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그리고 그림'에 해당되는 글 460건

  1. 2020.11.25 한 시인의 감사--- 차진호 목사님 by 물오리
  2. 2020.11.16 다윗의 머리에 기름붓는 사무엘---사무엘상 by 물오리
  3. 2020.11.16 믿음과 신념---한재욱목사님. by 물오리
  4. 2020.11.09 겨자씨의 비밀---한희철 목사님 by 물오리
  5. 2020.10.27 오아시스---한재욱 목사님. by 물오리
  6. 2020.10.22 구독과 좋아요---이성준 목사님 by 물오리
  7. 2020.10.14 사회적 거리두기---이 성준 목사님. by 물오리
  8. 2020.10.03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홍융희목사님 by 물오리
  9. 2020.09.15 하나님의 선물---손석일 목사님 by 물오리
  10. 2020.08.28 과실 나무 심은 마당 ---손석일 목사님 by 물오리

 

36년 전 고교 시절 학교 근처 작은 교회에 걸려있던

간증집회 현수막을 보고 호기심에 교회에 들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저보다 몇살 많아 보이는 누나가 휠체어에 앉아 떠듬거리며 간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태어날 때 의사의 실수로 뇌성마비 장애를 얻었고, 절망 중에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지은 시를 낭독 했습니다.

"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 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그분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송명희 시인이었고 그날 밤 불평 많던

청소년 시기를 보내던 저에게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시 제목은 '나'였습니다.

감사를 잃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뿐 아니라 1년 365일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

감사하는 가정과 교회, 사회가 될 줄 믿습니다.

Posted by 물오리

 

 

 

시골의 양치기 집안에서 , 그것도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나 들판에서 

양 떼를 돌보던 소년 다윗, 누가 보아도 이 비천한 목동은 이스라엘의 다음 왕으로 

적절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다윗을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하시고 그에게 즐겨 기름을 부으셨다.

Posted by 물오리

 

우리는 신념의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신념을 포함하고 있지만 신념과는 다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하고,

신념은 자기 생각과 확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믿음의 과정은 순종이고 신념의 과정은 불굴의 의지입니다.

믿음의 결과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신념의 결과는 자신의 영광입니다. 믿음은 자기를 부인해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고 ,

신념은 자기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이 책임져 주시고신념은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믿음은 실상이지만,

신념은 허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신념은 유익하지만 신념이 잘못되면 악한 아집이 되어 모두를 힘들게 합니다.

나폴레옹의 명언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

(삼상 17 : 45)는 외침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Posted by 물오리

 

 

 

예수님은 탁월한 이야기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것들을

재미있고 쉬운 이야기로 풀어 내셨으니까요. 남녀노소 누구라도 들으면 금방 이해 할 수 있고

기억하기 좋으며 전달하기 수월한 이야기로 바꾸어 들려주셨습니다.

그렇게 들려주신 이야기 중에는 하늘나라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했습니다.

겨자씨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하나님 나라가 가장 작은 것 속에 

담겨있다 하신게 놀랍습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겨자씨와 새의 관계는 

사느냐 죽느냐의 관계입니다. 씨앗은 새에게 좋은 먹이가 되니까요.

그런데 겨자씨가 자라면 새에게 둥지를 지으라고 품을 내어 줍니다. 

나를 단번에 해칠 수 있는 존재에게 기꺼이 품을 내어주는 관계의 변화에서

하늘 나라의 의미를 찾고 싶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겨자씨 이야기 속에 슬쩍 그런 의미를 담아 놓으셨는지도 모릅니다. 

Posted by 물오리

 

"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의 한 구절입니다. 황량하고 삭막한 세상일지라도

오아시스가 있기에 아름답습니다. 사막을 사는 사람중에는  그저 사막을 사는 사람이 있고,

사막속에 샘을 발견하고 오아시스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편이 다섯명이나 있었던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은 사막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목마른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생명의 샘물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 14)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사막인생에서 오아시스 인생으로 바뀝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오아시스가 곳곳에 있습니다. 오아시스는 한 편의 설교,

한권의 책, 그리고 당신일 수도 있습니다.  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영롱한 별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이 계시고 복음을 전하는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물오리

 

요즘 세상은 매스미디어의 영향력과 더불어 1인 미디어의 힘이 점점 더 커지는 시대입니다.

전문성과 신속성, 재미와 호기심을 무기로한 유튜브는 다양한 콘텐츠를 더해가며

날로 그 영토를 확장해 가는 중입니다. 

1인 미디어의 창작자들이 늘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 동의 하거나 지지한다면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 달라는 것입니다.

구독은 그 채널을 즐겨 찾기 하겠다는 지지의 신호이고 ,

좋아요는 그 내용에 동의 하며 신뢰한다는 인정의 표현입니다.

이를 보면서 하나님을 잊고 사는 시대에 뉴미디어가 종교 역활을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의 경계가 모호한 콘텐츠에 할렐루야 대신 구독을, 아멘 대신 좋아요를

습관적으로 누루면서 살지는 않는지요

그리스도 인은 진리편에서 서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분별하면서 삽니다.

세상의 얄팍한 소리를 듣기 보다 늘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구독하고

내 마음을 불편케해도, 진리에 기쁘게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시119: 130)

Posted by 물오리

 

 

 

보이지 않는 세포보다 더 작은 바이러스가 세상을 공포로 몰아 넣고 있습니다. 

미세한 이 적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장 합니다.

다중시설 이용을 자제하고 오프라인상의 만남보다는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마스크 사용과 손 씻기를 강조하는 캠페인이 이어집니다.

집콕, 방콕, 등의 단어가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가족 간에도 외출 후 씻기까지는 잠시

거리를 두는 미묘한 문화가 진행중입니다.

지금과 같이 비상시국에는 어쩔 수 없는 예절이겠지요.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왜곡된 문화가 습관이 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외국에서는 이미 그런 우려가 인종차별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적거리'는 유지하되 '심리적 거리'는 더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조차 날 가까이 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도

날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더 밀접한 '영적거리'를 유지 해야 합니다. 

"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 하시리이다. "( 시편 27: 10)

Posted by 물오리

 

 

 

성경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 한다는 건 어떻게 살았다는 말일까요. 

뜻밖에도 성경은 그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삶의 행위가 아니라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동행하다' 라는 히브리어는  부부관계를 의미합니다.

때로 다투고 얄미워 보여도 한평생 묵묵히 함께 걸어가는 사이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동행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큰 부담을 느낌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우리가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 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봅시다. 어른이 세살짜리 아이와 걸어 간다면 누가 더 불편 할까요.

아이는 제 갈길을 가면 그만 입니다.

보폭을 맞추고 속도를 조절하는 건 어른 몫이지요.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 할때도

우리보다 훨씬 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더 손해보고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죄많고 어리석은 우리에게 보폭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겠지요.

동행은 결국 은혜입니다.

Posted by 물오리

 

요즘 선물하기에 좋은 것이 향초나 디퓨저입니다.  여기에는 향료가 들어 가는데

향료는 동물성과 식물성이 있습니다. 동물성 향료엔 사향노루냄새 주머니를 건조한

사향과 향유고래 배설물에서 얻는 앰버그리스 등이 있습니다.

꽃과 과일 등에서 얻는 식물성 향료는 100여종이 넘습니다.

음식에 맛있는 냄새가 없고 꽃과 과일에 향기가 없다면 어떨까요.

하나님은 향기를 만들어 우리가 풍성하게 살도록 했습니다.

개들은 사람보다 후각이 100만배 더 발달했습니다. 하지만 냄새를 즐기진 않습니다.

냄새를 즐기는 피조물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향기는 하나님이 준 특별한 선물입니다.

이 선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받기 원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화제로 드리는 제물의 향기 입니다.

우리 기도도 하나님이 받는 향기 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면서 향기의 사명도 주셨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기도의 향기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 이 땅에 예수님 향기를 뿜으며 삽시다.

향수 한 방울이 온 방을 상쾌하고 기분좋게 만들듯 세상을 아름답게 하며 살아야겠습니다.

Posted by 물오리

 

 

 

예전에 시무했던 교회 주변에는 마당이 있는 집이 많았습니다.

봄에는 목련이 활짝 피어 나는 집도 있었고 가을에는 감과 모과가 열리는 집도 있어

참 훈훈하고 정감이 넘쳤습니다. 어느날 문득 느낀건 집을 지을 때 마당에 꽃나무를 심는 사람이 있고

감나무처럼 과실 나무를 심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입니다.

훗날,  '마당이 있는 집을 집을 짓는 다면 무슨 나무를 심을 까' 생각하며 동시에

내 영혼의 마당에는 꽃나무와 과실 나무중 어떤 것이 심겼는지 돌아 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것이요.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8)

세상을 꽃피우는 인생을 살라 합니다.  성경은 열매 맺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꽃피워 주실 때

그 꽃의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고, 우리는 열매로 보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집 마당에는

꽃보다 과실이 더 풍성했으면 합니다. 그 열매를 이웃과 나누는 정이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물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