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책[Poem]'에 해당되는 글 1005건

  1. 2017.11.14 그늘을 가진 사람 --- 배한봉 by 물오리
  2. 2017.11.14 서울 오는 길 ---이재무 by 물오리
  3. 2017.11.13 가을에 당신에게---정호승 by 물오리
  4. 2017.11.10 11월의 노래 --- 김 용택 by 물오리
  5. 2017.11.10 11월이 가는 갈밭 길에서 --- 김동규 by 물오리
  6. 2017.11.09 후회--- 루이스 보르헤스 by 물오리
  7. 2017.11.09 햇살에게---정호승 by 물오리
  8. 2017.11.08 11월의 편지---목필균 by 물오리
  9. 2017.11.07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정희성 by 물오리
  10. 2017.11.07 내가 사랑하는 계절 ---나태주 by 물오리

 


 



양파는
겨울 한파에 매운맛이 든다고 한다
고통의 위력은
쓸개 빠진 삶을 철들게 하고
세상 보는 눈을 뜨게 한다
훌쩍 봄을 건너뛴 소만 한나절
양파를 뽑는 그의 손길에
툭툭, 삶도 뽑혀 수북히 쌓인다
둥글고, 붉은 빛깔의
매운 시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수확한 생각들이 둥글게, 둥굴게 굴러가는
묵시록의 양파밭.
많이 헤맸던 일생을 심어도
이젠 시퍼렇게 잘 자라겠다
외로움도 매운맛이 박혀야 알뿌리가 생기고
삶도 그 외로움 품을 줄 안다
마침내 그는
그늘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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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막차가 떠났다 뽀얀 먼지가 일고
나이든 누이와 막내
품앗이 마치고 집으로 가던
아낙들 서넛
저녁바람에 고즈넉이 흔들리는
미루나무와 나란히 서서
오래도록 손 흔들어 주었다
멀리, 사립에 쪼그리고 앉아
어머니 누워 계신 먼 산 보며
아버지 청자담배 피워 무셨고
남녘서 돌아온 새 한 마리
가난에 매맞아 죽은
둘째 동생 재식이와의 추억이  
솔잎으로 돋아나는
서편 숲으로 가뭇없이 사라졌다
아리랑 부르며 울며 넘던 고갯길을
숨가쁘게 차가 달렸고
인가의 불빛은 꽃잎처럼 피어나는데
철들어 품은 기다림 그리움은
멀고 아득하기만 해서
마음의 심지에 타오르는 희망의 등잔불
바람 앞에 언제나 서럽고 위태로웠다
마을 사람들 마음의 손이
꽁꽁 동여맨 간절한 기구의 보따리
허리에 차고
평생을 가도 가  닿지 못할
그러나 기어이 가야만 하는
멀고 험한 길가며
바닥을 잊은 가슴샘에서
솟는 눈물은 또 얼마나 더 퍼 올려야 하는 것인가
멀미가 일어
달게 먹은 점심의 국수가락 토해내면서
서울 오는 길
고향은 끝내 깍지낀 내 몸
풀지 않았다

Posted by 물오리

 

                           

 

 

 

낙엽하나 떨어지면

온 세상에 가을이 오듯

목숨 하나 떨구고

온 세상에 사랑이 오게 하는

그를 따라 사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 나라를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올바르게 사는 일을 가르치기 위하여

올바르게 죽는 일을 가르치는

그를 따라 사는 자는 행복하여라

 

밤마다 둥근잎 느티나무 아래 앉아

별들의 종고리를 들으며

눈물의 강물이 되도록 기도하는

사랑의 계절을 이 땅에 오게 하는

그를 따라 사는 일은 아름다워라

 

눈부시게 밝은 햇살 아래

언제나 눈물 너머로 보이는 이여

끝끝내 인간의 사막을 걸어간

걸어서 하늘까지 다다른 이여

그를 따라 사는 자의 아름다움이여

Posted by 물오리

 



해 넘어가면
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

잎을 떨구며
피를 말리며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이 그리워
마을 앞에 나와

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
산그늘도 가버린

강물을 건넙니다.


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헤치고

강을 건너
강가에 앉아
헌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 납니다.

못 견디겠어요.
아무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로움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스칩니다.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내 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르지만

나는 물 가버린

물소리처럼 허망하게
빈 산에 남아
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

해 지고
가을은 가고
당신도 가지만
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

남지 않고 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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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처음에는 문득, 바람인 줄 알았다
娼婦의 賣笑같은 까칠한 소리로
살과 살을 비벼대다 드러눕던 몸짓,

바람 가는 길목을 지키고 섰다가
혼절하는 몸소리로 제 허리를 꺾어
속 대를 쥐어 틀어 물기를 말리고

타오르는 들불의 꿈을 꾸며 잠이 든
늙은 갈대의 가쁜 숨소리

11월이 가는 갈밭 길에는,
빠른 걸음으로 노을이 오고

석양마다 숨이 멎던,

하루를 또 보듬으며

목 젖까지 속울음

차오르던 소리를
처음에는 문득,

바람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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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나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죄를 저질렀다. 나는

행복하지 못했다. 망각의 빙하가

내 몸뚱이를 끌고 가 무참하게 내동댕이쳤으면.

부모님은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삶의

유희를 위해, 땅과, 물과, 공기와, 불을 위해

나를 낳으셨다.

나는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나는 행복하지 못했다.

그분들의 푸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하찮은 것들을 교직하는 예술에

매달려 온통 정신을 쏟았다.

그분들은 내게 용기를 물려주셨지만 나는 용감하지 못했다.

불행한 사람의 그림자는 나를

떠나지 않고 언제나 내 곁에 머물러 있다.

Posted by 물오리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물오리




지구가 뜨거워졌는지
내가 뜨거워졌는지
아직 단풍이 곱다

갈색 플라타너스 너른 잎새에
네 모습이 서있고

11월이 되고서도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
꼬깃꼬깃 접힌 채
쓸려간다

모니터에 네 전령처럼
개미 한 마리
속없이 배회하는 밤이 깊다

네가 그립다고
말하기보다 이렇게 밤을 밝힌다
11월 그 어느 날에

Posted by 물오리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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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고정희  (0) 2017.11.01
Posted by 물오리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동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Posted by 물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