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 수선화는 수줍게 웃고 있다.
진녹색 화분에서 막 피어난 열두 송이, 연노랑 꽃잎에 진노랑 꽃술은 볼 때마다 청초하다. 봄이면 이르게 피어 봄을 부르는 꽃이라고도 하는 수선화, 꽃말도 신비 고결이다. 아침마다 만나는 이 수선화의 신선함으로 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달포 전, 난생처음 그림 한 점을 샀다. 그림은 수채화가 박정희 선생님의 작품이다. 이 어른은 오 남매를 키우며 쓴 ‘사랑의 육아 그림일기’로도 널리 알려진 분이다. 지난 년 초, 텔레비전 방송에서 ‘박정희 할머니의 수채화 인생’이란 제목으로 선생님의 일상을 다룬 이야기가 한 시간여 방영이 되었다.
한글 점자를 창안하신 송암(松庵) 박두성 선생의 둘째 따님이고, 경성 여자 사범학교를 나와 인천 공립학교에서 교사를 역임하였으며, 수채화 공모전에 특선과 입선을 하여 특별전시 20여 회 출품하였다고 했다. 현재 인천 동구 화평동에 있는 ‘평안수채화의 집’에서 제자들과 그림수업을 하신다.
그동안 ‘점자도서관 건립조성’을 위해, ‘인천 맹인 복지회관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개인전을 여러 차례 열었고 지금도 그림으로 얻는 수익금 일부는 그들을 위해 쓰고 있다. 올해 연세 90이시다. 야외로 스케치 떠나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신다. 소소한 일에도 기뻐하시고 작은 일에도 까르르 웃으신다. 매사를 감사하며 사시는 모습은 방송을 보는 내내 유쾌했고 나에겐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인생 가을이라는 이 나이에도 나는 기분 따라 감정조절이 어려울 때가 있다. 부단히 노력하는 데도 예기치 않게 불쾌한일이 생기면 마음은 파도를 친다. 두어 숨 둘러 쉬고 사건을 들여다보면 조용히 해결될 일을 서둘러 판단하고 그래서 상처를 주고받는다. 지혜롭게 처신하지 못하는 미숙함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아니면 이웃을 때때로 힘들게 한다. 어떻게 하면 속 깊게 잘 늙어 갈 수 있을까, 그것이 늘 마음속에 숙제로 남아 있었는데, 모든 것을 감사와 사랑으로 일관하시는 선생님의 일상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보고 싶었다.
꽃 잔치가 열리는 4월, 인천행 전철을 탔다. 일층 화실에서 선생님은 반갑게 맞아 주셨다. 마침 막 피어나는 목련 한 다발을 함지에 담아 놓고 제자들과 스케치를 하고 계셨다. 작은 체구에 웃음 짓는 얼굴은 소녀처럼 해맑으시다. 첫아기를 낳고 너무도 기쁘고 감동적이어서 그림일기를 쓰게 된 이야기,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 ‘야마 구찌’라는 일본 여선생님이 ‘너는 그림을 꽤 잘 그린다.’ 이 한마디가 선물이 되어 그림을 그리게 된 이야기, 그리고 점자를 창안하신 아버님이야기를 해 주셨다.
“1923년, 당시 친척이나 친구들은 왜 맹인들 속에서 지내느냐고 아버지께 말들을 많이 했어요. 그러나 앞을 못 보는 맹인을 보면 그냥 측은해, ‘가여워라,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하나?’ 늘 그러셨어요. 결국, 당신의 뜻을 펼치고 가셨지요. 저도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있어요.”
보여주시는 사진 속에는 그 당시 교실에서 바지저고리를 입은 맹인 청년들이 점자를 배우고, 박두성 교장 선생님 참관 아래 모형으로 해부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사진에는 부인 김경내 여사의 도움을 받아 성경전서를 원판으로 제작하는 광경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신 모습이 몇 장의 사진에 모두 담아 있었다.
정오가 되면 생활뉴스를 진행하는 이창훈 시각장애인 앵커가 있다. 점자를 손으로 읽으며 차분하게 뉴스를 전달하고 있는데, 얼굴에는 편안함과 자신감이 엿보인다.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듣는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고 싶다.’라고 그의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올해는 시각장애인 여교사 두 분이 탄생했다.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 출근하는데, 국어교사인 강신혜 선생님과 영어를 가르치는 김민경 선생님이다. 시각장애인으로 처음 일반학교에 교사가 되었다고 했다. 선생님 부임 후, ‘아이들이 공부만이 아니라 인성교육에서 긍정적인 배움을 얻는 것 같다.’라는 부모들의 전화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이 멋진 선생님들의 소식을 들으며 나는 시각장애인을 사랑하셨던 송암 박두성 선생님의 큰 뜻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삶은 사랑이 전부예요. 하나님께서 지휘하신 나의 생애는 너무나 행복했다고 생각해요. 부모 형제 그리고 이웃들에게 넘치도록 사랑을 받았고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은 물려받지 않았지만, 건강하고 아름다운 정신과 육체를 받았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내 생애가 멀지 않았음에도 너무도 편안한 지금, 소원컨대 건강하게 즐겁게 지내다가 마지막 날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함께 살아주고 보살펴준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그리고 손자들에게도 고마웠다고 인사하며 잠들고 싶어요.”
목련꽃 채색을 하시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리고 온 생애를 사랑으로 살아오신 선생님은 따듯하고 인자한 분이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셨고 검소하며 즐겁게 생활하시는 선생님, 나는 존경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산색이 짙어가는 계절, 이제 나도 많이 사랑하고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 선생님처럼 아름다운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사랑하며 기쁘게 살아야지, 마음먹으면 얼굴이 달라집니다.”
배웅해 주시며 해주신 말씀이다. 오늘도 내방에 걸린 수선화 그림 속에는, 미소 짓는 선생님의 환한 얼굴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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