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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28 인심(仁心 ) - 시골 풍경 - by 물오리
  2. 2013.11.30 그럴 수도 있지 뭐 by 물오리
  3. 2013.08.06 사랑, 그것은 기쁨 by 물오리
  4. 2013.07.21 오십 대는 새댁 -인생 하프타임- by 물오리
  5. 2013.07.17 말 말 말 by 물오리
  6. 2013.06.21 노약자석과 스마트폰 by 물오리
  7. 2013.06.19 호암산(號巖山)의 여름 by 물오리
  8. 2012.01.20 햇볕 가득한 오후 by 물오리
  9. 2011.07.17 제11회 수필의 날 (수필의 역사를 짓다.) by 물오리
  10. 2011.03.05 딸이 더 좋아 by 물오리

 

 

 

둘째 딸애가 물 맑고 공기 좋다는 양평으로 이사를 했다.

지난해 뜻밖에 발병으로 큰 수술을 받고, 사위랑 손자 손녀, 가족 모두 그곳으로 옮겨갔다.

북한강을 끼고 찾아가는 길은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이 보이고,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젊음도 보였다. 여름은 싱싱하게 펼쳐있었다.

 

육십 중반으로 보이는 집주인 부부는 늘 웃었다. 자녀 둘은 외지에 살고 노부모를 모시고 네 식구가 단출 하게 살고 있었다. 넓은 텃밭에는 갓 가지 푸성귀가 보이고 주변에는 자두, 복숭아, 호두, 대추, 오디와 비슷한 블랙베리가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있었다.

이른 새벽, 뒷밭으로 산책하러갔는데 능선에 걸린 안개가 그림을 그린다. 간밤에는 소쩍새가 울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소리인지, 마치 고향 품에 안긴 느낌이었다.

벼가 실하게 자라는 논을 지나 산나리가 핀 오솔길을 돌고 오니 툇마루에 강낭콩 한 바가지와 호두 한 바가지가 놓여있었다. 콩은 밥에 넣어 먹고 호두는 지난가을에 수확한 것이라며 주인댁이 가져다 놓은 거였다.

 

무공해 깻잎을 간장에 조려온 반찬은 담백해서 맛났다. 가지 무침, 비름나물, 오이 무침, 딸은 내가 해 주는 찬보다 주인댁이 주는 반찬을 더 잘 먹었다. 뿐만이 아니라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푸성귀를 맘 편히 먹으란다. 감자며 고추 당근 토마토,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서 먹었다.

작물을 가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세대는 잘 알고 있기에 고마운 마음이 컸다. 늘 웃는 인상처럼 마음 또한 넉넉한 분들이었다.

 

새로 지은 황토 집은 향기가 좋았다. 헌데 어찌된 일인지 찬물이 나와야하는 변기 물받이에 뜨거운 물이 나왔다. 시공했던 기술자가 막걸리 한 잔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선을 바꾸어 설치를 했단다. 벽을 뜯어내고 다시 바르고 수리를 했다. 시공자에게 뭐라고 한마디 할 수도 있으련만 주인 부부는 웃으며‘고쳐 쓰면 되지요’했다.

세상일에 화 낼 일이 없다. 그리고 급할 것도 없다. 각박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서 잊고 살았던 풍경이다. 나라 안은 크고 작은 사건이 연일 터지고 있지만, 이곳은 땅을 지키며 열심히 일하고 베풀며 넉넉하게 산다.

 

조석으로 담소하며 산책하는 그들 부부를 본다.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주인댁 부부가 움츠러진 내 마음마저 훈훈하게 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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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필승”

인사하는 목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른다.

나도 웃으며 그를 따라 거수경례를 한다. 우리 동네 삼성산 시흥계곡에 있는 배드민턴구장의 아침풍경이다. 어제 내린 눈으로 산은 눈꽃이 피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겨울의 절경(絶景)이다. 까치는 이 눈 속에 무엇을 먹고 사는지 눈가루를 뿌리며 둥지위로 날아든다. 넓은 천막이 처진 이곳은 벌써 장작이 활활 타고 있다. 일찍 나온 회원이 난로에 불을 지펴 주전자에선 물이 끓고 있다. 커피나 혹은 쑥 차를 마시며 이야기가 한참이다.

이곳 회원이 된 것이 십여 년 전일이다. 작은 키에 통통한 몸무게는 여러 가지 증상을 몰고 왔다. 누우면 숨이 찼고 관절이 시큰거렸다. 집요한 편두통도 찾아왔다. ‘아무래도 운동을 해야겠구나.’ 나는 작심을 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혹은 약수터에서 배드민턴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시작을 했다. 공을 능숙하게 다루는 선배들이 코치해 주었다. 라켓을 잡는 법과 공을 다루는 방법, 그리고 난타를 쳐주었다. 멀리 보내는 하이 클리어, 네트를 살짝 넘기는 헤어핀 크로스, 열심히 하는 데도 공을 자주 놓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깨에 힘을 빼고 손목으로 쳐야 하는 데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해가 바뀌면서 나는 게임에 합류하게 되었다. 남녀가 짝을 지어 하는 혼합복식 게임이 있고 같은 성(姓)끼리 짝을 지어 하는 복식게임이 있다. 셔틀콕을 칠 때의 묘미는 찬스 볼이 왔을 때, 빈자리에 꽂아 버리는 스매싱이다. 그 외도 길게 보내고 짧게 넘기고 게임이 시작되면 숨차게 뛰어야 한다. 상대 팀이 우리 페이스에 말려들면 승리는 눈에 보인다. 이론에는 나도 도사다. 그러나 생각대로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내가 받아야 할 공을 놓치고 파트너가 쳐야 할 공을 터치해서 미안해 웃는다.

일 년에 한 번 대회가 열리는데 지난 가을이었다. 8개의 클럽에서 나온 선수가 300여 명, 그날은 동호인들의 잔치였다. ‘사회인 배드민턴 대회’ 상수리나무에 걸어놓은 현수막처럼 남녀노소 함께 어울리는 자리다. 시합은 시작되었고 나는 삼승까지 가서 간신히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것도 파트너 덕분이었다.

“여사님, 은메달 축하해요.”

“예, 감사합니다.”

대답은 그리했지만 좀 민망했다. 사실 나와 같은 무렵 입회한 회원들은 금메달을 목에 건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유난히 운동 신경이 둔했다. 어린 시절 운동회 때, 그 흔한 연필과 노트를 한 번도 타보지 못했다. 죽을힘을 다해 달려도 꼴찌만 면할 뿐, 그래서 늘 아쉬움만 남아있었다.

 

첫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처음으로 열리는 운동회였다. 새벽잠을 설쳐가며 김밥을 싸고 밤도 삶고 점심을 서둘러 장만을 했다. 딸아이의 달리기경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본부석 옆에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저학년 달리기는 처음 순서로 펼쳐지는 매스게임이 끝나고 바로 이어졌다. 드디어 딸아이 반이 달렸다. 출발신호가 울렸는데 웬일인지 딸애가 보이질 않았다. 앞에서 달려온 아이들은 골인했고 출발지점을 살펴보니, 두리번거리며 세상구경 다 하고 꼴찌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모전여전이라더니 엄마보다 더하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 집 딸이 꼴찌로 들어오더라고.”

“세상 구경하느라고 그럴 수도 있지 뭐”

옆집 엄마 말에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나는 민망해 또 웃었다.

 

“남 여사가 12년 만에 은메달을 땄지 아마”

“예, 맞습니다.”

80을 넘기신 노장은 내 운동 실력을 알고 있는 터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나이 어린 후배가 그런 말을 했다면 뭐라고 한마디 했을 터인데 둔해서 그런 것을 인정할 수밖에. 남들은 날렵하게 잘도 하는데 타고난 것이 그런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체중도 줄고 숨찬 증세도 없어져 지하철역 계단도 문제없다. 그뿐만이 아니라 서너 게임을 하다 보면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단박에 사라진다. 그리고 이제는 봄여름 가을 겨울, 자연의 숨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사계에 묻혀 산다.

산에서 내려오며 길동무에게 한 말이다.

“내가 둔하긴 하지, 좀 부끄럽더라고”

“괜찮아, 메달 좀 늦게 따면 어때 그럴 수도 있지 뭐”

하긴 인생을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자신을 위로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또 한 번 나를 위로하며 깍깍대는 까치의 인사를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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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둘째 딸과 사위

 

 

 

‘수 정교’ 다릿목을 지나면 긴 둑길이 나온다.

노란 달맞이꽃이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실바람에 박하향이 묻어온다. 소나기가 시원하게 퍼붓고 간 저녁, 풀숲엔 반딧불이 반짝인다. 입대한 그가 첫 번째 휴가를 온 날이다. 그의 손엔 빨간 장미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 하였던가, 눈 감으면 어제 일처럼 선연한데 세월은 아득히도 나를 데려다 놓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늦게 귀가한 딸들이 아무 데나 던져버린 꽃다발이 눈에 띈다. 고운 색으로 물든 한지에 빨간 장미 한 송이, 하얀 안개꽃에 노란 프리지아, 그리고 연보라 튤립에 예쁜 리본이 매여 신장 위에도 식탁 위에도 놓여있다.

“좋은 때다. 내게도 가슴 설레던 시절이 있었지”

나도 모르게 주절거리며 꽃병을 찾는다. 어느 해인가 딸애가 내놓은 사진 속에는 몸집이 가냘프고 키만 밀대같이 큰 사내아이가 빙긋이 웃고 있었다.

“이 몸으로 처자식 건사하겠니?”

  대수롭지 않게 대꾸를 했는데 삼 년쯤 지났을까 느닷없이 인사를 왔다. 그동안 학교를 마치고 군 복무 중이란다. 짙은 눈썹에 적당한 콧날, 이목구비가 수려하다. 사진과는 달리 체격도 늠름하고 당당하지 않은가. 뉘 집 아들인지 볼수록 잘 생겼다.

“안녕하십니까?”

  건장한 체격에 얼룩무늬 군복이 한결 믿음직해 보인다. 웃음 짓는 얼굴에는 선량함이 엿보이고 어찌 된 일인가 낯설지가 않다. 딸 중에 유난스럽게 까탈스러워 적이 걱정을 했던 터에, 진중하고 심덕(心德) 있어 보이는 상대가 생기다니 딸만 키운 나에게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꽃다발은 몇 번이나 안겨주었고 어떤 묘법을 썼는지, 마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아니하다.

“어머니, 혜원이를 사랑합니다.”

 그래, 사랑이란 말처럼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 또 있을까, 카키색의 젊음 앞에서 주책없이 나는 지난날의 내 사랑을 회상한다. 더없이 지순하고 청명했던 시절, 반딧불이 불을 밝혀 주고 달맞이꽃이 피던 밤, 나는 그 밤을 잊지 못한다. 온 세상 모두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고 했던 그, 그 환희(歡喜)의 얼굴을 다시 보고 있다. 그것은 기쁨 그 자체였다. 사랑만이 창조할 수 있는 순수의 얼굴이다. 딸아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이해하고 감싸줄 것 같은 넉넉함이 청년의 온몸에서 배어 나온다.

 

   태어남(生) 이란 얼마나 큰 기쁨인가, 하물며 수많은 사람 중에 인연이 되어 사랑함에야 더한 축복이 있겠는가, 지나간 시간 속에 담겨있는 기쁨의 조각들은 내 마음의 보석이 되어 언제나 나를 미소 짓게 한다. 흔히 사랑은 콩깍지가 씌워야 하고 결혼은 한쪽 눈을 감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사랑 없이 우리네 삶이 어찌 이어질 수 있을까, 아끼고 다독이고 상대를 위한 끊임없는 배려로 우리는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다. 그것은 사랑을 느끼고 실천하는 사람들만이 소유하는 일이리라.

며칠 전, 커다란 꽃바구니가 배달되었다. 핑크빛 카네이션에 하얀 백합, 그리고 빨간 장미가 소담스럽게 담겨 있었다.

‘어머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카드 속에 쓰인 글이다. 혼자 중얼거린 소리가 건너갔지 싶은데, 그래도 얼마 만에 받아보는 꽃인지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요즘 내가 새삼 느끼는 것은, 딸에 대한 나의 사랑도 사랑이려니와 딸을 사랑하는 한 남자가 나에게 베푸는 애정 또한 소중한 기쁨임을 알게 되었다.

‘많이 사랑하고 예쁘게 살아다오.’

도란도란 귀엣말하며 나란히 나서는 모습을 보며 새롭게 얻은 또 하나의 사랑을 확인한다.

  미국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여주인공 프란체스카는 딸에게 “인생은 더없이 아름다웠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이 대사를 조금 더 풀이해서 말해 줄 것이다. “인생이 기쁜 것은 사랑 때문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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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십여 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아껴주시던 스승님께 안부전화를 드리니 내 나이를 물으셨다.

  “저도 육십이 다 되어 가는데요.”

  “그래, 아직은 새댁이네.”

   갑자기 하시는 말씀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 나이가 무슨 새댁? 괜한 말씀을 하시네.’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십 년,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이렇다 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 세월은 백 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지나가고 나는 육십 대 끄트머리에 와 있다. 나이란 놈은 많이 먹을수록 가속도가 붙는다고 하더니 괜한 말은 아닌 듯싶다.

 

  우리 반 기타 선생님은 이십 대 후반이다. 얼굴도 미남이지만 적당한 체격에 속 깊은 마음까지, 요즘 젊은 사람과는 달리 넉넉한 품성이 보인다. 기타를 배우는 회원이 실버들이라 익히는 속도가 느려 답답할 텐데도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자상하게 지도한다. 뉘 집 아들인지 고맙기도 하고 기특한 생각이 들어서 어머니 나이를 물어보았다.

“아, 어머니요, 오십 대 후반이신데요.”

“어머나! 그래요, 어머니가 새댁이네”

  젊은 선생님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예전에 내가 그랬듯 새댁이라는 말이 생경해서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만큼 나이에 수를 더하고 보니, 내 스승님이 하신 말씀이 절로 수긍이 된다.

 

  여자 오십 대는 새댁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낙의 인생에서 또 다른 일을 생각해볼 수 있는 하프타임이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위해 보냈던 일상에서 조금씩은 놓여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시기가 오십 대다. 무엇보다도 제2의 인생을 계획하기엔 더없이 좋은 때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를 살려 전문가도 될 수 있고, 못 이룬 꿈을 향해 다시 공부해 볼 수도 있는 나이, 백세를 바라보는 이 시대에 인생 이모작을 계획하기에는 더없이 적절한 나이다.

   산을 타는 동호인 중에 남도소리를 잘 부르는 친구가 있었다. 노랫가락, 성주풀이, 선 시조까지 부지런히 배우러 다니더니, 지금은 강사가 되어 문화센터에서 제자들을 가르친다.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같은 연배 제자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산다.

 

  나 역시 오십 대에 글공부를 시작했다. 막내가 입시공부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 미루었던 공부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일을 접고 집을 나설 때는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기쁘기도 했고 생활에 활기가 넘쳤다. 그리고 그때 만난 문우들과 글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분에 넘쳐 고맙다. 그뿐만이 아니라 독서지도 수료증을 따고 초등생 책 읽기 지도를 할 때는 나름 보람도 컸다. 어느 분야든 삼 년을 배우면 귀가 열리고 빠르면 오 년, 늦어도 십 년이면 그 일에서 전문가가 되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요즘은 자기 관리를 잘하는 시대여서 그런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주름살도 없고 젊기만 한 오십 대, 그들을 보면 나도 ‘아직은 새댁이네!’ 하는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온다.

 

   이른 아침, 계속되는 장맛비가 조금 멈추었다. 인근에 있는 구름산으로 산책하러 나갔는데 빗방울이 또 떨어진다. 산 중턱에 있는 정자 안으로 들어섰는데, 팔순을 넘긴 어른 두 분이 나를 보더니 불현듯 나이를 묻는다.

“육십 끝자락인데요.”

“그 나이만 됐어도 좋겠네.”하며 웃으신다. 하긴 십 년 후에 나도 그 말을 또 하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은 새댁이네!’ 라는 말을 들었던 그 오십 대가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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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말 말 말

수필[Essay] 2013. 7. 17. 20:23

 

 

 

  아침 7시, 나는 헤드폰을 귀에 걸고 인접해 있는 계곡으로 간다. 이 시간에 방송되는 라디오에는 ‘말 말 말’이란 코너가 있는데 각계각층의 사건들을 유머러스하게 전해 준다. 실감 나는 것은 성우가 성대모사까지 해 주어서 듣는 이가 재미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유난히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눈에 띈다. 산을 오가며 자주 만나는 분인데, 고령의 어른이시다. 이 어른은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상대가 흥미 있어 하는지 없어 하는지 아랑곳없다. 그럴 땐 상황을 봐가며 슬며시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이다.

 

오늘도 잣나무가 있는 숲까지 갔다 내려오는 길인데, 산그늘에서 몇 분이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계셨다. 그분의 긴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 목이 타셨는가. 단숨에 술잔을 비웠는데, 아뿔싸! 그 잔에 벌 한 마리가 들어간 것이다. 넘어가면서 목구멍을 쏜 것이다. 급기야 신음을 내며 쓰러지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얼굴은 붉게 부어올랐다. 다행히 구급차가 도착해서 병원으로 직행했다.

 

말이 많은 것도 공해다. 각자 바쁜 일상, 여간해서 느긋하게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겠는가.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대화를 구사(驅使)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 같다. 구급차가 사라지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인간관계로 해서 늘 쓰이는 말(言), 이 말이란 무엇일까. 새롭게 화두가 되어 머리에서 맴돈다. 그리고 오래전에 말 때문에 절교를 한 친구들이 생각났다. 다들 막내의 입시를 앞둔 겨울이었다.

“네 딸이 지방 대 00 갔다며 ?”

한 친구의 이 한마디가 화근이 되었다. 아이가 몸이 아파서 학교를 쉬었고, 그 바람에 지방대 분교를 가게 되어 속이 타고 있던 터에, 한 친구가 생각 없이 던진 말이 비수처럼 꽂힌 것이다. 성적도 좋은 아이였는데 몸이 아팠으니 친구의 안타까움이야 오죽했겠는가.

 

살다 보면 마음 아픈 일이 종종 생긴다. 위로는 못할망정 아픈 곳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결과라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 이른다. 말이란 달콤하고 감미로운 언어도 있지만, 동시에 칼날같이 예리하여 마음을 벨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배웠다. 생각 없이 한 말이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함은 물론이고, 시기를 놓쳐버리면 그 실수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젊은 날 아이를 키우며 시집살이할 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았다. 시어머님이 남다르게 사랑이 많은 분이셨기에 더욱 어려움을 몰랐던 것 같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사니, 나 하나 참으면 집안이 편한 법이란다.”

어느 날 어머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 얼마나 보시기에 민망하셨으면 그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하면 그저 죄송한 마음뿐이다.

 

유능한 앵커이며 말하기 전문가 ‘바바라 월터스’가 쓴 <당신도 말을 잘할 수 있다> 라는 책을 보면 몇 가지 요령을 언급했다.

‘나 중심의 생각을 벗어나 상대방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것이 말을 잘하는 첫 번째의 기법이다. 예의 바른 태도, 사려 깊은 행동, 올바른 언어 선택, 웃음을 자아내게 한 이야기는 결코 버리지 않았다.’ 라고 했다. 그리고 때로는 침묵도 필요했다고 강조한다.

정중한 어법으로 매너 좋은 말솜씨,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무척이나 기분이 좋다. 비단같이 고운 말은 사람의 마음을 토닥여 주고, 부드러운 말은 가슴을 따듯하게 한다. 만나는 모임을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준비하고, 전화를 걸기에 앞서 상대가 기분 좋아할 말을 궁리하신다는 나의 스승님, 그분의 말속에는 유쾌하고 배우는 것이 있었고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배어있었다. 세상을 부드럽게 살아가려면 적어도 이 정도 센스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입을 다물 줄 모르는 사람은 문이 닫히지 않은 집과 같다.’ 라는 탈무드의 격언처럼 선현들의 가르침을 새겨 말을 아낄 줄 알고 적절히 하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 같다.

말을 잘한다는 것. 그것은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고 나아가서 함께한 그 시간이 유익하고 즐거웠다면 그 사람은 최고의 화자(話者)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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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버스를 타면 나도 모르게 노약자석 부터 살피게 된다.

지지난해 간단한 무릎수술을 받고 생긴 버릇이다. 헌데 어김없이 젊은 청년이나 여학생이 앉아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있다. 뒷좌석이 비어 있는데도 말이다. 그럴 때 나는 그들에게 속삭인다.

“ 저기요, 무릎이 좀 안 좋아서 그런데, 자리 양보 좀 해 줄래요.”

“ 아! 예 "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내 자리를 내어주는 청년도 있고, 간혹 얼굴을 찡그리며 마지못해 좌석을 내어 주는 여학생도 있다. 나는 ‘고맙습니다.’ 아니면 ‘고마워요.’ 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버스는 무릎이 성치 않은 승객을 위해 기다려주질 않는다. <노약자석>은 노인이나 몸이 약한 사람을 위한 전용좌석이다. 그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어떤 마음으로 앉는 걸까. 아마도 별생각 없이 가까우니 편해서 앉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어쩌다 볼일이 있어 외출을 하게 되면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은 가급적 피한다. 하루 일을 시작하는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 가 봐서이다. 스킨이나 로션 향을 풍기며 정갈한 차림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보면, 지나간 시간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 짖는다.

가끔은 세월이 단숨에 가버린 것 같은 착각을 한다. 그리고 어느새 노약자석을 찾는 자신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누군들 열심히 살지 않았을 까만 일하고 자식 키우고 나니 어느덧 노년에 접어들었다. 마음 같아선 젊은이들에게 노약자 좌석은 비워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대부분 뒷좌석은 비어 있으니 말이다.

며칠 전 버스를 탔는데 얼굴도 잘 생긴 젊은이가 나를 보더니 이내 자리를 내어주고 뒷좌석으로 간다. 나는 또 ‘고마워요.’ 인사를 했다. 그날은 기분이 좋았다.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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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칠월 중순, 간밤에 내린 비로 숲 속 향기가 상큼하다.

아침 여섯 시쯤이면 나는 산행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관악산 줄기 아래 있는 호암산이다. 정상에 있는 바위 모양이 호랑이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 두 개의 장승이 익살스러운 얼굴로 등산객을 반긴다. 초입에 들어서면 숲 속 향기는 한결 산뜻하다. 산세(山勢)를 설명하는 안내도가 서 있고, 말라 있던 계곡에 물소리가 시원하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예, 날씨가 좋습니다."

산을 오른 지 여러 해 되어 낯익은 얼굴이 많다. 약수터 표지판을 보며 가다 보면 '푸른 숲 가꾸기'에서 만들어 놓은 나무 계단과 난간을 만난다. 산그늘에도 긴 의자가 띄엄띄엄 있는데, 나무의 곡선을 그대로 살려서 한껏 운치를 더해준다. 한번 쉬었으면 할 때 만나는 의자는 통나무를 생긴 그대로 잘라 만들었다. 나지막하게 설치해 놓은 모양새가 펑퍼짐한 아줌마들 엉덩이같이 생겨서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깍깍” 까치는 아침 인사를 한다.

“너희도 잘 잤니?”나도 화답을 해준다.

낙엽송이 시원하게 뻗어있다. 나무 표피가 하얀색은 자작나무, 그 나무 앞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올라온 길을 마주하며 나는 숨을 돌린다. 서울과 안양을 달리는 차들이 보이고 내가 사는 아파트도 시야에 들어온다. 먹이가 괜찮은지 통통하게 살이 찐 청설모 한 쌍이 소나무를 안고 돌며 올라간다.

"뒤따라가는 녀석이 수컷일 거야"

"무슨 소리, 요즘은 암컷이야."

동행한 친구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곳 시흥 호암산은 갓 가지 새가 많다. 안양에 있는 서울 대학교 수목원과 산줄기가 닿아 있어서다. 초봄에는 나무 쪼는 소리가 온 산을 울리더니, 딱따구리란 녀석이 나무 중간쯤에 둥지를 틀었다. 새끼 두 마리가 조그만 입을 벌리며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이 앙증맞고 귀여워 보는 즐거움이 한몫했는데, 서운하게도 이십여 일 만에 떠나버렸다. ‘휘이익 쪼르르 쪽쪽쪽...,’ 어디선가 휘파람새가 운다. 나는 이 새 울음소리를 들으면 <북한 답사기> 묘향산 편이 떠오른다. 그곳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휘파람새는 홀아비 귀신이 변한 새란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호올딱 벗고 자자. 호올딱 벗고 자자 호호호' 하고 우는 거란다. 하기야 소리가 고운 꾀꼬리도 처녀 넋이 변한 새 인지라 울 때마다 '머리 곱게 빗고 시집가고지고 가고지고' 그렇게 운다는 설이 있다.

(韻)을 맞추어보면 그럴싸하게 맞는다. 새소리는 듣는 사람에 따라 수십 가지로 들린다고 한다.

노간주나무, 개암나무, 박달나무, 그리고 밤나무가 동무해주는 오솔길로 접어들면 칼같이 생긴 칼바위가 위용을 자랑한다. 그 기세를 감상하며 조금 더 오르면 '한 우물'이라는 우물이 나온다. 신라 시대에 만들었다 하는데, 가물 때는 기우제를 지냈고 전시에는 군용으로 사용 했다한다. 기이한 일은 이 높은 곳에 어떻게 맑은 물이 늘 고여 있는지, 심한 가뭄에도 물은 마르는 일이 없다.

정상에는 해태 상하나가 우뚝 서 있다. 조선 왕조 도읍설화에 기록된 것은, 경복궁 해태와 마주 보게 하여 관악산의 화기를 누름으로써 장안의 화재를 막기 위해 세운 거라고 했다. 주술적인 뜻이 있나 보다. 그 밖에도 무학 대사가 창건했다는 호압사가 있고, 전시 때 치열했을 것 같은 성터가 자리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성터 너럭바위에 앉는다. 산허리를 감고 있는 구름과 능선이 아름답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하고 골짜기에 얼굴 내민 노란 아기 똥 풀은 오늘따라 더욱 곱다.

이산을 찾은 지 십여 년이 넘는다. 하늘 높은 줄 모른다더니 작은 키에 몸은 비대해지고 숨을 쉬는 것이 버거운 증세가 왔다. 그 무렵, 동네 한 분이 위암 수술을 받았는데 회복이 빨랐다.

"참, 건강해 보이시네요."

"새벽에 호암산으로 등산하러 다녀요, 근력도 생기고 기분도 좋아요."

그 후 나는 그분을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계곡을 끼고 생긴 등산로는 가파르지 않아 좋다. 봄이면 싸리 꽃이 흐드러지고 오월이면 아카시아 향이 온 산을 덮는다. 멀미날 것 같은 밤나무 향도 빼놓을 수 없다. 여름이면 우거진 숲에 새들의 울음소리, 가을엔 나뭇잎과 떨어진 밤송이, 도토리 줍기에 바쁜 다람쥐와도 눈을 맞춘다. 그리고 한겨울의 눈부신 설경, 이제 나는 이 호암산에 묻혀 산다.

일이 힘들 때도 마음이 편치 않을 때도 나는 자주 산에 올랐다. 그때마다 이 산은 나를 넉넉하게 품어주었다. 나뭇잎에 매달린 이슬이 이마를 적시면 가던 길을 멈추고 조롱조롱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를 본다. 봄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떨어트리는 가을을 준비하는 나무들, 불평 없이 자기 삶에 충실한 모습을 보면, 나도 자연을 닮아보자 애써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짙은 솔 향에 잡생각을 씻어내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콘트라베이스 음향처럼 조용하면서도 장엄하게 찾아오는 자연의 숨소리,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있다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루를 여는 아침의 맑은 정기를 가득 안고 하산하는 길은 잣나무가 있는 숲길이다. '사랑할 것이 너무 많다'는 라디오 진행자의 오프닝 멘트가 오늘따라 기분 좋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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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오전 열 시가 되면, 거실에는 햇볕이 가득하다.
그 해님은 돌아서 오후 두 시쯤, 내 방으로 찾아온다. 살구색 커튼을 통해 들어온 햇볕은, 마치 무대 조명등을 켜 놓은 듯 방안이 환하다. 문갑 위에 춘란(春蘭)은 봄을 기다리고 있는데, 햇볕을 받아 난 잎은 푸름으로 더욱 반짝인다. 나는 이럴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차 한 잔을 마신다. 지리산자락에서 보내온 감잎차를 마시며, 그리운 벗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동지섣달, 이 깊은 겨울에 내가 누리는 호사다.

요즘 햇볕을 마주하면 새삼스레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딸 덕분에 이곳 남향집으로 이사를 온 지, 일 년이 막 지났다. 아파트 뒤로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 있고, 앞으로 조금 나가면 내(川)가 흐르는 안양천이다. 꽤나 많은 세월을 살았는데, 지금처럼 남향집에서 살아보긴 처음이다. 젊은 날은 일하느라 바빴고, 추운 기운이 들어온다는 북향집만 피했지, 집값이 더 나가는 남향집을 택하기에는 부담도 되었고, 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예로부터‘남향집에 살려면 3대가 적선을 해야 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곳에 살면서 사계절을 맞고 보니 왜 그런 말이 있는지,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하다. 그래서 남향집을 길(吉) 한집으로 꼽았나 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면, 화가 오지호(1905- 1982)의 대표작인‘남향집’이 전시 되어있다. 조선의 빛을 처음으로 화풍에 담았다는 이 그림은, 언제 보아도 정감이 넘친다. 햇볕이 쏟아지는 오후, 빨간 원피스를 입고 대문을 나서는 단발머리 소녀와 담벼락 아래 낮잠을 즐기는 흰둥이, 보고 있으면 내 유년의 고향이 떠오른다. 그 담벼락 앞에 옹기종기 앉아 소꿉놀이했고, 공기놀이했던 어린동무들이 보인다.

‘남향집’은 1935년, 개성에 있는 ‘송도 보통학교’ 미술교사로 있을 때, 화가 오지호가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대문을 열고 나오는 여자아이는 둘째 딸이라고 했다. 이 그림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2년 벽두에 무료전시회를 하고 있는데, 그의 유족이 미술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지구의 건강상태가 예전 같지 않아, 대체로 일사(日射)량이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난여름은 많은 비가 내려서 피해도 컸지만, 볕을 보기가 정말 어려웠다. 햇볕의 고마움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을까만, 나는 이 겨울 무량으로 쏟아지는 볕이 마냥 고맙기만 하다. 어느 문학지에‘햇볕이 소중해 한여름에도 양산을 쓰지 않는다.’는, 노(老) 작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문구를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이가 들면 소중한 것이 많아지는가 보다 이 겨울 , 찾아온 햇볕에 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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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2011년 7월 15일, 강릉에서 수필의 날 행사가 있었다.
강릉시, 산림청, 문인협회 강릉지부  후원으로 열렸다.
극작가 신봉순씨의 강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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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딸이 더 좋아

수필[Essay] 2011. 3. 5. 03:31
 

 

  2010년, 우리 사회가 딸을 더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일간지에 실린 기사를 보고 속웃음이 나왔다. 그것은 딸만 셋을 키운 내 젊은 시절이 떠올라서다. 어디 나뿐이랴, 딸만 둔 여인들은 나처럼 미소를 짓지 않을까 싶다. 

  결혼을 하고 첫 딸을 낳았을 때, 시어머님은 살림밑천이라고 좋아하셨다. 그리고 두세 살 터울로 둘째, 셋째가 태어났을 때도, 그 시절 인기가 많았던 가수 그룹을 운운하시며 ‘안 시스터즈를 만들면 되겠네.’하셨다. 그러나 나는 어머님의 그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여 딸만 낳는다고 누가 뭐라고 하는지 살피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시누이든, 손위 동서든, 누구든지 한마디만 하면 바로 대항할 자세로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다. 

“이 사람이 누가 뭐란다고 그래, 마음 편히 갖고 우리 딸들 잘 기르자 구.”

  좌불안석인 나에게 남편이 해준 말이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때 경험했다.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온다.

나의 시어머님은 보기 드문 호인(好人)이셨다. 시댁과의 갈등으로 힘든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어머님 덕분에 마음고생을 한 기억이 거의 없다. 늘 인자하셨고 품성이 어진 분이었다.  맛나게 미역국을 끓여주셨던 일, 생명의 소중함을 일러주시며 언짢아하는 내 마음을 토닥여 주셨던 일, 세상 떠나신지 십여 년이 넘었지만 생각하면 그리운 마음뿐이다.

 

  우리나라 남아선호사상은 그 뿌리가 깊다. 고려시대 이후에 확립되기 시작하여 유교문화의 융성과 1700년 중엽 이후, 철저하게 계승되었고, 가계계승을 위한 전통가족제도가 원리였다. 장자는 결혼하여 부모와 함께 살면서 봉 제사(奉祭祀)를 받들고, 가족제도가 부계(父系)로 이어지면서 남아 선호사상은 더욱 굳혀졌다. 1970년 영화로 상영되었던 ‘이조여인잔혹사’는 작고한 신상옥 감독의 작품이다. 봉건적인 인습에 희생된 조선시대여인들의 이야기다. 칠거지악(七去之惡)이란 악습으로 아들을 낳지 못한 여인들이 받는 수모와 핍박은 처절할 만큼 잔혹했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한일인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이 땅의 여인들은 아들을 원했다. 나 역시 남편을 닮은 아들 하나 얻기를 소원했지만, 그것은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막내가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사주(四柱)를 잘 본다는 철학관을 찾아갔다. 아들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다. 허탈해하는 내 얼굴을 보더니 ‘딸도 잘 키우면 아들 노릇 합니다.’ 했다.  

  1980년대, 아들을 둔 사람은 그야말로 든든한 노후보험이라도 들어 놓은 것처럼 흐뭇해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 밥은 편히 앉아서 받아먹고, 딸 밥은 서서 먹는다.’라는 말도 있었다. 

어느 모임을 가든, 또 조금 안면(顔面)을 트고 나면 사람들은 물었다.

“ 몇 남매 두셨어요?”

“딸만 두었습니다.”라고 답하면 혀를 끌끌 차거나 동정어린 눈으로 나를 보곤 했다. 기분이 언짢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남매를 두었어요.’ 하는 말로 대신해버린 적도 있었다. 그간에 딸들을 키우며 어쩔 수 없이 웃어넘긴 일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잘했다는 상도 받아오고 칭찬도 듣고, 여느 집처럼 자식 키우는 재미에 나는 서운함을 잊어갔다. 사춘기가 지나고 딸들이 예쁜 숙녀로 자랐을 때, 우리 집은 달라지는 것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화병에 꽃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것은 딸들의 남자친구가 주는 꽃이었다. 빨간 장미로 시작하여 핑크빛 튤립, 노란 후리지야, 하얀 안개꽃, 향기나는 백합까지, 시들만 하면 번갈아 들고 들어 왔다. 꽃만 피는 것이 아니라, 딸아이들도 곱게 피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흐뭇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딸아이들과는 마음이 잘 통했다. 친구도 이런 친구가 없다. 쇼핑도 함께하고, 여행도 함께 간다. 그것은 딸을 둔 엄마들만의 특별한 혜택이지 싶다.

  요즘은 시집간 딸 곁에 사는 것이 편하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한다. 김치를 담아 택배로 보내고, 며느리에게 전화만 해야 하는 시대라고 친구들은 말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아들은 품 안의 사랑이고, 딸은 영원한 사랑이란다. 농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세태를 잘 반영하는 것 같다. 

 

  시인 이향지씨는 ‘반달’을 작사 작곡한 윤극영 선생님의 며느리다. 생전에 며느리들로부터 아버님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아버님을 ‘아버지’로 불렀고, 그 선생님도 당신의 아들과 딸처럼, 며느리를 쉰이 되도록 이름 ‘향지’로 불렀단다.  불필요한 격식을 걷어버림으로 더욱 가까워진다는 이 시인은, 그 아버지를 사랑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내 딸이 결혼하면 그 집 며느리요, 아들이 결혼하면 내 집 며느리다.  딸, 아들, 며느리, 차별 없이 이름을 부른 것은, 그 선생님만의 특별한 사랑 방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안이 환했던 딸들은 혼인을 했다. 가까이 살아 손자 손녀 안겨주고 오순도순 산다. 내목소리만 들어도 컨디션 지수(指數)를 짐작하는 둘째 딸, 시시때때로 어미생각을 해주는 딸아이들이 고맙기만 하다.

  아름다운 세상 소풍 온 것이라 읊은 시인의 시구처럼, 우리 모두 그 소풍 끝나면 떠나는 인생일 것인데, 딸이면 어떻고 아들이면 어떠하랴, 주님이 나에게 주신 소중한 생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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