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순자'에 해당되는 글 48건

  1. 2011.02.05 내가 기른 더덕 꽃 by 물오리
  2. 2011.02.05 혼魂으로 쓰는 글--- 반숙자 by 물오리
  3. 2011.02.05 신묘년 설날 손자 다안이와 함께. by 물오리
  4. 2011.02.05 춘란(春蘭) by 물오리
  5. 2011.02.05 꽃길 따라 페달을 밟는다. by 물오리
  6. 2011.02.05 네덜란드여행-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여인 by 물오리
  7. 2011.02.05 네덜란드 여행- 얀씨부부 by 물오리
  8. 2011.02.04 바람 소릴 들어 봐. by 물오리
더덕이 곰팡이가 나서 화단에 묻었더니 싹이 났습니다. 그리고 예쁜 꽃이 피었습니다.
향기도 좋고 꽃모양도 앙징맞게 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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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녁에 피어나는 들국화는 피고 싶어서 핀다. 꽃더러 왜 피느냐고 묻지 말라. 살아 있음의 가장 확실한 모습임을…

 내가 수필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인은 나에게 "가슴으로 오는 소리를 듣고, 가슴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도 하고, 어느 분은 혼魂으로 쓰는 글"이라고도 한다. 삭여보면, 본능적인 욕구의 표현 행위로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작가가 작품을 쓸 때 그는 곧 자신의 생명을 피우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수필이라는 나의 꽃은 암울했던 시기에 구원의 손길로 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가 된다거나 지면에 발표하려는 꿈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고통이 글을 쓰게 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살아날 수 있었다.

 누구에게 기대어 위로받고 싶거나 스스로 무너질 때 차오르는 비애를 기도하듯 쓰다보면, 바람은 잔잔하여지고 삶의 구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글이다. 친구이듯 스승이듯 붙잡아주고 다독여 준 수필, 그래서 엄격하게 이렇게 저렇게 써야 한다고 주문하지 않았다. 이론에 급급하다 보면, 쓰고 싶은 대로 써지지 않았다. 나의 글이 잡초처럼 질기고 모양 없음은 거기에 기인된 것이 아닐까 한다.

 다만, 어떻게 쓰느냐 보다 무엇을 쓰느냐에 마음을 쓴다. 글감이 진국이면 표현이나 구성에 다소의 무리가 있다해도 전달되는 공감은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갈수록 까다로워지고 모르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수없이 흔들리며 글을 쓴다. 그것을 미완未完의 허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감성, 체험, 지식, 사유를 동원하여 썼지만, 써놓고 보면 미흡하기 짝이 없다.

 지금도 마감일에 쫓겨 원고를 부치고 나면 몹시 앓는다. 또, 활자화 되어 나오는 글이 부끄럽고 두려워서 열어보지 못하고, 며칠을 보낸다. 그 때의 부끄러움과 허탈함이 다시 글을 생각하게 하고 쓰게 하는지 모른다. 수필이 개성의 문학이라 하고, 한 작가의 쓰는 작품이 같을 수 없음은 편편마다 느껴지는 대상이 다르고, 표현의 기법도 새로움을 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런 나게게 수필 작법이라는 트여진 도道가 없다. 다만 오래 전부터 몸에 밴 버릇이 몇 가지 있다.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때마다 글을 쓴다. 일상 생활에서 평범하게 지나칠 수 없는 대상들, 자연과 사람들, 모든 사물들과의 교감을 느낀대로 기록해 둔다. 그런 습관은 잠들지 못하도록 의식을 깨우고, 사물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길러주는 것 같다. 또, 섬광처럼 지나가는 영감들을 메모한다.

 개미가 먹이를 물어 나르듯이 나의 체험을 확대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스크랩 한다. 이 노트는 원고지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 내 것으로 소화되고, 그때의 주제와 접목되었을 때 가능하다.

 나는 주제가 붙어서 오는  청탁 원고 쓰기가 어렵다. 기량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고, 독자를 의식하거나 잘 써 보려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더 흔들린다.

 매번 쓰는 글인데도 절벽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어떤 때는 안개 자욱한 빙벽이고, 어떤 때는 손을 내밀면 잡힐 듯 하다가 저만치 물러가고 더 가까이 다가서면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피안의 영봉, 시시 각각 변하는 사유의 성成이다.

 절벽 앞에서 마음이 고요로워 지기를 기다린다. 기억을 뒤져보고 쉽게 상想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메모 노트를 펼친다. 어떤 분은 그것을 '예술적 감흥'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계기 또는 충동이라고 생각한다. 계기나 충동에 의해 대상이 잡히면 주제를 향해 소재들을 모으고, 어떻게 형상화 할 것인가 고심한다. 그리고 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자문하면서 재목을 잡는다.

 글을 쓰는 사람이면 공통된 난재가 첫 대목이다. 글의 소재를 암시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그러나 첫 구절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은 마지막 구절이다.

 글 쓸 때의 유의점은 나 자신에게 정직하려고 노력한다. 작가는 자신만치의 글을 쓴다. 잘 쓰려고 애쓰는 대신 나의 렌즈를 통해서 느껴지는 것을 담담하게 쓰고자 한다. 감추지 말고 자신의 보족한 면까지 성찰하고 고백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수필은 곧 그사람이 된다. 그런 면에서 수필은 나에게 허구를 허락하지 않고, 인격적인 만남을 요구한다.

 문장은 소박하고 되도록이면 쉽게 쓰고자 한다. 편견이 아닌 보편적인 진실의 모습을 나의 사유로 걸러 나의 그림으로 형상화하려 한다.

 글 쓰는 일을 산고에 비유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나는 열병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쓰고자 하는 대상과의 어우러짐, 그것은 밀애와도 흡사한 심적 충동이다. 자나깨나 오로지 탐구하고 유인하고 애무하고, 의식은 한 층계씩 내면으로 침잠한다. 열이 오른다. 눈빛이 비어가고 오관의 ?이 빠져버린 허수아비가 되면서, 눈부신 빛줄기를 따라간다. 그럴 때 나는 수필혼과 접신된다.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끌고 가서 가슴을 열어주면 일사천리로 절벽을 오른다. 그렇게 마무리 짓는 것은 퇴고를 많이 하지 못한다. 아마도 사랑에 눈이 먼 탓일 것이다. 내 안에 고여와서 출렁이는 것을 쓸 때의 일이다.

 대개의 경우는 노트에 초벌을 쓰고, 원고지 세 번쯤 옮기면서 가지를 쳐낸다. 청탁 기일에 ?기지 않으면 서랍 속에 묵히면서 퇴고를 한다.

 지금까지의 글이 살고 싶다는 외마디 소리였다면, 앞으로는 들국화 같은 수필을 쓰고 싶다.

 악천후의 기상에도 쇠하지 않고 무서리 내린 들녁에 다소곳이 피어나는 들국화, 저만의 조용한 품격을 지니고 깊은 사색으로 곁을 삭여내 아름다운 혼이 되는 글, 유연하게 흐르되 뼈가 되는 글, 사람의 가장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감동의 향기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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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생일선물로 받은 난이 꽃대를 내밀었다.

  “어머, 꽃이 피네”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화초를 기르는 것에 자신이 없는 나는 언제나 꽃 앞에 서면 미안한 마음부터 든다.  선물을 받았을 때도 고맙다는 말은 했으나, 실은 걱정이 앞을 섰다.  헌데 오늘 난이 꽃대를 세우고 얼굴을 쏙 내민 것이다. 가끔 물만 주었을 뿐인데 고맙다.

  이른 아침 삼성산을 오르는데 함박눈이 내린다.  12월 초, 늦은 감은 있지만 첫눈이다. 잣나무 가지가 눈을 이고 있고 까치는 여전히 아침인사를 한다. 수채화가 따로 없다. 자연은 늘 이처럼 거대한 그림을 그린다.  산기슭에 있는 배드민턴구장에는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이곳을 ‘삼성카페’ 라고도 부른다. 난로 가에서 차를 마시며, 난이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사님,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네요. 예로부터 난 꽃이 피면 집안 경사가 생긴다고 하지 않아요.” 손아래 후배가 한마디 한다.

  “참, 자네는 말도 예쁘게 하네.”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 경사(敬事)라, 한번 생각을 해 본다.  올해는 유난히 자잘하게 아팠던 기억이 난다.  올 커니, 막내에게 좋은 짝이 생기려나, 언뜻 그런 생각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난 잎을 닦아주며 ‘우리 집에 피어주어 고맙구나, 그 아우님 말처럼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네.’ 나는 혼자 주절 거렸다. 그러나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때, 어찌 내 집만 경사가 있기를 바라겠는가,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 원을 세우고 이산저산을 찾는다는 어느 등산가도 있는데, 집안마다 좋은 일 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해도 이십 여일, 그러저러 저물고 있다. 다가오는 기축(己丑)년 새해에는 희망이라는 꽃이 피어, 우리 국민 모두 다복(多福)했으면 하는 소망을 기원해 본다.         

 

Posted by 물오리

 


                                                 

  긴 둑길에 하얀 망초가 무리 지어 피어있다.

  바람을 가르며 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달이 뜰 때쯤 핀다는 달맞이꽃, 넝쿨로 뻗어서 군락(群落)을 이룬 분홍색 메꽃, 억새는 내 키를 넘어 가을을 예고한다.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했고 해바라기도 입술을 열었다.  봄에 피었던 유채는 씨를 잔뜩 안았고, 엉겅퀴, 민들fp, 명아주,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다. 

  꽃길을 따라 달린다. 칠월 초, 장마라 하더니 잠깐 소강상태다.  해는 구름 속에 숨어 쾌적한 날씨.  풀을 깎는 아저씨들 덕분에 들 향기가 진하다.  비가 온 뒤라 물가에는 백로인 듯, 목이 긴 새 두 마리가 수초 속을 뒤지고 있다.  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시원하다.  아니 가슴 속까지 시원했다.  머플러가 날린다. 나는 모자 끈을 단단히 조였다.

  “와, 좋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앞서 가는 친구는 초보가 잘 따라온다고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들며 나를 격려한다.  금천대교를 지나 철산교, 광명대교 그리고 오목교가 보인다.  엄마와 딸이 메밀꽃이 핀 모퉁이를 돌아가고,  친구 사이인 듯 젊은 아낙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야기를 하며 페달을 밟는다.  간간이 쉴 수 있는 의자가 있고 식수도 있다. 친구와 나는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벤치에서 잠깐 숨을 돌린다.

  사십 대 중반에 나는 자전거 타기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헌데 둔해서 그런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았다.  웬일인지 안장에만 앉으면 두려움이 앞섰다.  차가 오면 마음은 졸아들고 장애물이 나타나면 피해야지 하면서도, 결국은 그쪽으로 가서 들이받고 온통 멍이 들었다. 그리하여 체념을 한 터였다. 

  

   ‘안양천변에 아름다운 꽃길이 생겼다’ 는 문구가 구(區) 소식지에 실렸다. 나는 저녁을 이르게 먹고 동생이랑 꽃구경을 나갔다.  시흥대교를 건너 둑을 내려가니 천변(川邊)이 말끔하다. 산책하는 길이 있고 그 옆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길게 뻗어 있었다.  키 작은 채송화가 보이고, 빨간 꽃술을 단 봉숭아도 있고, 길섶에는 낯익은 꽃들이 다소곳이 피어있다. 한강으로 유입되는 안양천은 잔잔하게 여울지며 흘러간다.  언뜻 유년의 고향 냇가가 떠오른다. 어디선가 맹꽁이가 울었다.

   “어머 맹꽁이 아냐”

   “그러네, 장마 질 때면 울었는데”

   이곳에서 맹꽁이 소리를 듣다니 반가웠다. 한강 둔치로 이어져 있다는 이 자전거 길을 나는 달려보고 싶었다.

   다시 한 번 도전이다. 안장이 낮은 자전거를 장만했다. 연습할 때는 두꺼운 바지를 입고 그 속에 내복하나를 더 껴입으란다. 다치는 것을 염려하는 친구 말이다. 시장 볼 때도 가벼운 볼일도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친구, 그래서 보기 좋았던 그 친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올라타고 내리는 것, 브레이크 잡는 것 그리고 평행감각을 익히는 것 등 몇 가지 설명을 들었다. 핸들을 잡고 불안해하는 나를 보고 한마디 한다. 

    “자동차 운전은 잘 하는 사람이 겁도 많네.”

    “이 친구야 , 자동차는 네 발이고 자전거는 두 발이잖아”

    친구는 ‘호호’ 웃는다.

    나는 자전거를 끌기도 하고 타기도 하면서 아파트를 돌았다. 이른 새벽과 늦은 저녁, 차가 다니지 않는 한가한 시간을 골랐다. 어쩌다 사람을 만나면 제자리에 서 있고 차를 만나도 멈추었다.  열흘쯤 지났을 때는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조금씩 즐거움이 따랐다.  드디어 오늘, 한강 둔치로 목표를 정하고 출발한 드라이브길이다.

  자전거 길을 따라 달리는 길은 꽃들로 이어졌다. 뿐인가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은 활기가 넘친다.

  “ 바람돌이 같네.”

  친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져 간다. 길게 이어져 있는 갈대숲, 롤러 스케이트장,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느라 작업이 한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담소하며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했다.  바쁜 생활을 뒤로 하고 한가함을 즐기는 것이 보기 좋았다. 곧 도착한다는 말을 들으며 부지런히 따라간다.

   “초봅니다. 길 좀 비켜 주세요.”

   앞서 걷던 사람들은 선뜻 비켜준다.  핸들 앞에 울리는 벨이 있건만 아직은 말이 더 빠른 것을 어찌하랴. 이대목동병원이 보이고 모퉁이를 돌고 나니, 안양에서부터 흐르는 물이 합수(合水)되는 한강이다.  확 트인 시야, 물은 넘실대고 건너편에 하늘공원이 보인다. 시원한 강바람은 나를 감싸 안는다.    

    작지 않은 이 나이에 해냈다는 성취감이 나를 조금 들뜨게 했다. 기분이 좋았다. 바람을 가르며 페달을 밟는 것, 그것은 즐겁고 유쾌한 일이었다. 그리고 통쾌했다. 

   기분이 좀 그런 날은 자전거를 타보라고 권하고 싶다. 온갖 꽃이 피어있는 이 길을 달려 보라하고 싶다. 그리하여 꽃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라,  새로운 것을 해 본다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다.  

   십 년 전만 해도 안양천은 하수구 냄새가 났었다.  밋밋한 천변을 꽃들과 갈대가 있는 숲길로 만들어 시민의 쉼터로 꾸민 것은 참 좋았다. 서울 시내에 내(川)가 있는 곳이면 어디고 연결이 되어 있다하니 나는 그 길을 따라 즐거이 달려볼 것이다.    

   맑은 물이 흐르고 달맞이꽃이 피었던 내 고향. 이맘때면 친구들과  거닐었던 둑길, 그 둑길을 여기서 본다.  새가 찾아오고 송사리가 노니는 천변. 꽃길을 따라 페달을 밟는 내 눈앞으로, 20년 전 두고 온 고향이 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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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 만난 얀씨부부 그들은 다정했고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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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다.

   마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 가슴에 아기가 등을 대고 안겨있다. 바람이 불어 아기랑 엄마랑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날린다. 그리고 엄마가 아기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바람소릴 들어봐” 라고.  이것은 큰 아이가 화강석으로 조각한 [세로50CMㅡ가30CM] 모녀상이다.

‘바람소릴 들어봐’ 는 작품명이며 우리 딸이 아끼는 작품이다.

   눈 코 입이 또렷하지는 않으나 두 걸음 물러서 보면 분명 다정한 모녀의 모습이다.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나는 골똘히 살펴보았다. 과연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 아기를 양손으로 포근히 감싸 안은 자태는 따듯함이 전해온다.

‘바람 소리라’ 나는 입 속으로 읊조려 보았다. 싱그러운 어느 봄날, 바람이 대지를 깨우고 오색가지 꽃을 피우는 그런 소릴 들어보란 것일까. 아니면 한 소녀가 착한 일을 했는데, 그 아이에겐 칭찬을 해줄 부모가 없었단다.  언덕에 앉아있으려니 부드러운 바람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란 동화 속의 바람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열정의 여름을 지나 탐스런 열매를 맺고 잎을 떨어뜨리는 쓸쓸한 초동(初冬)의 바람인가. 여러 가닥으로 생각이 피어올랐다.

  작업실에서 며칠 만에 돌아온 딸에게 저녁을 먹으며 나는 물었다.

  “바람소리는 어떤 소리야?” 잠시 머뭇하더니 입을 연다.

  “엄마, 그 바람 속엔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있어요.” 

  순간 나도 모르게 손끝이 떨려왔다. 세월 저편에 묻어 버렸던 아픔의 상처가 움찔하고 있었다.

  ‘그래, 아홉 살 되던 해, 아빠가 떠나셨지’ 어린 가슴에 그때의 슬픔이 어떠했는지, 비로소 나는 아이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큰 착각 속에서 살았는가. 모든 어려움을, 슬픔까지도 내가 맡는다. 내 우산 아래서 탈 없이 성장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이라는 한 그루의 나무가 깊은 상처를 입으면 가지마다 아파한다는 것을 나는 잊고 살았던 것이다. 삶의 몫이 따로 이듯이 슬픔의 몫도 따로 인 것을…….  정녕 가슴에선 갈바람이 불었다.


   불경 보왕삼매론에 ‘삶에 고단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하셨거늘 어찌 평생 순탄하기만을 바라겠는가.  생각해 보면 순간순간 부는 바람소리도 그때마다 달랐다. 기분 따라 슬프게도 들리고 어느 날은 위안으로도 들렸다. ‘주저앉지 말고 일어서라’ 호통으로도 들렸다.


   딸아이가 중3, 졸업을 앞둔 무렵이었다. 독서실에 보내놓고 가끔 마중을 가곤 했는데,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관리인은 결석을 한 지가 여러 날이라고 했다. 분명 다녀온다는 인사까지 했는데……. 먹구름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자정을 넘긴 밤은 진한 먹물을 갈아 부은 듯 어두웠고, 십이월의 찬바람은 내 가슴을 더욱 파고들었다.  생각나는 친구들을 깨우고 수소문 끝에 찾아낸 곳은 수재민촌이라고 불리는 산동네. 공부보다는 놀기 좋아하는 같은 반 아이 친구 집이었다. 나는 아이를 잡고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새벽 5시, 잠이 덜 깬 딸 손을 잡고 나는 시장으로 향했다. 침구(寢具) 일을 하는 엄마 일을 돕도록 하기 위함이다. 너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보아야 알리라. 양손에 물건을 잔뜩 들고 힘겹게 따라오는 딸아이 모습을 보며 나는 입술을 물었다.  시장을 다녀오면 오전 8시, 나는 일터로 아이는 학교로 갔다. 그러기를 서너 달, 

   “엄마 잘못 했어요.”

   아이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딸아이 사춘기를 우리 모녀는 그렇게 넘기고 있었다.

   학사모를 쓰던 졸업식 날도, 조각전에 입상을 해 상패를 안겨준 날도, 딸아이는 그때마다 나를 한 번씩 더 울려 주었다.  계절마다 부는 바람 속엔 내 기쁨과 슬픔도 함께 있었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딸은 한마디 덧붙인다.

   “그 바람 속엔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가 많아요. 오늘이 흐렸으면 내일은 다시 해맑은 태양이 떠오른다. 열심히 일하고 당당하게 살아라. 이런 말들요.”

   “그래, 내가 그랬지.” 우리는 마주보고 웃었다.

   이제 딸은 나름대로의 음향대로 살아 갈 것이다. 바람소릴 들려주던 젊은 엄마는 어느 사이 그 딸을 의지하며 산다. 때때로 친구가 되어주고 나를 감싸주는 울타리다. 어찌 보면 바람소리를 들으며, 느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앞으로 20년, 세월이 가고 나면 나는 그 딸의 말을 들으며 살 것이다.

   “어머니, 바람소릴 들어 보세요” 라고.





   

 

Posted by 물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