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애가 물 맑고 공기 좋다는 양평으로 이사를 했다.
지난해 뜻밖에 발병으로 큰 수술을 받고, 사위랑 손자 손녀, 가족 모두 그곳으로 옮겨갔다.
북한강을 끼고 찾아가는 길은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이 보이고,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젊음도 보였다. 여름은 싱싱하게 펼쳐있었다.
육십 중반으로 보이는 집주인 부부는 늘 웃었다. 자녀 둘은 외지에 살고 노부모를 모시고 네 식구가 단출 하게 살고 있었다. 넓은 텃밭에는 갓 가지 푸성귀가 보이고 주변에는 자두, 복숭아, 호두, 대추, 오디와 비슷한 블랙베리가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있었다.
이른 새벽, 뒷밭으로 산책하러갔는데 능선에 걸린 안개가 그림을 그린다. 간밤에는 소쩍새가 울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소리인지, 마치 고향 품에 안긴 느낌이었다.
벼가 실하게 자라는 논을 지나 산나리가 핀 오솔길을 돌고 오니 툇마루에 강낭콩 한 바가지와 호두 한 바가지가 놓여있었다. 콩은 밥에 넣어 먹고 호두는 지난가을에 수확한 것이라며 주인댁이 가져다 놓은 거였다.
무공해 깻잎을 간장에 조려온 반찬은 담백해서 맛났다. 가지 무침, 비름나물, 오이 무침, 딸은 내가 해 주는 찬보다 주인댁이 주는 반찬을 더 잘 먹었다. 뿐만이 아니라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푸성귀를 맘 편히 먹으란다. 감자며 고추 당근 토마토,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서 먹었다.
작물을 가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세대는 잘 알고 있기에 고마운 마음이 컸다. 늘 웃는 인상처럼 마음 또한 넉넉한 분들이었다.
새로 지은 황토 집은 향기가 좋았다. 헌데 어찌된 일인지 찬물이 나와야하는 변기 물받이에 뜨거운 물이 나왔다. 시공했던 기술자가 막걸리 한 잔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선을 바꾸어 설치를 했단다. 벽을 뜯어내고 다시 바르고 수리를 했다. 시공자에게 뭐라고 한마디 할 수도 있으련만 주인 부부는 웃으며‘고쳐 쓰면 되지요’했다.
세상일에 화 낼 일이 없다. 그리고 급할 것도 없다. 각박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서 잊고 살았던 풍경이다. 나라 안은 크고 작은 사건이 연일 터지고 있지만, 이곳은 땅을 지키며 열심히 일하고 베풀며 넉넉하게 산다.
조석으로 담소하며 산책하는 그들 부부를 본다.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주인댁 부부가 움츠러진 내 마음마저 훈훈하게 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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