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한 송이를 그리며 문득 지난날 , 황당했던 일이 생각났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신길동 근처, 내가 몰고 다니는 작은 차를 뒤에서 큰 차가 박았다. 충격 때문에 어지럽고 목도 아팠다 ㆍ운전자를 보니 몸집이 좋은 젊은 남자였다.
그는 죄송하다고 하면서 근처에 교통과에 신고 전화를 하고 있었다 . 의자를 뒤로 하고 나는 쉬고 있었는데, 이십 분쯤 지났을까 누가 차문을 두드렸다. 눈을 떠보니 교통정리하는 교통경찰, 그 남자는 가짜 신고를 하고 사라진 것이다. 차번호를 알아 놓았어야 하는데 미쳐 생각을 못했다.
그때 그 황당함이라니,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섣달 금음 왜 그 생각이 났을까 .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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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은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또한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한 몸이라는 증거다.
며칠 전 tv 영상에서 어느 젊은 목사님이 헌혈하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그리고 교회 청년들도 함께 동참하는 것을 보았다. 헌혈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흐뭇했고, 할 수 있는 건강과 젊음이 부러웠다.
대체로 크리스천들의 혈액은 깨끗하단다 . 이유는 술 담배를 하지 않아서 라고 했다. 기분 좋은 뉴스를 듣고 뭔가 뿌듯해옴을 느꼈다.
우리 몸은 수혈을 하고 나면 맑은 피가 생성되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보다도 피가 필요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니 얼마나 귀한 일인가, 수혈을 하고 나면 혈류 개선이 되고 헌혈하기 전에 받는 여러 가지 검사에서 자신의 건강상태도 알 수 있다고 하니 일거 양득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한번도 헌혈을 해 본 기억이 없다. 젊은 시절은 일하며 살기 바빴고 그 중요성을 말 그대로 무식해서 몰랐다.
일 년 넘게 병치레를 하면서 나는 세 번의 수혈을 받았다. 누군가 해 준 헌혈 덕분에 어지러움 증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뭐라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간절히 드렸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지으실 때 누구나 복을 주셨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라 하셨고 또한 그 복을 다 누리며 살라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병을 얻는다.
코로나 119로 헌혈하는 인구가 줄었다고 한다. 이번 명절 가족모임 때는 헌혈의 중요함과 의미를 화두로 내놓을 생각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 삼서 1 ~2)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 자녀인 우리가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고 계심을 잊지 말자.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면 언제나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이 년 전만 해도 새벽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오전 네시 반, 캄캄한 미명입니다. 아파트 앞에 서 있는 호두나무 가지에 걸려 빛나던 큰 별, 반갑고 감사해 두 손을 모았습니다.
ㆍ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ㆍ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던 동방박사들,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아기가 있는 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들은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고 돌아갔습니다.
새벽은 고요하고 존귀한 시간입니다. 또한 주님이 주신 새 날입니다. 감사 기도를 드리고 하루를 맞이합니다. 창문을 열고 별을 찾아보지만 요즘은 안개 구름때문 인지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해 이 맘때는 하동 벧엘수양원에 있었습니다.
새벽 네시 반 쯤 일어나 하늘을 보면 별이 총총 정말 쏱아질 듯 했습니다 ㆍ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향해 감사 기도를 드렸던 생각이 납니다.
젊은 날은 일하느라 샛별을 보며 살았습니다.
'제가 맡은 역할, 어미로서의 책임을 잘해 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렇게 막연히 중얼 거리며 다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 세상 빛으로 오신 예수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새벽 밝기 전에 한적한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신 예수님,
여러가지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주님, 주신 은혜가 너무도 큽니다.
예수님 말씀이 가득 담긴 복음서를 읽습니다. 자신을 위해 하신 일은 한 가지도 없으십니다. 그리고 말씀 읽을 때마다 새롭게 주시는 사랑의 메시지가 가슴을 벅차게 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며 돌아가신 예수님, 그 은혜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리오.
하루를 시작하는 존엄한 시간, 찬란한 새벽 별로 오신 예수님 , 그 사랑 그 은혜 참으로 감사해 온 마음으로 찬송 올립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동방의 박사들, 별을 보고 찾아와
꿇어 경배드렸네 ,구주 나셨도다
구주 나셨도다.' 아멘

2020 12 24

십이월 초 , 열왕기상 공부를 하다가 감동이 밀려와 잠시 묵상을 하고 붉은 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솔로몬 왕이 칠 년 동안 성전 건축을 마치고 마침내 주님께 기도드리는 날이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그들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 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옵소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펴고 이방인을 위해 올린 기도는 감동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AD 33년,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사도가 된 바울, 그가 말할 수 없는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유럽과 아시아, 모든 이방인들에게 전한 복음이 오늘날 보잘 것 없는 나에게도 전해진 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한데 그보다도 훨씬 전에 솔로몬왕이 이방인을 위해 여호와께 기도를 드렸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감사한 일이었다.
산당 제단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날, 여호와께서 솔로몬 꿈에 나타나시어"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하셨을 때 "많은 백성들을 위해 듣는 마음을 주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건강도 아니요 부도 아니요 오직 지혜를 구한 솔로몬,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감동 하사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지혜와 총명한 마음을 주셨다. 그리고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까지 넘치게 부어 주셨다.
또한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스바의 여왕,
"내 나라에서 들은 소문이 사실이로다.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막내가 유치원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성탄절 발표회가 있었는데, 연극 제목이 <솔로몬의 재판>이었다. 간난 아기를 놓고 두 여인이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는 대목인데 막내가 맡은 역할은 아기의 진짜 엄마, 나는 그 연극을 위해 초록색 천으로 망토를 만들어 주었다.
드디어 솔로몬 왕 앞에서 재판은 시작되었다. 왕은 의자에 앉았고 여인 둘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기를 반으로 쪼개어 나누어 주어라" 왕이 말했을 때
"안됩니다 아기를 저 여인에게 주소서"
안타까운 목소리로 왕께 아뢴 것은 망토를 걸친 막내였다. 그날 그 장면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지어진다. 여섯 살이었던 막내는 앙증맞게 역할을 잘해 내었다.
연극을 보며 솔로몬의 지혜가 정말 탁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연극때문인가 막내딸은 나보다 먼저 주님을 영접했다.
11장에서 솔로몬은 모압과 암몬, 그들과 통혼하지 말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많은 여인과 인연을 맺고 그들의 우상을 섬기며 안타깝게도 여호와를 떠났다.
그러나 솔로몬이 서술한 잠언,아가,전도서중에 잠언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지혜가 가득 들어있다.
'잠언, 이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혜의 근본을 올바로 깨닫도록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고 서론에 밝히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사십 년, 솔로몬은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었다.
이방인을 위해 기도했던 솔로몬, 그 솔로몬은 진정 지혜의 왕이었다ㆍ

.솔로몬의 재판 . 연극이 끝나고 그날 촬영한 사진 , 6살 막내 딸 ㆍ 지금 봐도 귀엽다.

오랜만에 김밥을 싼다.
우선 햅쌀로 밥을 지어놓고 지단을 부치고 당근, 우엉, 단무지, 쇠고기 볶고 취나물을 무쳐 놓는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에 참기름과 볶은 소금으로 밑간을 한다.
김은 약간 구워 재료를 넣고 돌돌 말아 밥을 싼다. 내가 만드는 김밥은 부드럽다.
그 이유는 모든 재료를 푹 익혀서다. 나이 탓이겠지만 덜 익힌 것을 먹으면 속이 더 부륵 하다.
지난날, 딸아이들이 소풍 갈 때 일찍 일어나 싸주던 김밥이다. 늘 굵어서 한입에 먹기가 어렵다고 했지만, 일하는 엄마라서 정성 들여 만들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었던 것은 맛있게 먹었다는 말이었다.
김밥 한 줄과 과일 한 개, 따뜻한 물을 배낭에 넣고 인근에 있는 구름산으로 나는 오늘 소풍을 간다. 찬송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산 초입에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는데 요즘 나무계단으로 조성이 되어 오르기도 쉽고 걷는 느낌도 좋다.
산 벚꽃나무 잎이 예쁘게 물든 만추, 가을이 가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 단풍이 곱다. 오르다 보면 이내 능선이 보이고 쉴 수 있는 아담한 정자가 눈에 들어 오는데 나는 이곳에서 숨을 고른다.
시간은 정오, 햇볕이 정수리에 꽂힌다. 햇살 바른 곳에 자리를 잡는다ㆍ요즘 내가 쪼일 수 있는 볕이 이토록 고마울 수가 없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 올라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라기 4장 2절-
사랑이신 하나님 아버지 말씀이다. 따뜻한 햇볕을 마주하고 나에게 주신 그 말씀을 읊조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일 년 남짓 면역력 저하로 투병을 했다. 병원을 들락거리며, 하동에 있는 벧엘 수양원에서 아침저녁 말씀 공부를 했다. 그리하여 조건 없이 주시는 아버지 사랑을 가슴 벅차게 만났다. 속초 뉴스타트 건강 강의 시간에서는 몸을 튼튼하게 하는 건강식을 배웠으며 또한 매일 매일 주시는 말씀으로 치료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나는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몸무게가 10 키로 이상 줄고 걸음이 흔들렸을 때, 과연 내가 정상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그럴 때 드린 기도는 딱 두 가지 ,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아니시면 곤히 잠들었을 때 불러 주소서" 나는 간절히 아뢰었다.
그런데 기도를 드리고 나면 '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하신 말씀과 함께 마음 평안을 주셨다.
지난 일 년을 돌아 보면 모두가 감사뿐이다. 아주 가끔 몸상태를 체크 하는 과제가 남아 있지만, 살아계신 아버지 은혜로 몸무게도 면역력도 회복이 되어 나는 날마다 소풍을 간다.
시장 갈 때도 소풍이요, 벗들을 만나 차 한잔을 마셔도 나에게는 소풍이다.
김밥 하나 햇볕 한 줌 섞어 점심을 먹는다. 왼쪽으로는 소나무 군락인데 솔향이 상큼하다. 몸이 아파본 사람은 치료해 주시는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을 알리라.
능선을 따라 내려 가다보면 하산하는 길이다.
다음 주 토요일, 선물로 주신 손녀 사랑이랑 딸애들이 우리집에 온단다. 나를 케어하느라 애쓴 딸들이다. 시간도 넉넉하니 아욱국 끓이고 김밥을 정성껏 만들어 점심상을 차려 줘야지 맘먹는다. 초등학교 때 먹었던 김밥, 그 밥을 먹으며 어떤 말들을 할지 기대가 된다. ㅎㅎㅎ


젊은 날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 있을까 한번 자문해 본다. 언듯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요리를 배우고 싶다. 이유는 가족을 즐겁게 하고 나도 맛난 음식을 평생 먹고 살 테니까.
충청북도가 고향인 나는 산과 들에서 자라는 나물을 많이 먹고 자랐다 ㆍ 냉이 ㆍ 씀바귀ㆍ 지칭개 ㆍ돌미나리 ㆍ다래순 ㆍ취나물 ㆍ 어쩌다 모임이 있는 날, 고기 먹을래? 나물 먹을래 ? 물으면 나는 나물정식으로 간다.
내륙지방이라 생선도 귀해서 소금에 절인 고등어자반 꽁치 자반 구워 먹는 것만 먹었다. 뿐만 아니라 약간 상한 생선을 뼈까지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버릇 여전해서 구워 먹는 생선만 먹는다. 어쩌다 얼큰한 탕이 생각나 정성을 들여 매운탕을 끓여보지만, 역시 맛도 없고 주방에서 나는 비린내로 비위가 상한다.
그래도 다행히 김치는 어머니께 배웠다. 딸들이
ㆍ엄마 김치가 제일 맛나요 ㆍ
할 때는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색다른 요리를 해주지 못하고 키워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된장찌개, 미역국, 두부조림, 나물무침, 주로 간단하고 단순하게 만들어 먹고살았다. 별난 것은 가끔 외식을 했다.
음식 솜씨가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자기가 만든 요리를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흐뭇할까, 자녀들은 그 음식과 함께 엄마를 추억할 것이다. 우리 집 딸들은 무엇을 기억해 줄지 궁금해진다.
지난해 여름, 대상포진을 심하게 앓고 나서 면역력
저하로 고생을 했다 ㆍ간간이 치료받으며 건강식으로 식사를 했다. 뉴스타트 건강강의, 벧엘 수양원 건강강의를 들으며 배운 것이 많다.
병은 첫째 심한 스트레스로 오고 두 번째 잘못된 음식 습관에서 온다고 한다.
강의를 들으며 놀란 것은, 하늘 아버지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야채와 과일, 그리고 모든 열매에 우리 몸을 치유하는 치료제가 충분히 들어있게 만드셨다고 했다. 계절 따라 나오는 과일과 신선한 재료를 담백하게 조리해 먹으란다. 가격이 비싼 보조식품은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학술적인 근거로 영양과 치료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나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그간 견과류와 산에서 밭에서 나는 채소를 가지고 맛있게 만드는 것을 보았고 또 먹었다. 그 맛은 고소하고 신선해서 좋았다.

집에서 지내는 요즘 야채수부터 만든다. 무, 양파 , 다시마 , 표고버섯, 함께 넣어 끓이다가 물이 삼분의 일쯤 줄어들면, 그 야채수로 찌개든 국이든 볶음이든 음식을 조리한다. 다음은 견과류를 갈거나 그냥 섞어 먹는다. 설탕과 기름은 자제한다.
밥은 현미에 콩을 넣어 지은 밥인데 야채수로 지어서 맛나다. 찬을 만들어 보니 그곳에서 먹던 반찬보다는 뭔가 조금 부족하다.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한 덕에 옛날보다는 맛이 좋아졌음을 스스로 느낀다.
가끔 감자, 가지, 당근, 대파 , 단호박, 고구마, 이것 저것을 굽거나 쪄서 땅콩소스나 간장소스에 찍어 먹는다.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주님 지으신 청정한 자연에서 맑은 공기와 깨끗한 음식, 그날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나는 건강을 되찾았다. 음식 솜씨가 없는 것이 유감이지만 , 이 아름다운 가을을 누리게 해 주시어 얼마나 감사한지 , 그저 그저 감사다.
ㆍ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ㆍ
창세기 1장 ~29절
요즘 주시는 말씀을 한 번 더 읊조려본다.

김에 싸서 먹는 야채

이른 아침,비닐봉지 한 개 비닐장갑 하나를 챙긴다.
안양천 냇가를 따라 걸으며 가끔 눈에 띄는 쓰레기를 줍는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슬 맺힌 풀숲에 떨어진 쓰레기가 보기 싫어서다.
내가 걷는 코스는 그리 멀지 않다.
그곳에 도착하면 쓰레기 통이 있고 돌아오는 길은 깨끗해서 좋다.
쓰레기를 주우며 느끼는 것은 과자봉지 , 우유 팩 , 담배 곽 , 구직 포로 만든 마스크 , 그런 것은 줍기가 수월하다. 그러나 하얀 휴지는 이슬에 젖어 난감하다. 혹시 강아지가 응가를 하고 똥꼬를 씻긴 건 아닌지 , 무엇을 하고 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담배꽁초도 참 많다. 대충 몇 살쯤 되는 사람들이 버리는 걸까? 궁금해진다.
겨울이 긴나라 , 유럽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핀란드는 국토의 70퍼센트 이상이 숲이며 수십만 개의 호수의 땅이다. 자국민이 그 땅에 태어난 것을
가장 행복해한다는 기사를 읽고 핀란드 책을 여러 권 읽었던 일이 있었다 ㆍ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국민성이 놀라울 정도로 양심적이며 근면하다고 했다 ㆍ그들은 가족과 함께 호수와 숲이 있는 자연에서 보내기를 좋아하며, 앞서 간 사람이 쓰레기를 흘렸으면 다음 사람이 그것을 꼭 줍는 다고 했다. 자연과 환경을 아끼는 그들이 멋진사람들로 느껴져 지금도 기억난다.
우리나라도 팔도강산 어느 곳을 가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짙푸른 나무가 우거져 있고 예쁘게 가꾸어 놓은 공원이 많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쓰레기는 쉽게 볼 수 있다.
이 땅은 나만 살다 가는 곳이 아니다 ㆍ 우리 자녀가, 그리고 손주들이 살아갈 땅이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말고, 아끼고 가꾸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주님이 지으신 세상은 너무나 경이롭고 아름답다. 길가의 작은 꽃들, 돌 하나, 주신 자연 속에서 감사하며 기쁘게 누리며 살다 갈 일이다.

ㆍ딸도 잘 키우면 열 아들 부럽지 않다 ㆍ
삶이 힘들어 주저 앉아 있을 때, 내 등을 토닥이시며 딸 셋을 키우는 나에게 어머니가 해 주신 말씀이다.
어머니 소천하신지 20여 년 , 새삼 그립고 보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내 얼굴에서 어머니 모습이 보인다 . 나는 그냥 웃는다.
부모는 다 그러하겠지만 육남매 자식을 위해 고단하고 바쁘신 삶을 사셨다 . 특히 우리집 살림을 살펴주셨고, 된장, 고추장, 김치, 해마다 담궈주셨다. 뿐만이 아니라 어쩌다 몸살이 나면 손국수 밀어서 맛나게 해주셨는데, 가끔 그 맛이 그리워 ㆍ안동국시ㆍ집을 찾지만 어머니가 해 주시는 그맛은 아니다.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시게 된 동기는 친구분들이 한분 한분 떠나고 많이 외로워 하셨다.
ㆍ엄마 , 교회가시면 새로운 친구가 생기지요 ㆍ
딸들은 권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교회가 있었다 ㆍ당시 나는 시어머니따라 절에 다닌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성경책을 떠듬떠듬 열심히 읽으셨다. 이슬 비에 옷이 젖듯, 어머니는 주님은혜로 밝아지셨고 찬송도 부르셨다. 새벽에 일어 나시면 자식들 기도를 두 시간 넘게 드린다고 하셨다 .
주님을 영접하시게 된 계기는 어찌 되었던 하나님 아버지 사랑을 알게 되신 일이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어머니 생각을 할 때면 그래도 한 가지 잘했다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딸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 충청도로 이박 삼일 여행을 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하얀 모시옷을 입으셨는데, 깔끔하고 고우셨다. 화양계곡에서 닭백숙을 맛나게 드셨고 신탄진 묵밥을 딸들과 잘 드셨다. 뒷자리애 앉아 ' 형님 형님, 시집살이 어떱띠까' 가끔 하시던 노래도 흥얼 거리셨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홍시를 좋아하셨던 어머니, 88세 돌아 가실 무렵 방향 감각을 잃어 손녀 딸이 교회로 모시곤 했는데, 그때 왜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하늘 아버지가 계시는 성전을 한 번도 가지 못 했을까 , 가슴치게 아쉽고 후회가 된다. 그러나 생각할 수록 감사한 것은 사랑이신 주님을 영접하시고 천국 가신 것, 그리고 어머니 기도 속에 분명 나도 있었을 것 , 이제야 비로소 내가 하나님아버지 딸이 된 것이 어머니 기도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 못난 셋째 딸 ,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생전에 보살펴주신 그 은혜, 어찌 잊을 수 있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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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형들에 의해 이집트 노예로 팔려간다.
그때 나이가 17세 ,
내가 우리 집 기둥으로 여기는 손자 다안이도 올해 17세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 번째 아들 요셉, 형들이 깊은 구덩이에 쳐 넣었을 때 ,
ㆍ제발 살려주세요 ㆍ
얼마나 울부짖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온다. 뿐만 아니라 ㆍ그 형들은 구덩이에서 꺼내 애굽의 종으로 팔았다 ㆍ
꿈의 사람 요셉은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용모가 준수했다. 야곱의 총애로 형들의 시기를 받았지만 , 그 어린것을 어찌 그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요셉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그 어려운 세월을 견디어 냈다.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도 ㆍ그 아내의 유혹에도 하나님을 생각했고, 억울하게 가게 된 감옥에서도 맡은 일을 성실하게 했다. 술 관원장. 떡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집트 파라오의 꿈을 해석한 요셉, 왕의 신임을 얻어 마침내 총리대신이 되었다 ㆍ
많은 생명을 구한 요셉, 기근에 시달린 팔레스타인에 사는 아버지를 만나고 형제들을 맞아 태평성대를 누린 요셉.
ㆍ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ㆍ 창세기 46장 30 절
요셉은 참으로 거룩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진실, 인 내, 순종.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각광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 고난의 세월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던 요셉, 무슨 일을 하던지 주님께 하듯 했다.
17세 우리 다안이 , 대한민국 남아로 잘 크고 있다 ㆍ다만
주님 안에서 이웃을 배려하며 어려운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멋진 사람이 되기를 이 할미는 간절히 기도드린다 ㆍ
.
나리 꽃말은 ㆍ진실 ㆍ순결 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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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하면 먼저 따뜻하고 편안함이 떠 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쉼을 갖는 잠자리, 그것은 달콤하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침구 일에 십오 년 종사했다.
그 당시, 인사동은 고급 이불을 제조해서 공급했고 순면으로
사계절 침구류가 예쁘고 다양하게 생산되었다.
사람들이 촉감 좋고 쾌적한 이불을 덮고 단잠을 이룬다면 그것도 나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쇼핑센터 침구 코너, 나를 찾아주는 그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딸아이 셋 대학을 보낼 수 있었다.
새벽 별을 보고 나가서 밤 별을 보고 들어 왔던 시절, 어려웠던 현실 속에서 의, 식, 주, 그리고 교육까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음을 감사했던 날들이다.
아주 가끔 " 참 따뜻하고 좋아요 " 단잠을 잡니다 "
라는 인사말을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럴 땐 기분이 좋은 것은 물론 ,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오랜 시간 침구 일을 한 덕분에 지금도 천을 만져보면 순면인지 , 폴리에스터가 섞여 있는지 금세 알 수가 있다. 순면의 부드러움과 상쾌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주님 사랑을 받은 지 7년 , 올해 뜻하지 않은 돈을 받게 해 주셔서, 처음으로 가족 모두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순면 이불을 하나씩 구해 주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따뜻한 이불이 아버지의 품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두 날개 아래 우리를 품어주시는 하늘 아버지, 그 너른 품은 포근한 이불과 연결이 되었다.
잠 잘 때도 , 아플 때도, 마음이 상했을 때도 안아주시는 하늘 아버지, 그 사랑은 조건 없이 무한대로 주시는 사랑이다. 나는 이불을 소포로 보내며 기도를 드렸다.
'제가 선물로 보내는 이불을 덮으며 우리 가족 모두 아버지의 크신 그 사랑을 알게 하소서, 간구하며 아뢰었다.
요즘 치료받고 있는 나 때문에 한 줄 기도를 드린다는 손주들과 딸 , 사위 , 참 고맙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머지않아 다 주님 자녀로 불러 주실 것을...
십 년쯤 나보다 먼저 주님을 영접한 여동생한테 나는 물었다.
ㆍ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일까?
ㆍ가족 구원 ㆍ
동생의 대답은 단 일초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 가족 구원 ,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나를 포함해 8명 , 꿀 같은 아버지 말씀 책을 펴놓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경배드리며 찬송드리며 가족 예배드리는 그림을 나는 늘 상상해 왔다 ㆍ
한 없이 주시는 아버지 사랑, 그 사랑을 받으며 기쁘게 감사하며 사는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드린다.
우리 가족이 예배드리는 그림,
하동' 벧엘 수양원 ' 그림을 잘 그리는 아기 천사가 그려준 것.
안경과 모자를 쓴 나 , 행복해서 웃고 있다. 내 옆에 서 있는 손자 , 머리가 긴 큰 딸, 아기 옆에는 막내딸, 손녀와 사위들 , 나이를 물어서 다 적어 주었다.
아가야 , 고맙다. 주님 은혜로 잘 지내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