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를 끝내고 오월 단오가 되면 어김없이 동네잔치가 열렸다. 풍년을 기원하는 농악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농자 천하지 대본 ' 깃대가 푸른 하늘에 펄럭이고 풍물에서 우두머리 격인 꽹과리를 잡으셨던 아버지가 자진모리장단으로 시작하신다. 태평소, 피리. 장구, 징, 북, 소고까지 흥겹게 치며 한마당 놀이가 벌어진다. 동네 사람들은 신명 나는 장단에 맞추어 함께 춤추며 어울린다.
초등3학년 때 이야기다. 어쩌다 농주 한잔 하고 들어오면, '사랑, 사랑이란 게 무엇이냐. ' 창부타령을 구성지게 부르셨던 아버지, 그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논농사 일곱 마지기, 그것이 우리 집을 먹여 살린 농토 전부였다. 그래도 가을 벼타작 할 때는 아버지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가마솥에 콩밥을 하고 청국장을 끓여 온 동네 사람들 불러 나누어 먹었다. 추수가 끝난 시월상달에 어머니는 고사를 지냈고 팥을 듬뿍 넣은 시루떡을 집집마다 돌렸다. 그 일은 언니랑 내가 했다.
내 아버지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분이다. 한글은 스스로 깨셨고 이야기 책을 좋아해서 춘향전, 심청전, 장화 홍련전을 소리 내어 읽으셔서 어린 나이에도 그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자랐다. 그리고 주무시는 머리맡에는 조그만 상이 하나 있었는데, 천자문과 배우는 노트가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해 나는 네 살 반이었다. 부모님과 오빠, 언니 둘, 나는 셋째 딸, 가족들은 피난 갈 짐을 서둘러 쌌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어린 나도 겁이 났다. 커다란 보따리를 아버지는 양 어깨에 메시고 그 위에 나를 올려놓으셨는데 아득했다. 한참을 가다가 나를 내려놓으셨는데 ,
"우리 순자 잘 간다."
칭찬해 주시면 더 잘 걸었던 생각이 난다. 지금도 나는 비행기소리가 들리면 어슴프레 공포로 두려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참으로 오래된 옛날이야기다.
1.4 후퇴에 이어 전쟁이 휴전이 되고 동생들이 태어났다. 아버지의 노력으로 끼니를 굶어 본 적은 없다. 육 남매를 키워내신 아버지, 깡보리밥이었지만 가족들은 둘러앉아 된장찌개와 열무김치, 몇 가지 안 되는 찬으로 맛있게 먹었다. 가족을 위해 이런 일 저런 일 가리지 않고 하셨던 아버지, 그 고단함을 한참 커서야 알게 되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 했던가. 나이를 먹으며 농악놀이가 좋았다. 어디선가 징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귀가 열린다. 십여 년 전, 고향선배님 '수필 문학상' 시상식이 동숭로 대학가 근처에서 있었다. 시상식을 마치고 나왔는데 길거리 공연장에서 사물놀이 패가 신명 나게 한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그들과 어울려 흥겹게 놀고 싶었는데 함께한 아우가 말리는 바람에 가까스로 참고 돌아왔다.
2025년 6월 초 , 증평에서 풍물놀이 들놀이 축제가 있다고 해서 갔다. < 장뜰 두레 농요> 농경 축제로 전국에서 몇 개 안 되는 축제라고 했다. 드디어 꽹과리, 피리, 북, 장구, 소고, 풍물패가 깃대를 들고 공연장으로 들어왔다. 어찌나 흥겨운지 나는 어깨춤이 저절로 나왔다. 농악은 삶의 소리요 서민들의 삶을 달래는 음악이라 했다. 모든 시름을 풍악과 농요로 풀으셨던 아버지, 많은 사람들 사이에 신명 나게 꽹과리를 치셨던 아버지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스라이 보이는 듯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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