으로 산책 하러 나간다. 유유히 흐르는 내(川)는 여전히 맑은 물을 흘려보낸다. 천변 둑길을 걷다 보면 마주 서 있는 벚나무를 만나는데, 어찌나 튼실한지 그 아래서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많은 상춘객을 불러 모았다. 나도 가까이 지내는 문우들을 불러 꽃 마중을 했다. 요즘은 조금 때 이른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했고 키 큰 갈대가 바람에 일렁인다.

 

   고향을 떠나 삼십 년 살던 00아파트가 안양천을 끼고 있었다. 그곳이 재개발로 들어가서 그야말로 노년을 새집에서 살아보자는 꿈을 가졌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한 조합장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조합원들의 예상과는 달리 삼 년을 계획했던 공사가 육 년이 걸렸다. 일차 분담금이 있었고, 시간을 끄는 동안 자제 값이 올라 이차 분담금을 내게 되어 손해를 보고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 좀 무리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입주를 기다리는 동안 본의 아니게 몇 번의 이사만 하고 아쉽게도 새집 꿈을 접었다.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면 나는 내(川)를 끼고 살았다. 왠지 냇가에 서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했다. 그것은 내가 자란 시골 풍경이 보여서인지도 모르겠다. 흐르는 냇물에 광목을 삶던 어머니가 보이고, 미역 감는 동무들이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라 장마가 지고 물이 늘어나면 친구들과 놀았던 그 냇물에 물장구치는 내 어린 딸아이들 모습도 선하게 보인다.

 

   신세대 문학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며 세계적 작가로 알려진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취미가 이사란다.

  ‘짐을 챙겨 동네에서 동네로 옮겨 다니노라면 정말 행복한 생각이 든다. 그것은 모든 것을 무(無)로 만들 수 있다는 거다. 이웃과의 교제, 인간관계, 그 밖에 온갖 일상생활에서 자질구레한 일, 그러한 일들이 한순간에 소멸해 버리는 것이다. 이 쾌감은 한번 맛보면 잊을 수가 없다.’라고 했는데 생각하기에 따라 그것도 나름의 취미일 수 있겠다 싶다.

 

   가재도구를 정리하여 짐을 싸고 짐을 옮겨주는 사람을 부르고, 사실 이사라는 것은 생각만 해도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부닥치고 보니 동네마다 새로운 환경이 좋은 점도 있고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취미로 이사를 한다는 하루키의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동네 살아보니 괜찮네.”

 “엄마, 어디든 마음 붙이면 다 좋아요.”

  지난해 작업실을 강화로 옮긴 큰애 말이다. 하기야 이 강산 어딘들 예쁘지 않으랴, 다만, 내가 흐르는 곳이면 나는 어디라도 하루키처럼 이삿 짐을 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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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