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문 들어설 때 마음의 매무새 가다듬는 사람, 동트는 하늘 보며 잠잠히 인사하는 사람, 축구장 매표소 앞에서 온화하게 여러 시간 줄서는 사람, 단순한 호의에 감격하고 스쳐가는 희망에 가슴 설레며 행운은 의례히 자기 몫이 아닌 줄 여기는 사람, 울적한 신문기사엔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며 안경의 어룽을 닦는 사람, 한밤에 잠 깨면 심해 같은 어둠을 지켜보며 불우한 이웃들을 골똘히 근심하는 사람
저의 부모님은 지금 천국에 계십니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저는 돈 없는 신학생이요 바쁜 목회자란 이유로 부모님이 베푸신 사랑과 은혜에 제대로 감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감사드릴 부모님이 안 계십니다.
감사는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더 절감하게 됩니다. 예수님에게 치유받은 나병 환자 중 한 명은 즉시 예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다른 아홉 명은 어디 갔느냐고 예수님은 찾으셨습니다. 그 한 명은 칭찬도 구원도 받았습니다.
타이밍에 맞는 감사는 행복의 길이요 축복의 도구입니다. 무슨 급한 행사를 해야 하니 교회당을 빌려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너무 딱한 상황이라 장소는 물론 다른 것 까지도 힘껏 도와 드렸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 구두로도 전화로도 이메일로도 감사가 없었습니다.
그분이 잊었던지 시간이 너무 지나 감사 표현하기가 어색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또 무슨 행사가 있다며 교회단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안된다" 고 했습니다. 밴댕이 속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감사가 없는 사람에게 재차 친절을 베풀고 싶지 않았습니다. 감사는 늦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리를 마음을 다해 들어주는 분을 곁에 두고 계시는 가요. 우리 소리를 진정성 있게 들어주는 대상을 만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들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그 말씀애 순종하는 게 신앙의 마땅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또 다른 면을 강조합니다. 출애굽 사건만 봐도 그렇습니다. 출애굽의 출발 지점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이처럼 '들으시는 하나님' 에 대한 기록은 성경 곳곳에 넘쳐 납니다. 예수님 또한 그런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귀를 크게 열고 온 마음을 다해 들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리를 허투루 듣지 않으시고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천둥 보다 더 크게 들으십니다. 우리 내면의 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반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