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순자'에 해당되는 글 48건

  1. 2011.03.01 개나리꽃이 필 무렵 by 물오리
  2. 2011.03.01 나의 文學世界--- 가슴속 그 울림 by 물오리
  3. 2011.03.01 그리운 금강산 by 물오리
  4. 2011.02.27 손자 유치원 졸업 by 물오리
  5. 2011.02.09 네덜란드 여행 - 풍차마을 by 물오리
  6. 2011.02.06 가끔은 취해서 살고 싶다. 愛 술로---사계 발표- by 물오리
  7. 2011.02.06 가보고 싶은 나라 핀란드 (FINLAND) by 물오리
  8. 2011.02.06 유쾌한 사람들 ---금천소식지 발표- by 물오리
  9. 2011.02.06 아이들과 동화책 읽기 by 물오리
  10. 2011.02.05 일본규슈여행 by 물오리
 


                                                                 

  사월 중순, 봄비가 내린다.

  아파트 주변에 있는 개나리가 꽃 피울 채비를 한다. 이맘때가 되면 마음 저편에 접혀있던 아픈 기억이 나를 흔들어 댄다. 1980년 봄, 그날도 가랑비가 내렸다. 큰 트럭에 이삿짐을 가득 싣고 종알대는 꼬맹이들과 충청도 고향에서 서울로 출발했다. 시원하게 뚫린 중부 고속도로 갓 길엔 노란 개나리가 봄비를 머금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결혼생활 9년. 딸아이 셋과 나를 두고 그는 급하게도 먼 길을 떠났다. 부부로 인연을 맺어 자식을 낳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아니면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며 변함없이 살라는 말은 혼례서약에 빠지지 않는 약속의 말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두 사람의 인고(忍苦)를 감당해야 하며,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임을, 우리는 때로 잊고 산다.

  슬픔은 남아 있는 자의 몫이라고 했던가. 그의 빈자리는 어린것들을 하루아침에 아빠 없는 아이들로 만들어 버렸다.   

“울고 싶을 땐 실컷 울어라. 그러나 조만간 울음을 그치고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아라. 좌, 우, 위아래를, 경거망동해선 안 되며 너를 바라보는 눈망울을 생각해라. 침착하게. 침착하게. 침착하게......”침착 하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하신, 내 은사님은 소식을 듣고 긴 편지를 보내주셨다. 비로소 나는 마냥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란 언제 어떻게 올지 그 누구도 모르는 일, 조금 일찍 떠났을 뿐이라고 납득은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년 탈상을 하고, 시어머님의 만류도 뿌리치고 나는 그의 흔적을 뒤로했다.

   이곳 시흥은 서울이라고는 했으나 변두리였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서울과 안양을 오가는 차들의 소음만이 간간이 들렸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조각배, 내 마음은 그랬다. 그로부터 나는 일하는 엄마가 되었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마음도 몸도 바빴다. 그러나 가슴엔 소망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잘 자라 주는 것과, 내가 시작한 일이 아이들과 함께 자라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 무렵, 우연히 박완서 씨의 단편,‘엄마의 말뚝’을 읽게 되었다. 자전적인 소설로 그분의 어머님은 자녀의 장래를 위해 대처(大處)로 나왔다. 삯바느질로 장만한 산꼭대기 허름한 집, 그 집은 자식을 잘 길러 보겠다는 엄마의 굳은 말뚝이 깊게 박혀 있었다. 시대는 달랐으나 뭔가 나에게 한 수 던져주는 것 같았다.

  우선 밝게 컸으면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어린이날은 하던 일을 놓고 아이들과 함께했다. 당시 세종 문화회관 대강당은 오월이면 어린이를 위한 뮤지컬 공연을 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관람하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파랑새, 피터 팬, 이상한 나라 앨리스, 그 일은 여러 해 계속되었다. 지금은 작고한 분이지만 연극배우 추송웅 씨가 기저귀를 찬 아기 역할을 해서 관객의 박수를 받았고, 가수 윤복희 씨는 마녀로 분장해 열연을 했다. 돌아오는 길엔 조잘조잘 말들이 많았다.

  학기 초에는 잘 보살펴 달라는 편지를 담임선생님께 썼으며, 방학이 되면 엄마가 하는 일을 함께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를 태운 조각배는 그런대로 순항을 했다. 

 

  사람들은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한다고 하지만. 어떤 커다란 섭리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며, 어려울 때가 있으면 그 후에 기쁨을 꼭 마련해 놓으신다는 위로의 말을 고향 선배님은 늘 해주셨다. 덧붙여 그대는 잘해낼 수 있을 거라며 힘찬 응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 응원에 힘을 얻었다. 어려움이 생겼을 때도 씩씩하게 털고 일어섰고, 나를 보고 자라는 아이들도 힘이 생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내 주위에는 따듯한 분들이 있었다. 오랜 세월, 힘들 때 기댈 수 있었다.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뿐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열심히 일하고 당당하게 살아라. 어두운 밤이 지나면 새로운 태양이 솟아오른다.”성년이 된 지금도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말이다. 

                                                              

노란 개나리가 그 동안 몇 번이나 피고 졌는지, 둘째가 결혼과 함께 보금자리를 찾아갔고, 큰아이는 조각을, 막내는 무역 일을 하고 있다. 영원한 타향이 될 거로 생각했던 이곳이 이제는 정이 들어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내 삶을 격려해 주었던 사람들, 그 마음을 나는 잊지 못한다. 봄볕이 화사하다. 아파트 주변 개나리가 피기 시작한다. 이제는 정녕 너를 슬픈 마음으로 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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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문학은 내 인생에 한줄기 청량한 바람이다.

   그것은 흐렸던 나의 젊은 날을 다시 맑음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삶이란 때로 평범한 일상에서 느닷없이 커다란 전환점을 긋고 간다.  삼십대 중반, 한쪽 날개를 잃은 그 혹독한 시기를 나는 책과 함께 보냈다. 이야기책을 좋아 하셨던 아버지 덕에 쉽게 책을 접하긴 했지만,  급작스럽게 바뀐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막막함을 견디기 위한 방편이었다.

  

   자주 서점을 찾았다. 뭔가 실 날 같은 삶의 끈이라도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만난 책이 당시 철학 교수이셨던 김태길 교수님의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라는 책이었다.  평범한 일상과 인간의 삶, 그 광대한 분야를 심도(心度) 있게 다루고 있었다. ‘삶이란 어떤 환경에서도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일이 있다’는 글귀를 읽으며, 희미하게나마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이기 시작 했다. 그 책은 나의 소중한 보물로 책장에 꽂혀있다.

  나는 책이라는 창을 통해 많은 것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동안 책을 가까이했다는 것, 그것은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은 단 한 가지의 덕목(德目)이다.

   이 십 여년의 세월을 생업에 종사하며 틈틈이 책을 읽었다. 제목이 좋아서 아니면 서문에 끌려서, 혹은 일간지에 소개된 신간을 골랐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엿보기도 하고 그들의 생각을 읽어갔다. 책장을 넘기며 웃고 울고 나도 모르게 내 가슴은 감동으로 파도를 쳤다. 그리고 밑줄을 그었다. 점차 글을 쓴 작가마다 독특한 향기가 있음도 알게 되었고 저마다 색채가 느껴졌다. 아름답고 오묘한 언어에 매료되어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리하여 수필가란 이름을 얻은 지 십년이다

 

  어느 해인가 과천 미술관에 갔을 때였다.

  본관 입구 잔디밭에 큰 사람이 서 있었다.  7척 장신의 사람은 외국작가가 만든 조형물이었다. 그 사람은 미술관을 뒤로하고 먼 산을 바라보며 ‘어-어-어’ 하고 리듬이 섞인 소리를 간헐적으로 내고 있었다.  제목을 보니 역시 ‘노래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노래라기보다는 마치 세상을 향해 하고픈 이야기가 많아 계속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인간은 끊임없이 노래하는 사람처럼 세상을 향해 하고픈 말이 많은 것인가.  그때 내 가슴속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림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갔다. 딸아이들을 보며 짠한 마음을 썼고 그 아이들을 보며 내 소망을 써 내려갔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름대로 사유(思惟)의 뜰을 거닐며 침묵했다.  한을 풀 듯 가슴속에 고인 물을 퍼냈다.  나의 글이 논픽션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임을 변명하지 않는다.  고인 물을 퍼내면 맑은 물이 고이듯, 내 마음속에 있던 앙금은 퍼 낸 만큼 맑은 물로 바뀌고 있었다.

   사회성이 부족해 편협했던 성격도 조금씩 너그러워졌다. 계절 따라 피는 꽃들, 창밖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새들, 비로소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인근에 있는 산행으로 하루를 연다. 낙엽을 밟으며 오르는 산은 늘 새롭다.  다람쥐 한 쌍이 겨울 준비를 하는지 부산하다. 나도 계절로 치면 가을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오르는 것처럼 어렵다.  허나 혼신을 다해 쓴 글이 활자화되면 그 희열이 기쁨으로 이어진다. 

   글감은 일상에서 특별히 경험하게 되는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데, 인간의 정이 느껴지는 이웃 이야기, 혹은 따듯한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글이 쓰고 싶어진다.  어떤 주제가 정해지면 며칠이고 생각에 잠긴다.  너럭바위에 앉아 혹은 잣나무 사이를 거닐며 글감을 정리한다.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어떻게 맺을 것인가, 그런대로 초안이 잡히면 글쓰기를 시작한다. 

  유머가 있고 위트가 있는 글, 그리고 해학과 품격이 있는 글을 쓰고 싶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이다.  다만 독자가 내 글을 읽으며 한번쯤 빙그레 웃어만 준대도 나로서는 감사하기 그지없다.

  이제는 청명하고 맑은 날의 글을 쓰고 싶다. 살아있는 것이 무엇이고 기쁨이 무엇인지, 그것들과 대화하고 싶다. 우리네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흥이 울림으로 다가오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Posted by 물오리
 

    


    ‘누구의 주제런가 높고 고운 산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조수미의 고운 목소리를 따라 흥얼거렸던 가곡금강산이다.

    그 아름다운 산을 정해(丁亥)년 오월에 친구들과 가는 길이다.  38선이라는 선을 긋고 국토가 반으로 토막난지 55여 년, 봉래산, 풍악산, 개골산, 그리고 금강산, 산수가 빼어나 불리는 이름이 계절마다 다른 명산을 드디어 찾아가는 것이다. 가깝다는 이유로, 혹여 녹슨 철마가 다시 달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미루었던 곳이다.    

   화진포아산 휴게소에서 등록을 마치고 오후 3시경 버스는 북쪽을 향했다.  철새들만 넘나든다는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지나 40여 명을 태운 차는 서서히 움직인다.  둥글게 걸쳐있는 철조망이 보이고,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민둥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윽고 북측 검문이다. 사람보다는 빨간 줄이 선명하게 박혀있는 제복이 먼저 눈에 띈다. 순간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상잔의 6 . 25, 지금은 아니 계시지만, 인민군이라면 치를 떨듯 두려워하셨던 내 어머니, 비행기 소리만 들어도 공포로 고조되었던 순간들, 그 유년의 기억이 아슴아슴 살아났다.  막상 그들을 마주하고 보니,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기분이 착잡했다.  검열하는 동안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 있고, 촬영 금지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었을 때, 역시 이곳은 자유스럽지 못한 곳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드문드문 엎드려있는 집들은 마치 1960년대를 연상케 한다.  남강다리를 건너 숙소에 들자 해는 하루를 닫으려한다.  창을 열어 밖을 보니 파란 바다와 해금강 호텔이 멀리 보인다.  해변은 고즈넉하다. 산과 바다, 그리고 모래밭, 아무리 둘러보아도 전혀 낯설지가 않은데, 이곳이 그 오랜 세월 내왕이 금지되었던 북녘 땅이던가, 참으로 믿기지 않았다. 적십자주관으로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도 부모와 형제를 이곳에 두고 그리움으로 애타 하는 실향민이 많다. 분단이라는 현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고성군 온정리-  아침공기는 맑고 쾌청하다. 짙어가는 녹음은 향기를 내뿜는다. 우리는 조반을 서둘러 먹고 비로봉 아래 있는 구룡폭포로 향했다.  

  “처음 버스에서 내려서 내 손으로 흙을 만져 보았어요.”

  “아, 그러셨군요.”

  일행 중에 팔순을 넘기셨다는 어른은 이곳이 고향이라 했다. 그분 얼굴에선 감회가 서렸다. 그 마음 밭이야 오죽하겠는가, 이 땅을 밟고도 그리던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다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수림대,  삼록수, 옥류담, 굽이굽이 비경을 감상하며 산을 오른 지 두 시간, 숨이 턱에 닿았다. 이윽고 구룡폭포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모두 환성을 질렀다.  계곡을 울리는 폭포소리와 웅장하게 쏟아지는 물줄기, 그 물은 바위에 떨어져 다시 튀어 오르는데, 어찌나 영롱한지 마치 옥 같은 구슬이 흩어지는 것 같았다.  높이 74m 아래 못까지는 120m, 이 거대한 폭포는 우리나라 삼대 폭포에 든다하였다.  동해의 구룡(九龍)이 유점사 53불과 싸우다 패하여 이곳에 숨었다는 전설이 있다.  깎아 세운 것 같은 석벽(石壁), 그 끝자락에는 일곱 빛깔 무지개가 걸려있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절승(絶勝) 앞에 나는 한동안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서너 해 전이지 싶다. 덕수궁미술관에서 북한산수 전시회가 있었다.  어느 화가였는지 이름은 잊었지만, 힘차게 쏟아지는 구룡폭포 앞에서 망연히 서있었던 생각이 난다. 그림을 보며 가슴속까지 시원했던 그 느낌, 기억이 생생하다. 바로 이 장대한 폭포를 앞에 두고 화가는 붓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서화가의 붓끝을 떨리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뿐인가, 금강산을 유람하며 신산(神山)의 자태에 감흥 하여 시를 읊은 이가 어디 한둘인가.  그 유명한 ‘흙’의 이광수도 (金剛山 遊記) 한시를 지었다.

    구룡이 숨은 뒤로 소식이 끊겼으니,

    천지 풍운(天地風雲)이 일 없는 지 오래로다.

    구룡연 물결이 움직이니 기다릴까 하노라.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은 변할 줄을 모른다.  선조들의 발길이 닿았을 것을 생각하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다. 구룡폭포의 절묘한 풍광명미(風光明媚)를 가슴에 담고 내려오는데, 목련관 앞에서 처녀아이가 말을 건넨다.

   “막걸리 한잔 맛 보시라요. 친구 분들 이래요?”

   함께 자란 동무들이라니까 반갑다며 생글 생글 웃는다. 열여덟 살쯤 되었을까, 얼굴은 잘 익은 사과 같았다.  우리는 조그만 탁상에 둘러앉았다. 두부안주에 한잔을 마셔보니 어릴 때 그 맛이라, 아버지 술 심부름하면서 한 모금씩 몰래 마셨던 농주 맛, 우리는 모처럼 추억 속을 거닐었다.  이곳은 분명 수십 년의 세월을 되돌려 놓고 있었다.  골마다 옥수가 흐르고 폐부 속까지 씻어줄 것 같은 맑은 공기, 공해 없는 하늘은 티 없이 고왔다. 양념이 적게 들어간 음식은 담백하여 본래의 맛을 느낄 수 있어 개운했다.

  구룡연 코스 곳곳을 설명 해주는 처녀안내원, 옥류관에서 냉면을 잘라주던 여성종업원,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에 아가씨들, 내가 만난 북쪽 여성들은 동글동글한 미인들이었다. 그것도 얼굴에 손을 대지 않은 천연 미인 말이다. 너도나도 성형이 난무 하는 시대에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삼일 째 되던 날, 만 가지 형상을 하고 있다는 만물상은 아쉽게도 안개에 묻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 다시 한 번 찾아오라고 남겨 놓은 거야. 가을에 오면 얼마나 아름답겠니.”

   아쉬워하는 나에게 친구는 말한다.  금강산 일 만 이 천봉, 이 기기묘묘한 산을 구경하려면 한 달이 걸린다 하였다.  삼일 동안 외금강 코스를 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큰 기쁨이다.  우리는 훗날을 기약했다.  그때는 기차를 타고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귀가하는 버스에 올랐다.  이 땅을 떠나며 못내 서운한 것은 민간인을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먼발치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꼬맹이와 그 아이 엄마로 보이는 젊은 아낙이 전부인데 초등학교 일학년쯤 되어 보였다.  초소마다 서 있는 청년들은 가무잡잡한 얼굴에 체격이 왜소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현실은 삶 자체가 궁핍해 보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과연 그 날은 언제일까. 

    “안녕히, 다시 오라요.” 확성기에서 여자인민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왔을 때, 내 가슴 한쪽은 짠하게 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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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 손녀랑 함께



딸네 가족





손자 유치원 졸업식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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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와 함께한 네덜란드 여행

자국민들의 친절에 감사했다.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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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의 술사랑 이야기는 미술로 풀어낸 술의 얼굴이다.’

    -세상을 취하게 하라, ‘愛술’로- 라는 활자 아래 예술 속에 술을 다룬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는 기사가 일간신문에 났다.

   술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술하고는 평생 인연이 없는 얌전한 친구 한 명을 불러냈다.  안국동 미술관. 입구에는 주제가 된 술 한 잔이 놓여 있고, 전시장에선 은은한 술 냄새가 풍긴다.  나는 천천히 그림을 둘러보다가 한 작품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제목이 ‘한 잔 하고 바라본 세상’이다.  눈동자 두 개가 동력 장치를 달아 뱅글뱅글 돌아간다. 제목에서 말하듯 취해서 바라보는 세상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한잔의 유혹’ ‘욕망의 해방구’ ‘중독의 상처’ ‘취중 파노라마’. 십여 명 작가들의 독특한 시각과 표현이 흥미롭다. 특히 ‘취무(醉舞)’는 한쪽 발을 들고 엉거주춤 춤을 추고 있어 웃음이 터졌다.  예술가들의 고뇌라고 할까, 삶의 애환이라고 할까, 묘한 감정이 되어 나는 전시장을 나왔다.  사람을 취(醉)하게 하는 ‘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새삼 의구심이 일었다.  

  

   조선 후기 화가 오원(吾園) 장승업(1843-1897)은 술이 있어야만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대표작인 ‘호취도’는 호암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독수리의 억센 발톱과 날카로운 부리, 매섭게 쏘아보는 눈빛은 금세 날아오를 듯 생기가 넘친다.

  팔년 전, 오원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취화선(醉畵仙)을 감동으로 본적이 있다. 천민으로 태어나 그의 삶은 술과 예술이었다. 무엇보다도 영감(靈感)을 북돋아주는 것은 오로지 술이었다. 호방한 필묵법과 정교한 묘사로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남겼다.  속박을 싫어해 구름 같은 인생을 살았으며 난국으로 가는 시대와 맞물려, 암울한 시기에 자기만의 색깔을 찾고자 수없이 고뇌한다. 

 

   끝 간 곳 없는 수평선- 백구(白鷗)는 날고 작은 봇짐하나 메고 정처 없이 떠나는 오원. ‘생사란 뜬구름과 같은 것,  앓는다, 죽는다, 장사(葬事)를 지낸다, 떠들 필요가 무어냐’  그가 남긴 말에서는 인생무상, 그의 인생관이 엿보인다.  고민하고 방황하고 광기(狂氣)의 삶을 살았으나, 그림에 취한 시선(詩仙)으로만 기억되는 것은, 살다간 발자취가 신비롭기 때문일까.

 

    삼사 년 전만 해도 나는 술이라면 딱 질색이었다. 더구나 취해서 눈동자가 허공에 걸린 사람을 보면, 그 자리를 피하기에 바빴다. 과음을 하고 그 술이 깨도록 주정하는 것을 보게 되면, 허물없이 지내다가도 두 번 다시 어울리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별로 말이 없던 사람이 술 한 잔을 하면 갑자기 다변(多辯)이 된다. 주벽이 심해 시비 끝에 싸움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징징 울기도 한다.  취한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술은 어른 앞에서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뭐 그럴 것까지 있을까 했지만, 술버릇이 고약한 사람을 보면 ‘쯧쯧’ 나도 모르게 혀를 차게 된다. 등산모임에서 저녁 회식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술잔이 내게로 온다.

   “자네도 이제 한 잔 해도 될 나이가 되었네.”

   술 마실 때가 되었다면 나도 나이가 많다는 뜻 일게다. 어찌되었거나 한 잔씩 받아 마신 것이 계기가 되어 이제는 조금씩은 하게 되었다. 헌데 나는 한 잔하면 웬일인지 기분이 좋아진다. 뿐인가 노래도 나온다.  껄끄러운 사람도 편안하게 보일 만큼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전화를 받다가 느닷없이 흥얼거려 실례를 범한 적도 있지만, 조금은 취해 우스갯소리도 하고 너스레도 좀 떨고, 그렇게 허튼말을 하는 사람이 좋아진다.  어쩌다 한잔 술에 흥얼거리면,

   “남 여사가 망가지는 것도 하루아침이네”

   나를 ‘새침데기’라고 불렀던 형님이 농 섞인 말을 한다.

 

  친정아버지는 약주를 즐겨 드셨고 흥이 많으셨다. 그 유전인자를 고스란히 받았는지, 내가 남자였다면 술 깨나 마시는 한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반평생을 내 딴에는 열심히 살았으니, 한 잔 한다고 누가 나를 탓하겠는가. 술상 앞에서 조금은 흩어져도 괜찮을 터, 구차한 변명으로 자신을 격려할 때도 있다.  세월이란 참 무서운 것이라 느껴진다.  친구를 사귐에도 반듯한 사람을 좋아했고, 삶에서도 정도(正道)만 추구했던 내가 이제는 칼같이 정확한 사람을 보면,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든다. 

  

  예술가들의 영감을 북돋아서 창작을 도와주는 술. 서먹한 자리도 한 잔이 돌아가면 부드러워지고 인간관계에 윤활유가 되어주는 술. 좋은 사람들과 한잔 기울이며 삶의 노곤함을 풀어 버린다면 그 자리가 왜 아니 즐겁겠는가.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들의 마음을 가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집에서 담는 약술도 과하면 몸을 해한다 했으니, 본인의 주량을 알아 알맞게 마시고 기분 좋게 깬다면, 술은 마음의 갈증을 풀어 주는 좋은 벗이라 생각된다.  지난 가을, 술을 기분 좋게 마시는 시인을 만났다. 술잔이 오고 가고 취흥이 무르익어 가는데, 그 자리서 시 한 수를 지어 준다.  내 생애 이런 날이 또 있을까 싶어 마음은 기쁘기 한량없었다.      

   경제가 어려워 나날이 살기 어려워지는 요즘, 지나치어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조금은 취해서 살아도 좋으리라.  사람에 취하고, 아름다운 산수(山水)에 취하고, 그리고 사랑(愛)의 술로 가끔은 취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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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기차는 북쪽을 향해 달린다. 

   30분 달리다보면 플랫폼에 ‘예르벤페’라는 표지가 나타난다. 이곳은 핀란드전체가 국부(國父)처럼 떠받들었던, 작곡가 ‘얀 시벨리우스’가 반평생을 살았던 집 ‘아이누라’이다. 이 세상 모든 작곡가들을 통틀어서, 시벨리우스만큼 국가적인 영웅 대접을 받았던 음악가도 없었다.  당시 핀란드는 국호는 가지고 있었으나 러시아 제국의 속국이었다.  조국의 불행한 상황에서 민족의식을 고취(鼓吹)하는 음악을 작곡하게 되고, 핀란드가 독립했을 때, 가장 먼저 추앙받던 예술가가 시벨리우스였다.  정부는 숲으로 둘러싸여 아름다운 이곳 예르벤페에 그의 거처를 아담하게 지어주고, 종신 연금을 받는 특혜를 주었으며, 평생 걱정 없이 작곡에만 전념하도록 해주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집 반경 몇 킬로미터에 걸쳐서, 자동차의 경적을 금하고 서행하도록 표지판을 세운 것이었다.’

 

 요즘 읽은 음악서적 박종호의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나라의 아버지란 수식어

가 붙은 작곡가 ‘얀 시벨리우스’ (1865- 1957), 그가 남긴 업적이 대단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허나 음악가를 그토록 우대하고 배려해준 핀란드라는 나라가 나는 궁금해졌다. 그리고 2003년부터 국가 경쟁력 세계 1위, 국가 투명성 세계 1위, 범죄율은 세계최저 이며, 국민들 스스로가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을,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즐거워 한다는 기사를 일간지에서 읽고, 핀란드에 대한 나의 관심도는 더해졌다. 그리하여 나는 핀란드라는 나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핀란드는 1917년 12월에 독립공화국으로 선포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나라이며, 국토의 70퍼센트 이상이 숲으로 덮여있다.  인구는 약525만 명, 주요 생산 작물은 보리와 귀리이고, 유난히 호수가 많아 핀란드를 ‘수십만 개의 호수의 땅’이라 했다.  3월이면 봄이 오는 것은 우리나라 절기와 같으나, 5월에 눈이 녹고 6월이면 다양한 꽃들이 피어난다. 또한 핀란드 북부 ‘로바니미’에서는 5월 중순부터 7월 말까지 낮이 계속 되어, 그곳은 한 밤중의 태양이 뜨는 백야(白夜)의 땅이다. 하지만 중부와 남부는 짧게나마 해가 지평선 아래로 넘어가는데, 그 순간은 하늘이 제일 아름다운 색을 보여준다고 했다.  9월이면 잎들은 갈색으로 물들고 10월이면 첫눈이 내린다. 쌓인 눈은 그 다음해 3월까지 이어지는데, 겨울은 여섯 달, 참 긴 편이다. 그래서 그들은 봄을 맞이하는 기쁨이 남다르다.  

  국민성을 살펴보니 놀라울 정도로 양심적이며 근면하다.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데, 이곳의 자연환경이 워낙 고요한데서 오는 것 같다고 했다. 서머코티지(summer cottage)는 핀란드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름용 별장이다. 전세를 살아도 조그만 별장은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가족과 함께 주말을 호수와 숲이 있는 자연에서 호흡하기를 즐긴다. 앞서간 사람이 쓰레기를 흘렸으면 다음사람이 그것을 꼭 줍는다고 하니, 환경을 아끼는 마음도 각별한 것이다. 

 

  핀란드는 무엇보다도 교육의 강국이다. 조세(租稅)를 재원으로 초중고는 물론 대학원까지 무료이며, 교재와 식비, 통학 비까지 제공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아이의 적성에 따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국가차원에서 하고,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즐겁게 공부하는 인재로 키워내는 것이다. 교육정책이 아이의 개성을 존중하는 맞춤형교육이다.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책임을 진다’는 말은 헛말이 아니었다. 

   두 달 동안 핀란드를 들여다보며 느낀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들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특별하게 내 시선을 끄는 대목이 있었는데, 그것은 나라 안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는 대책마련을 위해 각계전문가들을 모아서 답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 모임이름이 ‘워킹그룹’이다.  몇날 며칠이 걸려도 충분히 토론을 한 후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론을 얻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 결정이 된 사항에는 정치권의 입김도 이해집단의 압력도 상관없이, 번복(翻覆)되지 않고 시행된다고 한다. 정치에 문외한인 나도 가끔 난투극으로 가는 국회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도 이런 제도를 도

입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소득에 따라 부과되는 높은 세금은 정부활동 공개법이 있어, 정부가 하는 일이 궁금하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유럽은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humanism)' 사회라고 하더니 핀란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인복지는 물론, 노약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편리하게 잘 되어 있었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다. 뿐만이 아니라 1999년부터 노인에게는 그간의 경력(經歷)을 활용해 재교육과 취업알선을 하여, 다시 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것은 노인과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는 국민 누구에게나 같은 혜택을 주는 평등주의 정책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토록 행복해하는 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예술가를 우대해준 나라, 교육을 책임지며 인재를 키워내는 나라, 공편(公便)한 삶과 정부에 대한 신뢰, 본인이 선택한 분야에서 그들은 열심히 일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도 복지제도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육아보조금, 치매노인 요양비, 독거노인 생활 보조금, 노인 일자리 창출, 그 외에 소외층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만들어 지고 있다. 우리도 언젠가 핀란드처럼 살기 좋은 세상이 오리라 기대해본다. 가진 것이 별로 없으니 세금 낼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내는 세금을  아까워하지 말

 아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숲과 대지, 호수와 바다, 그리고 산타크로스의 고향 핀란드는, 언젠가 한번은 가보고 싶은 나라이다.    

                                               

Posted by 물오리
 

                    


                                                           

  별밤지기 이문세가 요즘은 낮지기가 되어 아침방송을 한다.

  금요일은 아침음악회가 있는 날인데 초대된 사람들은 보컬 팀이다.  그들은 치과 의사라 했고, 그래서 이름도 ‘이빨스’ 란다.  각자가 맡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데 리듬이 경쾌하다.  가사를 들어보니 역시 이빨에 관한 내용이다. 

  “ 이가 아프면 치과를 빨리 찾아요. 이빨 이빨,  이빨스,” 

  나는 아침을 먹다가 그만 웃음이 터졌다.  그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단다.  짐작컨대 학창시절은 학업에 충실해 치과의사가 되었을 것이고, 지금은 병원을 운영하며 틈틈이 연습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봉사를 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렸을 것이다. 

   “사모님들, 시간을 허락해주어서 고마워요” 팀 한사람이 안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건강한 사회일원으로 유쾌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른 아침, 시흥계곡을 오르려면 산 아래 있는 도로를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산을 감고 도는 담벼락아래 고유번호가 적힌 거주자 주차선이 그어져있는데, 작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오후 2시면 들어옵니다.

  차를 세우시게 되면 전화번호를 남겨주십시오. 죄송합니다.’

  단정한 글씨가 팻말에 쓰여 있다.  글을 읽으며 어떤 사람일까, 나는 궁금증이 일었다.  좀처럼 남을 배려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이렇듯 사려 깊은 사람이 있다니, 내 마음속에선 그야말로 싱그러운 바람이 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주 작은 일에 유쾌해진다.  일테면, 운전 중에 옆 차가 앞으로 들어오겠다고 점등을 켰을 때, 나는 거반 양보를 하는 편이다.  물론 잘하지 못하는 운전 탓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라져갈 때 또 기분이 유쾌해진다.   뿐인가, 버스가 정차하면 노인이 탑승하도록 뒤에서 도와주며 기다려주는 사람,  이사를 가면서 필요한 전화번호를 현관문에 부쳐주고 가는 사람, 사소한일이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평범한 일상, 인생이란 그냥 그렇게 무탈하게 흘러가면 다행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때때로 스치는 풍경에서 유쾌함을 느낄 때, 나는 삶이란 것이 더 좋게 느껴진다.

                                                      

Posted by 물오리
 

 

      일주일에 두 번, 나는 초등저학년 꼬맹이들과 동화책 읽기를 한다.

     책상을 마주하고 둘러앉은 아이들은 차례로 책을 읽는다.  열 두 명의 초롱초롱한 눈은 친구가 읽는 것을 조용히 듣고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착한 소녀가 돌 아래 깔린 용을 구해주고, 말만 하면 모든 것이 나오는 요술 맷돌을 얻어, 행복하게 잘 산다는 동화다.  어느 대목이 재미있었는지, 느낀 점은 무엇인지, 돌아가며 이야기내용을 정리하고 나면, 나는 한 가지 더 질문을 한다. 

  “만일, 요술 맷돌이 여러분에게 생겼다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요?” 

  “돈이 많이 나와서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하겠어요.”

  “좋은 집하고 맛있는 과자 나오라고 말 하고 싶어요.”

  “동생 하나 달라고 할래요.” 

아이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헌데 마지막에 한 아이가 하는 말에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저는 요, 먹을 것을 많이 나오게 해 달래서, 아프리카에 배고 푼 아이들 도와주고 싶어요.”

“어머나 신통해라, 그런 생각을 했구나.”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돈을 이야기 한 아이는 부모가 맛 벌이를 하는 환경이고, 동생을 원하는 아이는 자기하나여서 외로운 모양이다.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기특하게도 남을 배려 할 줄 아는 마음이다.  아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마치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화선지가 떠오른다.  뿐인가, 웃는 얼굴은 순수 그 자체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날은 내 마음도 즐겁다.

 

  연세대 교육학자이신 이성호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꼬맹이들의 사회생활은 시작 된다고 한다.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란아이는 언어가 발달이 되고, 이것저것 경험하며 자란아이는 사고력(思考力)이 넓어진다고 하였다. 되도록 보고 듣고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란다. 그리고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사항을 알아내어 키워 주라고 했다. 

   동화책은 아이들에게 호기심과 읽는 재미를 준다. 전래동화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을 알게 해주고, 창작동화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기도 하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가족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하고, 장애가 있는 친구를 그대로 받아드릴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있는가 하면, 환경을 소중히 해야 하는 지구이야기, 상대방을 배려하는 착한마음이 담긴 내용, 두려움이 많은 아이에게는 용기를 주는 책도 있고,  존재의미를 알고 참된 우정을 알게 하는 이야기, 전쟁의 잔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책, 아이들이 읽기에 좋은 책들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동화책 읽기는 아이들에게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초등학교생활이 시작되는 시기에 엄마와 책을 읽고 이야기내용을 정리해본다면, 아이들의 정서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며칠 전에 읽힌 책은 ‘의사 안중근’이다.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그분의 업적을 다시 새겨보았다.  나무는 땅속에서 자양분(滋養分)을 얻어 성장하듯이, 아이들은 책을 통해 좋은 자양분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은 슬기로운 아이로 자라게 할 것이다. 요즘 내가 즐겨 가는 곳은 어린이 도서관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크는 아이들, 그 순백의 마음에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것이 내 희망사항이다.      




Posted by 물오리

일본규슈여행

여행[Album] 2011. 2. 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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