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은 형들에 의해 이집트 노예로 팔려간다. 그때 나이가 17세 , 내가 우리 집 기둥으로 여기는 손자 다안이도 올해 17세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 번째 아들 요셉, 형들이 깊은 구덩이에 쳐 넣었을 때 , ㆍ제발 살려주세요 ㆍ 얼마나 울부짖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온다. 뿐만 아니라 ㆍ그 형들은 구덩이에서 꺼내 애굽의 종으로 팔았다 ㆍ
꿈의 사람 요셉은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용모가 준수했다. 야곱의 총애로 형들의 시기를 받았지만 , 그 어린것을 어찌 그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요셉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그 어려운 세월을 견디어 냈다.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도 ㆍ그 아내의 유혹에도 하나님을 생각했고, 억울하게 가게 된 감옥에서도 맡은 일을 성실하게 했다. 술 관원장. 떡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집트 파라오의 꿈을 해석한 요셉, 왕의 신임을 얻어 마침내 총리대신이 되었다 ㆍ 많은 생명을 구한 요셉, 기근에 시달린 팔레스타인에 사는 아버지를 만나고 형제들을 맞아 태평성대를 누린 요셉.
ㆍ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ㆍ 창세기 46장 30 절
요셉은 참으로 거룩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진실, 인 내, 순종.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각광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 고난의 세월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던 요셉, 무슨 일을 하던지 주님께 하듯 했다.
17세 우리 다안이 , 대한민국 남아로 잘 크고 있다 ㆍ다만 주님 안에서 이웃을 배려하며 어려운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멋진 사람이 되기를 이 할미는 간절히 기도드린다 ㆍ . 나리 꽃말은 ㆍ진실 ㆍ순결 이란다.
이불 하면 먼저 따뜻하고 편안함이 떠 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쉼을 갖는 잠자리, 그것은 달콤하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침구 일에 십오 년 종사했다. 그 당시, 인사동은 고급 이불을 제조해서 공급했고 순면으로
사계절 침구류가 예쁘고 다양하게 생산되었다.
사람들이 촉감 좋고 쾌적한 이불을 덮고 단잠을 이룬다면 그것도 나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쇼핑센터 침구 코너, 나를 찾아주는 그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딸아이 셋 대학을 보낼 수 있었다.
새벽 별을 보고 나가서 밤 별을 보고 들어 왔던 시절, 어려웠던 현실 속에서 의, 식, 주, 그리고 교육까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음을 감사했던 날들이다.
아주 가끔 " 참 따뜻하고 좋아요 " 단잠을 잡니다 "
라는 인사말을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럴 땐 기분이 좋은 것은 물론 ,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오랜 시간 침구 일을 한 덕분에 지금도 천을 만져보면 순면인지 , 폴리에스터가 섞여 있는지 금세 알 수가 있다. 순면의 부드러움과 상쾌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주님 사랑을 받은 지 7년 , 올해 뜻하지 않은 돈을 받게 해 주셔서, 처음으로 가족 모두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순면 이불을 하나씩 구해 주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따뜻한 이불이 아버지의 품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두 날개 아래 우리를 품어주시는 하늘 아버지, 그 너른 품은 포근한 이불과 연결이 되었다.
잠 잘 때도 , 아플 때도, 마음이 상했을 때도 안아주시는 하늘 아버지, 그 사랑은 조건 없이 무한대로 주시는 사랑이다. 나는 이불을 소포로 보내며 기도를 드렸다.
'제가 선물로 보내는 이불을 덮으며 우리 가족 모두 아버지의 크신 그 사랑을 알게 하소서, 간구하며 아뢰었다. 요즘 치료받고 있는 나 때문에 한 줄 기도를 드린다는 손주들과 딸 , 사위 , 참 고맙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머지않아 다 주님 자녀로 불러 주실 것을...
십 년쯤 나보다 먼저 주님을 영접한 여동생한테 나는 물었다. ㆍ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일까? ㆍ가족 구원 ㆍ 동생의 대답은 단 일초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 가족 구원 ,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나를 포함해 8명 , 꿀 같은 아버지 말씀 책을 펴놓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경배드리며 찬송드리며 가족 예배드리는 그림을 나는 늘 상상해 왔다 ㆍ 한 없이 주시는 아버지 사랑, 그 사랑을 받으며 기쁘게 감사하며 사는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드린다.
우리 가족이 예배드리는 그림, 하동' 벧엘 수양원 ' 그림을 잘 그리는 아기 천사가 그려준 것.
안경과 모자를 쓴 나 , 행복해서 웃고 있다. 내 옆에 서 있는 손자 , 머리가 긴 큰 딸, 아기 옆에는 막내딸, 손녀와 사위들 , 나이를 물어서 다 적어 주었다.
힘들고 캄캄했던 내 젊은 날, 선배님은 나를 지켜준 한줄기 빛과 같은 분이시다. 언제나 나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고 험한 세상 잘 헤쳐 나가도록 격려와 용기를 주신 분이다.
1978년 겨울, 심장 마비로 갑자기 떠난 남편 때문에 망연자실 넋이 나가 있을 때, 선배님은 긴 위로의 편지를 보내주셨다. 그 당시 음성읍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고 계셨고, 또 한 사람 제천 초등학교에 근무하다가 사정이 생겨 아가들과 친정집에 살았던 아우, 우리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차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마음이 열리고 입이 열렸다. 선배님은 상한 마음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셨다. 모태신앙인 선배님은 그 당시도 주님의 딸로서 장애 우와 힘든 사람들을 보듬고 계셨다.
나는 일 년 남짓 남편 탈상을 마치고 80년도 봄, 철없는 어린 딸들과 함께 이삿짐을 가득 실고 서울 변두리 이곳에 말뚝을 박았다. 어차피 꺾어진 팔자 딸아이들만이라도 잘 키워보자 내심 작정을 했고 그로부터 나는 일하는 엄마가 되었다.
가끔 보내 주시는 선배님 편지는 늘 길었다. 머리글에는 십자가가 그려있고 <주님의 평화>라는 메시지 아래 몸과 마음이 함께 평화로운지 꼬마들도 충실한지 궁금할 때마다 기도했습니다.라는 안부와 씩씩하게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응원의 글을 보내주셨다. 나는 그 편지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자리 잡아갈 무렵 두 분을 우리 집에 초대했다. 우리는 그간 못다 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고 이튿날, 인근에 있는 안양유원지, 숲 속의 빈터라는 카페에서 세 사람은 마주 앉았다. 선배님은 수필로 등단 준비를 하고 계셨고, 아우는 교육장, 나는 사업, 서로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축배의 잔을 높이 들었다.
시간이 가면서 내가 하는 일과 아이들은 그런대로 순항했다. 그러나 사춘기라는 그 폭풍에서 감당이 안 될 때 나는 선배님을 찾았다. 기쁜 일이 있을 때도, 삶이 힘들 때도 박교장 아우와 달려갔다. 그때마다 우리 손을 잡아 토닥여 주셨고 명쾌한 답도 주셨다.
막내가 대학 입학을 했을 무렵 원고지 다섯 권과 볼펜 두 타스가 선물로 왔다.
“혜경 엄마, 이제 시작하세요. 가슴속 이야기를”
라는 메모와 함께 어디에 누구를 찾아가라는 당부의 말씀도 적혀 있었다. 나는 말씀대로 일주일에 한 번 하던 일을 잠시 접고 수필 공부를 시작했다. 그 당시 선배님은 주목받는 작가가 되셨고, 많은 사람들이 선배님의 따듯한 글을 좋아했다. 그리고 수필계에서 받는 상은 다 휩쓸어서 일일이 나열할 수가 없다.
선배님의 삶은 검소하고 알뜰하셨다. 농사를 지어 가을이면 이것저것 보내주셨는데 잘 생기고 튼실한 것만 보내 주셨다. 언젠가 댁에 가보니 손가락 굵기 고구마를 쪄서 식탁 위에 놓인 것을 나는 보았다. 쪼그만 마늘 한쪽. 파뿌리 하나 버리지 않으셨다. 그릇도 누렇게 변한 플라스틱을 그냥 쓰셨다.
“나는 버리는 걸 못해요” 웃으시며 하신 말씀이다
그분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지 어언 40년, 나로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 선배님의 사랑을 먹고 아우님은 교육장, 나는 졸필이지만 수필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늘 감사하며 거룩하게 사신 선배님의 삶, 부족한 필력이지만 글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선배님은 하나님 말씀을 몸소 행하신 작은 예수님이시다.
2020년 올해 '깊은 골짝 옹달샘'에 연재했던 글이 '바오르의 딸' 출판사에서 채택이 되어 <미루지 않는 사랑> 이 출간되었다. 주님께서도 인정해 주신 글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특별한 딸에게 복을 흔들어 주셨다.
'평화의 싹이 돋는 사랑의 숲으로 오십시오!
성경의 깊은 골짜기에서 내는 소리와 울림을 듣고 , 주님의 말씀을 눈으로 읽지 않고 마음으로 읽어 내는 이 분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 한자리에 평화의 싹이 돋는 사랑의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 도종환 시인의 추천 글이다 -
책을 받아 들고 " 주님,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늘 아버지께 감사드렸다고 눈시울을 붉히셨다.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요즘 그런대로 강건하셔서 참 고맙고 감사하다.
사십 년의 긴 시간 "소중하고 귀한 인연을 주신 주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이제 우리 셋은 다 주님 딸이 되었다.
내가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쯤이다 . 그 유명한 앵커 오프라 윈프리, 그녀가 쓴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이란 책을 읽고 나서다. 사생아로 태어나 성적학대를 받았던 소녀시절, 임신 , 마약 으로 찌들었던 그녀가 하나님을 만나 새 사람이 되어 오늘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까지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가 내 마을을 잡고 있었다. 특별하게 내 눈에 들어 오는 대목은 날마다 쓴 감사 일기었다 . 시원하게 부는 바람에도 감사, 수다를 떤 일에도 감사,
햇볕을 받으며 벤치에 앉아 차가운 멜론을 먹는 것도 감사, 하루를 보내며 늘 감사할 일을 찾았고
그러면 어김없이 감사할 일이 나타났다고 했다 .
나는 하루를 마감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맙고 감사한 일을 떠 올려 보았다.
그런데 생각외로 많았다 . 면역체계가 무너져 고생하는 나를 염려하는 딸애들과 가족들,
내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이 진정으로 다가 올때는 고맙기 그지없다 . 나를 위해 중보기도를 해주시는 지역장님, 그리고 구역장님,
음식 솜씨가 좋아 콩죽 . 동치미, 포도즙까지 만들어 주시는 분들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파트 일층에 살고 있는데 집을 비운 사이 경비 아제씨가 택배며 우편믈을
잘 두었다 전해 준다. 어쩌다 무거운 듯한 물건을 들고 오면 내 손에서 받아
현관 앞에 놓아 준다. 참 감사하다.
평범한 일상속에는 소소한 감사가 숨어 있었다. 가끔 일기장을 펼쳐보면 모두가 감사로 도배가 되어 있다 . 주님을 영접한지 칠년, 요즘은 뒤돌아 보면 모두가 주님 은혜임을 느낀다 .
나도 오프라를 닮아가는 지 , 아침이면 새날 주셔서 감사,
봄이 와 꽃을 볼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 . 시원한 바람도 감사, 잘 먹게 입맛을 주셔서 또 감사 , 모두가 감사로 다가온다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 시편 50장 -23절
십일 월 초순, 편백나무 숲을지나 동산에 오른다. 시간은 정오 , 청량한 공기가 나를 감싼다 ㆍ
이곳은 주님계시는 하동벧엘동산이다 . 여섯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이곳을 찿았다. 두 팔을 벌려 가슴가득, 공기도. 바람도. 햇볕도 안아본다.
떡갈나무 단풍이 곱다. 구절초 , 쑥부쟁이, 청초하게 피어 동산에 오르는 길손을 맞아주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 아래 산밤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활엽수가 눈에 익고 이름모를 나무들이 어우러져 숲을 이룬다 .
아~ 이 상쾌함, 주님감사합니다.
나는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ㆍ
동산 정상에는 금잔디가 깔려있고 긴 의자 네개가 등산객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이곳에 오면 더 없는 평안함을 느낀다 .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주신 소중한 말씀 책, 요즘 그 말씀을 조석으로 배우며 주시는 은혜로 내 가슴이 벅차다.
온 우주를 창조하셨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님, 당신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 병든자 ㆍ슬픔속에 있는자. 환란속에 있는자 .연약한 자. 다 안아 위로해 주시고 치료해 주시는 주님, 그 큰 사랑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형언키 어려운 감동의 물결이 나를 충만케했다 .
이어폰으로 들리는 찬송이 은혜가 되어 내 마음은 둥실 둥실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고 왈츠 스텝을 밟고 있었다. 쿵작작, 쿵작작., 눈을 감고 돌고 돌았다 ㆍ 순간, 키가 크신 주님이 내앞에 계셨다. 그리고 나와 함께 춤을 추어 주셨다. 오 ~ 주님, 순간, 찰나의 환상이었다 .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을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들리니 주 음성분명하다 .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을 알사람이 없도다.
세상 죄 짊어지고 나무에 피 흘렸던 그때에 사랑이 미움을 이기고 평화는 전쟁을 이겼네 마지막 숨을 거두며 그가 남긴 한마디ㆍ 인생은 사랑 ~영원한 사랑 ~
어느 크리스천이 예수님을 찬양한 노래입니다 ㆍ 우리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ㆍ 손 발 못 박히시고 옆구리 창 찔려 피 흘리시며 숨져가신 33년 생애. 그 짧은 세월을 오직 사랑으로 사신 예수님 ㆍ 그 분을 묵상하다 보면 감사의 눈물이 흐릅니다 ㆍ
인생은 사랑이란 것을 깨닫기까지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ㆍ
좋아서 결혼한 그가 어느날 새벽, 나와 아이들만 남기고 떠났을 때 원망할 시간도 없이 나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ㆍ
새벽별을 보며 집을 나섰던 내 젊은 날 , 바쁘다는 핑계로 안아주지 못했던 딸아이들 , 병날까 배고플까 , 그것만 신경 썼지 정작 마음 밭을 살펴주지 못한 이 못난 어미, 세월이 저만큼 간 다음에야 아쉬운 마음 절절합니다.
시가에서 내가 받아야 할 몫을 주지 않아 미워했던 사람들 , 경제가 힘들어 손을 내밀었을 때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던 형제들, 그 야속하고 서러웠던 시간들을 비로소 주님 앞에 다 내어드리고 마음 평안을 얻습니다 ㆍ 어미 생각을 따르지 않는 다고 화를 냈고, 대접받지 못해 억울해했고 , 그렇게 부질없이 보낸 시간들이 너무도 아깝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지어 놓으시고 사랑하며 살라고 주신 생명 ,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부족한 그 귀한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ㆍ
인간 수명 강건하면 팔십 , 구십 , 값없이 주시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기쁘게 살 것을 돌아보면 후회뿐입니다.
몇 해 전, 또 한 번의 엄청난 회오리바람이 내 삶을 휩쓸고 삶을 포기하려 했던 그 순간, 사망의 골짜기에서 만난 하나님 아버지, 그 아버지는 상처와 슬픔으로 얼룩진 내 인생을 따뜻하게 품어 주셨습니다 ㆍ 사랑하는 내 딸아 , 하셨을 때 저는 주님 앞에 엎드러져 펑펑 울었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아버지 , 슬픔 속에 있는 자 눈물을 닦아주시고 고통 속에 헤매는 자 안아 위로해 주시고 병든 자는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ㆍ내가 지었은 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하신 아버지 , 그 은혜를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ㆍ 조건 없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 속에는 오직 평안과 기쁨만 있는 것을...
사랑하는 자들아 서로 사랑하라 구구절절 사랑하며 살라는 말씀 , 이제 내게 남은 시간들을 사랑으로 채워보리라 , 다짐해 봅니다.
금천 문학이 탄생한 지 16년이다. 첫발을 떼었던 아기가 열여섯 살, 이제 빛나는 청춘이 되었다. 열여섯 해전, 금천구 관내에 사는 시인, 소설가, 수필가, 글쟁이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이 모임을 주선했던 초대 회장님은 정성으로 글 밭을 가꾸셨다. 그 사랑이 오늘을 있게 했고, 단단하게 커가는 금천 문학을 남기고 안타깝게도 오 년 전 지병으로 타계하셨다. 그분은 무엇보다도 구민과 함께하는 문학지이길 바라셨다. 한 줄 시를 읽으며 삭막한 세상을 잠시라도 잊고 새 마음을 품기 바라셨고, 수필 한 편을 읽으며 가슴에 청량한 바람이 불기를 바라셨다.
오늘의 <금천 문학> 은 일명 ‘한국 문인협회 금천지부’다. 초대 회장님의 뜻을 받들어 해마다 회원들의 신작으로 발간되며, 올해에는 15집을 낸다. 봄이면 시낭송회, 가을은 문학기행, 매달 세 번째 금요일은 모임을 갖는다. 그리하여 문단의 소식과 신간 소식 등, 정담을 나눈다.
나를 포함해서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문우들을 보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시를 노래하는 사람, 본인의 성찰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글, 수필을 쓰는 사람, 그림과 시를 문인화로 표현하는 화가 시인, 그리고 소설, 저마다의 사명감을 가지고 각 분야에서 문학박사로, 평론가로, 화가 시인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독자란 반드시 눈앞에 서서 손뼉을 치는 사람만이 아니다. 몇 권 안 되는 책꽂이에서 종종 나를 뽑아 거듭 읽어주는 사람, 중년의 가장 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존재를 믿기에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이다.
금천구민이 된 지 수십 년이다. 아이들은 결혼과 함께 내 곁을 떠났고 이제 이곳은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농사를 지으시던 내 아버지는 늘 책을 읽으셨다. 그 영향으로 나는 책을 가까이 했고, 십여 년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줄 곳 책을 읽었다. 그리하여 어느 해 봄, 수필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충혈된 눈을 비비며 밤새워 쓴 글이 크게 칭찬을 받았을 때, 전신으로 번지는 기쁨을 누가 모른다 하겠는가. 내 글을 감동으로 읽었다는 전화를 어느 독자로부터 받았을 때 그것은 환희와 보람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결혼했지만, 막내딸 유학 갈 때 이야기다. 미국 비자가 지금처럼 쉽지 않았다.
“어머니가 글을 쓰십니다.”
이 한마디에 서류도 보지 않고 통과되었다고 영사관에서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했던 막내딸, 그때가 엊그제 같다.
구민과 함께하는 文學誌, 구민들의 메마른 감성을 다시 깨워주는 문학지를 꿈꾼다. 그리고 외국처럼 글 쓰는 사람들을 대접하는 나라, 그런 세상이 오기를 기대한다.
찰흙으로 만든 작품인데 연잎 위에 청개구리가 얌전히 앉아있었다. 어찌나 정교한지, 우리 부부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거기다 물감으로 색칠까지 해서 더욱 실감이 났다.
“우리 혜경이 솜씨가 비상하구나.”
애들 아빠가 한 말이다. 그리고 그는 무슨 운명인지 그 이듬해 겨울, 심장마비로 가족을 두고 떠났다.
큰딸은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 만들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학교에서 열리는 미술대회, 기관이나 道에서 열리는 각종 대회에서 어김없이 상장을 들고 왔다. 결국 미대를 선택했고 조각을 전공했다.
‘mbc구상 조각전’대학교에서 열리는 미술전, 서울 곳곳에서 열리는 조각전에서 많은 상패를 받았다. 배경도 없고 경제도 어렵고 미안하게도 대학만 졸업시켰을 뿐, 어미로서 해준 것이 별로 없다. 홀로 그 길을 걸어 간지 삼십 여년, 이제는 곳곳에 큰애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아빠가 잠들어있는 고향땅 음성, 이곳에 2m 가 넘는 큰애 작품 품바, 품순이가 설치되었다. 지난 4월에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장소는 음성군 ‘품바재생예술체험촌’이다.
오랜만에 나는 고향 땅을 밟았다. 테마로 조성된 이곳은 볼거리가 많았다. 원남저수지를 품고 있는 테마공원은 경치가 빼어났다. 우선 딸 작품 앞에 서고 보니 그 옛날 남편이 한 말이 생각나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작품이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 동그란 얼굴에 이빨을 드러내고 활짝 웃는 품바, 품순이 모습이 다정하고 정겹다.
“한 세상을 살며 늘 저렇게 웃을 수 있음 참 좋겠네.”
함께한 고종 동생의 말이다. 많은 세월이 가버렸지만, 이곳에 잠들어 있는 그도 분명 보고 있으리라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음성 품바축제의 근간은 거지성자 최귀동 할아버지의 삶이란다.
오늘날 오웅진 신부로 하여금‘꽃동네’ 설립의 단초(端初)를 마련한 그는 자신도 장애를 가진 몸으로 금왕읍 무극리 일대 동네를 돌며 밥을 얻어다가 구걸조차 하지 못하는 걸인들을 먹여 살린 장본인이다. 이런 이유로 그의 삶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의 성자로 평가받고 있고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취지에 걸맞게 2000년 음성 예총에서는 새천년을 맞아 최귀동 할아버지의 숭고한 뜻을 본받아 이어가고자 품바축제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마다 오월이면 열리는 이곳 품바 행사는 한마당축제 분위기다. 때마침 행사 시작되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열심히 일하고 지친 심신과 끼를 걸판지게 풀어내는 한바탕 놀이마당, 엿치기, 비빔밥 나누기, 60 70 추억의 거리, 길놀이 퍼레이드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품바 타령은 풍자와 해학이 있어 보는 사람마다 신명과 웃음이 넘치는 공연이다. 수많은 관객이 객석을 메웠고 외국인도 보인다. 올해 문화체육부 관광부 유망 축제로 선정되었다고 하니 그것도 기쁜 일이다.
현대는 물질 만능으로 삶은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 빈곤에 허덕이고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 이러한 사회의 병폐는 바로 “사랑과 나눔으로 치유시켜야 한다.” 는 명제를 걸고 해학과 풍자로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체험하여 오랜 민족의 한을 사랑으로 승화시키고자 음성품바축제가 탄생하게 된 취지라 하는데, 내가 태어나 자라고 내 딸들이 태어난 고향 땅 음성, 매년 열리는 품바 축제에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나는 기뻤다. 찰흙으로 빚은 연잎과 개구리를 보고 우리 내외가 놀랐듯, 내 키를 훌쩍 넘는 품바, 품순이 작품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놀란다. 그리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 솜씨 주심에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이 봄을 맞아 걸음마를 막 떼고 처음으로 걷는 세상, 처음으로 느끼고 보는 세상의 모든 것들, 신비로워서일까? 연신 방글방글 웃으며 내 품에 안긴다.
우리 사랑이가 보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파란 하늘, 연초록 잎, 갖가지 예쁜 꽃들, 아마도 모든 것이 신기하고 신비할 것이다.
손녀딸 사랑이와 나는 칠십 년 이상 차이가 나는 띠동갑이다. 결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막내가 어느 날, 신랑감을 데리고 왔는데 체격도 듬직하고 인상이 낮설지 않았다. 서둘러 혼인을 하고 나니 주님은 우리 집에 사랑이를 선물로 주셨다. 얼마 만에 안아 보는 아기인지 감회가 새롭다.
삶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 젊은 날 우리 집을 휘돌아 치고 간 그 엄청나던 회오리바람이 또다시 나를 향해 거센 바람으로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세상과의 인연을 끝내도 좋았다. 그리고 새벽이 오는 것이 야속하고 또 야속했다. 그때 동생은 하나님 말씀이 담긴 성경책 한 권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주님을 영접한 지 사년, 세상을 왜 만드셨는지, 당신 형상대로 왜 사람을 지으셨는지, 말씀 공부를 하며 나는 비로소 그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며 거두어 가시는 분도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았고‘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아침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하신 말씀도 이해가 되었다.
꽃 중의 꽃은 사람 꽃이라 했던가, 옹알이하는 것, 천사처럼 웃는 얼굴, 오물오물 밥을 받아먹는 모습, 모두가 사랑스럽다. 요 며칠 사이 말문이 틔어 나를 할미라 부른다. 그리고 이 할미 볼에 뽀뽀도 해주는 사랑이, 나날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삶의 모든 시름이 단박에 사라지는 것 같다.
화사하고 찬란한 이 봄, 앞뜰 화단에 라일락이 지고 나니 작약이 핀다.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 말씀대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새롭게 주신 은혜 속에서 우리 사랑이와 맞는 이 봄이 마냥 기쁘고 감사하다. 그리고 피천득 선생님의 ‘오월’ 시구를 생각하며 나는 입속으로 읊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