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릴 들어 봐...'에 해당되는 글 3286건

  1. 2011.03.05 녹차 밭가는 길 by 물오리
  2. 2011.03.05 녹음(錄音) 연습-- -충북수필- by 물오리
  3. 2011.03.04 냉이와 씀바귀 by 물오리
  4. 2011.03.04 내가만난 클래식 by 물오리
  5. 2011.03.02 석수 초등입학식 by 물오리
  6. 2011.03.02 ‘향수’의 정지용 문학관을 가다 by 물오리
  7. 2011.03.01 어머니, 나의 어머니 by 물오리 2
  8. 2011.03.01 개나리꽃이 필 무렵 by 물오리
  9. 2011.03.01 나의 文學世界--- 가슴속 그 울림 by 물오리
  10. 2011.03.01 그리운 금강산 by 물오리
 

                       

                                       

                                                                 

 

   "어머, 코가 닮았네요. 따님 코가 조금 더 높네요."

여대생인 듯, 처녀들은 딸아이와 나를 번갈아 보며 웃는다. 동그란 얼굴 외에는 꼭 집어 닮은 곳이 없는 것 같은데 코가 닮았단다. 일행의 사진을 서로 찍어주고 능선을 향해 오른다.

   이곳은 전라남도 보성, 해발 350M고지의 오선봉 녹차 밭이다. 산마다 큰골이 지어 있고, 능선을 따라 가지런히 자란 녹차 밭은 꿈속인 듯 새벽안개에 쌓여있다. 근간에 채취했는지, 웃자란 여린 잎이 나를 보고 웃는다.

  "엄마, 이쪽에 서 보세요. 안개와 능선, 구도가 멋있게 잡혀요."

  나는 어색하지만 포즈를 취해 보았다. 옆으로 비켜서 한방, 어린애처럼 골 사이에 앉아서 한방, 이 청초한 새벽 풍경을 하나라도 더 담고 싶어 찍고 또 찍는다.


  팔월 초 신문에 '자- 떠나자' 란 타이틀로 전면을 채운 녹차 밭, 그 문구는 나를 유혹했다. 보고 싶었다. 지면을 통해서, TV광고를 볼 때마다 신선한 정경이 삼삼했다. 큰딸이 저녁을 먹으며 마침 며칠 시간이 있다고 했다. 지도를 펴놓고 길을 찾아 표시를 하고 운전은 번갈아 하며 가자고 결론을 냈다.

  간단한 준비와 함께 동이 틀 무렵, 우리 모녀는 1000리 길 장정에 올랐다. 내심 흔쾌히 뜻을 받아준 딸이 고맙고, 오붓한 둘만의 여행이 기뻤다.

  수원을 지나 경부 고속도로 - 회덕분기점,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장마는 소강상태이고, 파란 하늘은 면사포구름을 잔뜩 이고 있다. 장거리 운전에 피곤해하는 딸 어깨를 몇 번 두들겨 주고 나는 핸들을 잡았다. 그리고 호남으로 질주- 광주 도착한 것이 오후 4시, 전라도라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고속도로를 나와 화순에 이르니 커다란 간판이 보인다.

  '오 메, 인자 왔오.' 초행인 나를 보고 던지는 말 같아 웃음이 나왔다. 능주를 지나 보성으로 가는 길은 빨갛게 핀 백일홍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안개가 걷힌다. 성하(盛夏)의 강렬한 햇빛에 녹차 밭이 모습을 드러낸다. 몇 만평이나 될까, 능선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남해의 해풍을 받고 있는 구릉지대, 다습한 기후에 잘자란 녹차 잎은 윤기가 흐른다. 칙벽 나무처럼 생긴 삼나무가 녹차 밭 사이로 우람하게 서있고, 모 광고를 찍었다는 푯말이 모퉁이 에 서 있다.

  " 멋진 풍경이네요. 오길 잘했어요. 엄마."

  " 그래, 딴 세계 같구나"

  단아하게 지어 놓은 정자에 다리를 펴고 누워본다. 산을 뒤덮는 은은한 향기, 어디론가 둥둥 떠가는 것만 같다. 그림을 전공한 딸은 시야에 잡히는 풍경을 스케치한다. 옆얼굴을 바라보니 오뚝한 코가 조각처럼 예쁘다. 언젠가 짝이 생기면 둘째처럼 내 곁을 떠나가겠지, 서둘러 가야함도 분명 한데 오늘의 내 마음은 마냥 행복하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옥과 보다 좋은 신선한 차 보내왔네.

맑은 향기는 한식 전에 따 그런 가

고운 빛깔은 숲 속 이슬을 품었네.

돌솥에 물 끓는 소리 솔바람 소리인양.

자기 잔에 도는 무늬 꽃망울을 토한다.'


고려 후기의 문신 이제현의 시다.


  시음장 벽에 걸린 시구를 읽어보고 우리는 나무로 만든 테이블에 앉았다.

  "삼분을 기다리시고, 세 번을 우려서 드세요. 녹차를 넣어서 구운 쿠키가 있습니다."

  나이는 삼십 후반쯤 되었을까, 다원에서 나온 아낙인데 고운 인상이다. 딸이 따라주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조금씩 음미하며 마신다. 코끝에 스미는 향이 감미롭기 그지없다.

  녹차는 7년이 되어야 채취를 하며, 시기는 곡우 전후에 딴 것을 세작(細雀)이라 하여 최상품으로 친단다. 입하 전후에 딴 것은 중작(中雀)이라 하고 발효 정도에 따라 네 종류로 나눈다. 잎을 덖어서 엽록소를 그대로 보존시킨 녹차, 10 퍼센트 발효하면 청자, 50퍼센트를 발효하면 오룡차, 100퍼센트 발효한 것은 빛깔이 붉어서 홍차란다. 녹차에 맛은 쓰고, 떫고, 시고, 짜고, 단, 다섯 가지의 맛인데 이중에 가장 먼저 닿는 맛은 쓴맛이고 오래 입안에 남는 맛은 단맛이다. 위로는 머리를 맑게 하고 아래로는 소화를 돕는다고 자세히 설명한다.

    다도는 도(道)와 통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며 예(禮)에 이르게 한다는 말이 오늘은 쉽게 이해가 된다. 차하면 우선 커피가 떠오르고 나도 커피를 즐긴다. 그러나 이제 생각이 바뀐다.  공기 맑은 산하에서 이슬을 먹고 자란 여린 잎들, 거듭 덖어서 손이 가길 수차례, 정성만큼 향도 깊어 세 번을 우려먹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물을 붓고 여유 자작하게 기다리는 침착성, 차석에서 나누는 정담이야말로 현대인들의 심성을 촉촉하게 적셔주지 않을까, 오늘에 이 정경(情景)을 가득 담아 작은 차상 하나를 마련하리라.

-이 땅에 나고 자란 은혜를 생각 한다-  이호신님의 기행문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 라는 기행문의 머리글이 생각난다. 나 역시, 아름다운 국토에 태여 남을 감사한다.

  "엄마, 우리강산 참 아름답다. 자주 다녀야겠어요."

나는 미소로 답하며 딸 손을 잡고 삼나무 숲을 나왔다. 찌는 듯 한여름의 더위 속에서, 마음은 초록으로 물들어 우리는 귀경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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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한 평 남짓한 녹음실은 밝고 깨끗했다.

책상위에는 녹음기가 놓여있고 의자에 앉으니 편안하다. 헤드폰을 귀에 걸고 마이크를 조절했다. 나는 오늘 책읽기 음성 테스트를 받으러 왔다.  이곳은 경기도 부천에 있는 점자 도서관이다. 건물 안에는 다섯 개의 녹음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지난 초여름부터 벼르다가 아침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얼굴이 동그랗고 안경을 낀 집사님은 기기 사용법과 녹음 할 때의 유의 사항을 꼼꼼하게 설명해주었다.

  유리벽 너머에서 ‘큐’ 사인이 떨어지자 은은한 시그널 음악이 흐른다. 나는 되도록 부드럽게 천천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사단법인 사랑 선교회는 장애인 단체로서 장애인 복지 사업을 목적으로 1985년 설립되었고 각종 장애인 재활교육과 복지 사업을 통하여 장애인들이 정상적으로 사회화 할 수 있도록 돕고, 그 사업의 일환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이곳 소개를 한다. 그리고 도서명과 지은이를 소개하고 끝으로 읽는 사람을 밝힌 다음 책읽기를 시작한다.  종교서적부터 시, 수필, 소설, 책은 낭독하는 사람이 선택을 한다. 나는 류시화님의 수필집 ‘ 하는 호수로 떠난 여행’에서 한편을 골랐다. 막상 헤드폰을 타고 들리는 목소리는 다른 삶의 음성처럼 낯설었다. 집에서 소리 내어 여러 번 읽어 보았는데도 숨쉬기 조절이 어렵고  된 발음에서 더듬거렸다. 무엇보다 ‘노 프라블럼’ 이란 외국어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녹음을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책장을 넘길 때는 잡음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목이 잠겨오면 잠시 쉰다. 간신히 한편을 읽고 나니 긴장해서 그런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영어 발음이 엉망이고 리을

발음이 분명치 않았다.

  녹음결과는 목소리는 괜찮은데 속도가 느리고 너무 낮은 음성이라고 했다. 책을 읽을 때의 목소리는 도레미의 레와 미 중간 음이 좋고, 처진 음성은 듣는 이의 마음까지 처지게 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입을 크게 벌려 발음을 정확하게 해주어야 하고 자기 목소리 높이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이 삼켜졌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연습을 하다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야, 내가 낭독한 책을 듣고 감동이었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 보람을 느끼고 말이야,” 이곳에 살면서 여러 해 봉사를 하고 있는 친구

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다른 사람을 위해 조그만 일이라도 해 보고 싶었다. ‘ 나이 오십을 넘으면 먼 산을 보는 나이’ 라고 한 임어당의 글이 떠오르며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면 특별하게 잘하는 일도 내세울 것도 없는데, 내 삶 속에는 고맙고 감사한 일이 많았다. 뭔가 작은 일이라도 보답을 하고 싶었다.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따듯해 왔다.  그러나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한동안 고심을 했다. 그때 장애인을 위해 녹음 봉사를 한다는 이 친구가 생각났다. 

  맹인을 위한 녹음, 그것도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 된다했으니 그간 감동으로 읽은 책을 모두 읽어 주리라 했는데, 소리 내어 읽는 일이 뜻밖에 어려웠다. 

  

   삼십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아이들 선생님과의 면담이 있던 날인데, 내목소리가 방송인이 되었어도 좋았을 거라고 듣기 좋은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 어쩌다 음성이 듣기 좋다는 말도 한번씩 듣기는 했다. 그렇다고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직업에 오래 종사하다보니 아무래도 음성이 트였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일로 조금은 자신감을 갖고 도전한 것인데, 서너 시간 여 연습을 했더니 목이 잠긴다. 삼사 개월은 연습기간이 소요되리라, 차 한 잔을 마시고 일어 설 때는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저녁 9시, TV 뉴스를 전하는 앵커의 유연한 음성이 들린다.  정확한 발음과 음정, 전문직이라고는 하지만 어쩜 저리도 잘 할까. 나는 비로소 감탄을 했다.

  “속도가 느려도 엄마는 해 낼 수 있을 거예요.” 

  막내의 응원이 고맙다.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차분히 연습하면 할 수 있겠지, 나는 다시 한번 목소리를 가다듬고 정성껏 읽는다.  후일 누군가 들어줄 그 사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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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허리와 기슭을 뒤덮고, 붉게 물들인 진달래의 만발한 무리를 보지 않고 봄을 보내서는 안 된다.’

   우송(友松) 김태길선생님은 ‘아름다운 세상’이란 글에 만발한 진달래꽃을 보며 새봄을 맞이하라 하셨다. 그러나 나는 농촌에서 자라 그런지, 진달래꽃보다는 냉이와 씀바귀를 캐보지 않고, 봄을 보낸다면 뭔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서운하다.

   삼월 하순, 앞당겨 온 봄으로 여린 나뭇가지에도 새 눈이 나왔다. 아파트 주변에 산수유, 개나리, 목련, 봄꽃들이 다투어 꽃술을 열고, 봄빛도 찬란하다.  삼동(三冬)을 이겨낸 어린생명들, 하루하루 모습이 다르다.

 

   우리 집에서 안양은 5분 거리다. 한참 예쁘게 나왔을 냉이와 씀바귀가 궁금해, 며칠을 벼르다가 나는 차에 올랐다. 안양으로 가다가 ‘박달동’으로 접어들어 삼십 분쯤 달리다 보면, ‘물왕리’라는 마을이다. 그리 크지 않은 저수지를 안고, 뒤편에는 밤나무가 있는 중간 산이고, 왼쪽으로는 골을 따라 논과 밭이 펼쳐져있는 전답(田畓)이다. 이곳은 내가 봄만 되면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찾아오는 곳이다. 건너편에 낯선 건물 하나 지어져 있고는 지난봄 그대로다. 나는 논두렁길로 접어든다. 가을걷이를 하고 쌓아둔 참깨 단에서 고소한 냄새가 난다. 고추를 따고 뽑지 않은 고춧대 사이에 냉이와 씀바귀가 실하다. 마침 간밤에 내린 봄비로 밭이랑은 마냥 부드럽다. 흙을 듬뿍 떠서, 씀바귀 한 뿌리, 냉이 한 뿌리, 캐보니 향긋한 냄새가 진동한다.

     ‘그래, 이 냄새야, 이것이 봄 냄새야’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일 년 만에 맡아보는 향기는 머리속이 개운하다. 해마다 하는 일이지만, 봄나물을 캘 때면 나는 언제나 기분이 좋다. 촉촉한 흙을 만져보는 것도 좋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좋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실바람이 목을 감싸고 둔덕에 앉아 있으면 고향처럼 편안하다. 봄이면 들로 냇가로 함께 하던 동무들, 그리고 정든 산하(山河), 고향이 그리워

   해마다 하는 나만의 행사인지도 모르겠다.

   내 고향 충청도는 내륙지방이다. 이맘때가 되면 냉이, 씀바귀, 달래, 벌금다지, 지칭개, 돌미나리, 그야말로 천지간이 나물이다. 그중에도 어머니는 냉잇국과 씀바귀나물을 자주 상에 올리셨다.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는 유독 씀바귀나물을 좋아하셨고, 나 역시 들나물을 많이 먹고 자랐다.

  

초등학교 2학년 봄이었지 싶다. 그날도 대장간 집 딸, 필순이와 바구니랑 호미를 챙겨 나물 캐러 들로 나섰다. 산을 개간해서 일군 끝자락 비탈밭에 냉이와 씀바귀가 많았다. 우리는 재잘거리며 신명 나게 나물을 캐서 바구니에 담고 있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놈들, 게서 나오지 못 혀” 

   돌아보니, 호랑이라고 별호가 붙은 키 작은할아버지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나물 캐는 재미에 보리 순이 뒤집히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거다. 가슴이 철렁했다. 쿵쿵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고, 필순이의 큰 눈은 더 커졌다.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구니를 내동댕이치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산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남 서방 딸인지 다 안다.” 

   악을 쓰는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꾸중을 들을 걱정에 미적미적 놀다가 해거름에 집에 들어 가니, 바구니는 댓돌 위에서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물도 좋지만 보리를 망쳐서는 안 되지”

  아버지는 뜻밖에도 웃고 계셨다. 그 아버지 세상 떠나신지 이십여 년이다. 이제는 아버지를 닮아 나는 씀바귀나물을 퍽이나 좋아한다. 어쩌다 몸살이 나도 생각나는 음식은 씀바귀나물과 냉이 국이다. 냉이는 콩가루를 묻혀 된장국을 끓이고, 씀바귀는 살짝 데쳐서, 고추장과 식초, 약간의 설탕, 그리고 갖은 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무치면, 쌉싸래하면서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그것도 금세지은 따끈한 밥과 함께 먹으면 잃었던 입맛을 찾기에는 그만한 음식이 없지 싶다. 

  

  동의보감에 보면 ‘다년초 씀바귀는 성질은 차고 맛은 쓰나, 독이 없다. 오장육부에 나쁜 기운을 제거시켜주고 여름에는 더위를 먹지 않게 해주며 심신을 편안하게 해준다.  쓴맛은 위를 자극하여 소화촉진을 돕고 입맛을 좋게 하여 봄의 나른함을 잊게 해 준다’라고 설명이 되어 있으니, 봄이면 찾아오는 춘곤증에 탁월한 식단이라 생각된다.

 

   한참을 캐다 보니 냉이와 씀바귀가 바구니에 가득하다. 질펀히 앉아 쉬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까치 한 마리가 깨 단을 뒤진다. 고개를 연방 쫑긋거리더니 ‘깍깍 까르르’ 노래 한 곡 들려주고 날아간다. 온갖 나물들이 돋아나는 싱그러운 봄, 입맛도 옛날로 돌아가고 마음도 고향으로만 간다. 질그릇처럼 투박해서 뿌리치기만 했던 아버지 손길도, 이제는 가슴 아리게 그립다. 고향이란 나서 자란 곳 별날 것도 없지만, 부모님과 형제가 있었고 유년의 추억이 있는 곳, 고향은 늘 그렇게 가슴 한곳에 남아 그리움으로 미소 짓게 하나보다.

   오늘은 결혼해서 가까이 사는 딸 불러, 씀바귀나물 무치고 냉잇국 끓여 봄나물 잔치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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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오리
 

              

                         내가만난 클래식  -월간문학발표-


    솨 -아 바람이 분다. 

    드넓은 평야에 키가 큰 호밀이 물결처럼 일렁인다.

    열한 살 자리 꼬마는 눈을 감고 그 움직임의 소리를 음악으로 듣고 있다. 그리고 이내 양팔을 벌려 지휘를 한다. 지그시 감은 소년의 얼굴은 마치 달콤한 꿈속을 거니는 듯 행복해 보인다. 시네라마로 다가오는 밀밭과 소년, 자연을 배경으로 한 영상은 감동으로 다가 왔다. 

   밴드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아빠와 첼리스트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특별한 음의 감각을 갖고 있는 소년 ‘어거스트’,  부모의 신분 차이로 외조부에게 버려져 고아원에서 자라게 된 아이는, 입양을 거부하고 엄마 아빠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기차를 탄다.  레일 위를 달리는 바퀴소리도 음악으로 듣고, 주변에서 들리는 잡음까지도 곡(曲)으로 듣는다. 음악의 천재성을 가진 아이,  우여곡절 끝에  뉴욕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되고, 마침내 공연장에서 애타게 그리던 가족을 만난다.  밀밭에서 바람소리를 지휘하던 소년은 청중을 향해 지휘봉을 힘차게 휘젓는다.  며칠 전에 본 ‘어거스트 러쉬’라는 영화 내용이다. 스토리는 단편 소설을 보는 듯 했지만, 내 가슴에 감흥으로 남아있는 것은 11세 소년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듣고 있는 것이었다.

  잎들이 반짝이는 오월, 요즘에 내가 듣는 음악은 비발디의 ‘사계’중의 봄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지만, 다시 한 번 음미하며 들어보니 느낌이 새롭다. 

 

  ‘신나는 봄이 와

  새들은 흥겨이 노래하며 반기고

  냇물은 산들 바람실어

  도란도란 흘러간다.’ 

 

  유럽서정시의 한 형식인 14행시 (소네트)가 소개하는 글에 있다.  봄 1악장, 빠르기를 지시하는 알레그로, 곡은 마치 맑은 호수에서 진주처럼 영롱한 물방울이 마구 튀어 오르는 듯, 생동감이 전해 온다.  찬란한 봄의 기쁨이 표출되어있고 생명이 숨 쉬는 움직임이 들린다.  세상의 모든 만물이 활기찬 봄, 아름다운 음률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간다. 어렵게만 생각했던 클래식, 우연히 만난 한편의 영화 덕에 무지했던 귀가 열린다.

 

  지난해 타계하신 내 스승님은 클래식음악을 즐겨 들으셨다. 브람스 교향곡 제1번, 베토벤 교향곡 제5번, 바흐 , 쇼팽, 모차르트, 음반을 바꾸어 걸어드리면서도 건성으로 들었다.

  “음악을 듣다보면 그들의 영혼과 만나는 것 같아”

  곡을 들으시며 말씀하셨을 때도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무식꾼 그 자체였다. 

   초여름으로 가는 유월, 로테르담 필하모닉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을 알리는 기사가 일간지에 실렸다. 나는 작심을 하고 예매를 했다. 객석을 메운 청중은 숨을 죽이고 있다.  이윽고 지휘계의 젊은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야닉네제 세겐이 무대로 나와 인사를 한다.  창단 된지 90년이라고 했다. 오늘 연주하는 곡은 소련의 음악가 ‘디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891~1953)의 교향곡 5번 D단조 작품47’이다.  악기를 안고 있는 70여명의 단원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1악장 서곡이 흐른다. 화려한 선율에 바이올린, 차분한 음색의 비올라, 그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이 홀을 감싸 안는다.  이어 경쾌한 왈츠에선 우아하게 춤을 추는 남녀 한 쌍이 그려진다.  중후한 음을 지닌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첼로, 클라리넷, 트럼본 ,하프, 팀파니, 트럼펫, 그 외에 많은 악기들이 내는 다양한 음색에 나는 놀라고 있었다.  때로는 커다란 산이 다가오는 듯 장대하고, 때로는 거대한 파도가 질풍노도하며 달려오는 것 같이 웅장했다.  부드럽고 강렬하고 그런가하면 플루트의 맑고 깨끗한 소리는 깨어나는 아침 숲 속으로 나를 안내했고,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리는 듯 내 마음은 더 없이 평화로워진다.  지휘봉을 손에든 야닉은 음을 따라 크고 작게 온 몸으로 청중을 사로잡는다.  단원들의 손놀림 또한 물결처럼 움직인다.  신비스런 현(絃)에 도취되어 시종일관 나는 눈을 감고 감상을 했다. 로테르담필하모니의 탄탄한 연주는 너무도 완벽한 앙상블이었다.

 

    오늘 연주되었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은, 투쟁에서 승리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1937년 발표한 곡으로 ‘스탈린의 압제에 대한 쇼스타코비치의 대답 이었다’라고 표기되어있다.  4반세기를 독재적으로 통치하던 시기,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고, 소련을 핵시대로 이끈 그 암울했던 시대적 배경이 작품 속에 녹아 있었다.  정치적 공포감, 애수에 찬 번뇌와 침통함이, 그런가하면 다시 희망과 기쁨, 그 모든 것이 4악장에 걸쳐 표현되어 있었다. 어쩌면 인생의 모든 역정(歷程)이 들어있었다고 해야 할까. 두 시간여 공연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과 여린 감성까지도 섬세하게 표현 해내는 클래식, 그 마법과도 같은 곡을 만든 음악가들은, 일찍이 자연의 숨소리를,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듣고 있었다.  앙코르곡까지 듣고 자리를 떠나며, 그들의 영혼과 만나는 것 같다고 하셨던 스승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였는지 나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음악은 항상 우리 곁에 있어요. 귀 기울이기만 하면 돼요.”

   소년 어거스트가 한 말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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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2일 석수 초등학교 꿈나무들의 입학식이 있었다.
입학풍경도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가슴에 손수건도 매달지 않았다.
그러나 초롱초롱 눈망울은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공부도 열심히, 씩씩하고 착한 아이로 자라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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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수’의 정지용 문학관을 가다


 

    ‘넓은 벌 동족 끝으로,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우리가 즐겨 부르는 정지용의 시 ‘향수’ 앞부분이다.  초가을로 접어든 삽상한 바람이 부는 날, 충북옥천에 있는 정지용 문학관을 찾았다. 


  1996년 원형대로 복원되었다는 생가는 옥천군 하계리에 단출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부엌하나, 안방, 건넛방, 툇마루, 그리고 초가지붕이 정겹다.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항상 문을 열어 놓았다.


  그의 아버님이 한약방을 했을 때 쓰였던 가구가 방 한곳에 그대로 놓여있고, 그 위에 언제 읽어도 좋은 시 한수 걸려있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생가 앞에는 깔끔하게 조성된 문학관이 들어섰고, 뜰에는 정지용의 동상이 서있다.  실내로 들어가니 안내원이 반갑게 맞아 준다.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으로 지용의 모형이 않자있는데,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를 하고 옆에 앉아 촬영도 한다.  실내에는 작곡가 김희갑씨가 곡을 만들었다는 정지용의 ‘향수’가 박인수의 목소리로 은은하게 들린다.

  전시실에는 지용의 출생과 문학의 발자취가 차례대로 진열되어 있다.  지용연보가 있고 현대시의 흐름과 생전에 그의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1930년대는 시단에 중요한 위치에 올라 ‘청록파’를 형성한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발굴했으며, 그 외도 역량 있는 시인들을 시단에 내놓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1935년에 발간된 그의 시, 산문, 초간집이 있어 반가웠고, 영상실 에서는 휘문고 영어교사를 역임했던 시절, 이화전문대 교수 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를 낭송해 보는 기기가 문학체험 실에 있어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시인이 된 듯 낭송을 해보아도 좋다.


   정지용의 ‘향수’는 초기 작품 중에도 가장 빼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구체적으로 읊고 있고, 상상으로 그리는 세계가 아니라 자기 살던 고향을 그리움으로 읊고 있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라는 당시의 상황을 배경으로 망국의식과 함께 고향을 회복하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한다.   

  

  영문학자이기도 한 정지용은 말의 오묘함을 최대로 구사하는 천재성을 가진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30년대 구인회를 중심으로 동인 활동을 했으며, 사춘기부터 시를 썼다는 그는 일본 사람이 무서워 산으로 바다로 피해 다니며 시를 썼단다.  무엇보다도 일제식민지 시대 민족이 겪는 고통을 인내하며 살아간 지식인의 고뇌를 엿 볼 수 있었다. 

  

    그가 태어난 1902년은 조선의 말기로 일본에 의해 국운이 쇠퇴해 가는 시기였다. 또한 그가 살았던 시대는 나라를 잃고 일본의 탄압 속에서 어려움이 많았던 세월이었다. 1950년 6 25전쟁이 일어나자 정치 보위부에 구금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평양 감옥으로 이감된 후에 안타깝게도 폭사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그의 나이 49세였다.   

 

   매년 5월이면 지용제가 있고, 지용 백일장, 연변 지용 시 문학상, 다채로운 행사가 이곳 옥천에서 열리고 있다한다.  생가를 뒤로 하고 돌아가는 길, 그 앞에 여전히 실개천은 흐르고 있었다.  그의 시 ‘향수’는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실버넷뉴스 남순자 기자   mulori45@silvernetnews.com


Posted by 물오리
 

               


  어머니 발은 하얗고 조그마하다.

  소화를 돕는 다는 첫 번째 발가락아래, 상응점을 찾아 꼭꼭 눌러 드린다.

  “ 그만 됐다.” 나이든 딸 팔 아플까봐 그만 하라 하신다. 어머니는 올해 87세시다. 요즘 노환으로 고생하시어 마음이 아프다. 영영 떠나시는 줄 알고 놀란 적도 몇 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헌데 이번에는 심상치가 않다. 언니랑 여동생, 우리는 주중에도 주말에도 안산 어머니 곁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말동무 해 드린다. 마흔셋에 막내아들을 낳으셨는데, 고맙게도 그 아들 덕에 말년을 편안하게 지내시고 있다.  남들은 편찮으시다 하면 ‘수를 하셨네.’ 하지만 내 가슴은 무쇠 덩이를 얹혀놓은 듯 무겁다. 어느 자식이 부모님 환후(患候)에 마음 편할까만 나는 유독 지은 죄가 크다.

  “엄마 죄송해요. 늘 걱정만 드리고 ”

  “팔자인걸, 아이들이 잘 컸으니 이젠 괜찮을 거다. 그리고 울지들 마라. 살만큼 살았고 때가 되어 가는 거니”

어머니를 중심으로 모두 둘러앉았다. 그리고 말씀을 들었다. 아플 때마다 너희가 잘해주어 오래 살았다는 이야기와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살라는 말씀을 하셨다. 동생도 나도 울음보가 터졌다.

  삼년 전 만해도 여름휴가를 함께 하셨다. 그해는 딸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 땅으로 떠났다. 멀지 않은 충청북도속리산, 그곳은 돌아가신 아버님과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어머님께서 즐겨 드시는 다슬기국은 법주사 인근에서 빠지지 않는 식단이다. 화양계곡에선 백숙을, 신탄진 묵 마을도 들리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식단을 찾아 일정을 잡았다. 자그만 키에 하얀 모시 한복을 입은 어머니는 성격만큼이나 깔끔하고 단아 하셨다. 법주사 앞에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할머니 젊으셨을 땐 참 고우셨겠어요.” 식당 아주머니 말이다. 방금 지은 따끈한 밥에 다슬기와 시래기를 듬뿍 넣은 국이 한 그릇 더 나왔고, 친정어머니가 생각난다며 주방 아주머니는 찬도 이것저것 신경을 써주었다. 어머니는 맛있게 드셨다. 법주사 경내를 보려면 오리 숲을 걸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어머니는 무리일 것 같았다. 무슨 수가 없을까 궁리를 하던 차에, 119구급차가 보였다. 염치불구하고 도움을 청하니 흔쾌히 승낙해준다. 긴급차량이라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덕분에 우리 딸들은 효도 할 수 있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화양계곡에서 먹는 백숙은 부드럽고 달콤했다. 가는 곳마다 어른을 우대하는 예의와 정이 있어 ‘살기 좋은 세상’ 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천(山川)도 수려하고 인심도 좋고 ,어른과 동행하니 우리도 대접을 받는다. 괴산을 지날 무렵, 장독대에 늘 심으셨던 빨간 맨드라미를 보시곤 반갑다하셨다.

“ 형님 형님 시집살이 어떱디까, 애고 애고 말도 마라, 시집살이 눈치 살이, 고추 당초(唐椒) 맵다 한들 시집살이 더 맵더라.”  어머니는 뒤 좌석에 앉으셔서 노래를 하셨다. 우리는 따라 부르며 박수를 쳐드렸다.


  시계가 자정을 알린다. 그만들 가라고 손짓을 하신다. 자식살림을 염려하심이다. 위급한 상황이오면 바로 연락을 하겠다는 막내 남동생의 말을 듣고 나는 차에 올랐다. 칠흑같이 캄캄한 안산고속도로- 내 마음만큼 어둡고 적막했다. 어머니 없이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언제나 따듯하게 보살펴 주셨다. 덕분에 아이들도 다 자랐고 나도 건강하다. 그 은혜를 말로 어찌 다하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큰 사랑 때문이리라. 어머니는 내 삶에 버팀목이었고 든든한 후원자였다. 어머니가 생전에 계시다는 것, 그것은 분명 홍복(洪福)이었다. 이른 새벽 전화가 울린다. 혹시나 하여 가슴이 내려 않는다. 수화기를 드니 막내다.

  “ 누나, 엄마드릴 좋은 약 없을까. 영양주사를 삼일 간격으로 놔드리면 어떨까. 엄마가 돌아가신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해, 한 삼년만 더 계셨으면 좋겠어.” 말끝을 흐린다. 젖이 모자라 암죽으로 키운 막냇동생, 내 등에 오줌을 싸대더니 어머니를 생각하는 신통한 말에, 한동안 찡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막내 말대로 다시 한번 해 보자. 우리는 합심을 했다. 언니는 보약을, 나는 영양제를, 동생은 순한 주사약을, 막내 댁은 부드러운 곰국을, 부드러운 빵과 인절미도 마련하고 어떻게든 입맛을 찾으셔야 한다는 생각이다.

  “엄마 막내가요 돌아가실까 봐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데요. 우리도 그렇고요, 힘내셔서 일어나셔야 해요.” 그러기를 달 반 어머니는 차도가 있으셨다. 요즘에는 주말에만 찾아뵙는다.

  “자네가 고생이 많네. 자네 덕이야”

  “ 제가 뭘요. 형님들이 하시면서” 막내 올케는 말한다. 연세가 있으셔서 얼마나 더 우리 곁에 계실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다시 웃음을 찾으셨고 거동도 하신다. 내년 봄에는 막내가 만들어 드린 미니 옥상 밭에 상추며 쑥갓, 오이 고추, 그 예쁜 푸성귀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요즘 내가 알게 된 것은 효심으로 드리는 약은 효과가 두 배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의 수명도 자식의 정성에 따라 연장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10월초 새털구름이 멋지다. 오늘은 내 마음도 깃털처럼 가볍다. 다들 모이는 주말,  살이 오른 꽃게를 샀다.

  “ 어머니 우리 왔어요.” 손을 잡으니 빙그레 웃으신다.  나는 가슴이 저려와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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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월 중순, 봄비가 내린다.

  아파트 주변에 있는 개나리가 꽃 피울 채비를 한다. 이맘때가 되면 마음 저편에 접혀있던 아픈 기억이 나를 흔들어 댄다. 1980년 봄, 그날도 가랑비가 내렸다. 큰 트럭에 이삿짐을 가득 싣고 종알대는 꼬맹이들과 충청도 고향에서 서울로 출발했다. 시원하게 뚫린 중부 고속도로 갓 길엔 노란 개나리가 봄비를 머금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결혼생활 9년. 딸아이 셋과 나를 두고 그는 급하게도 먼 길을 떠났다. 부부로 인연을 맺어 자식을 낳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아니면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며 변함없이 살라는 말은 혼례서약에 빠지지 않는 약속의 말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두 사람의 인고(忍苦)를 감당해야 하며,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임을, 우리는 때로 잊고 산다.

  슬픔은 남아 있는 자의 몫이라고 했던가. 그의 빈자리는 어린것들을 하루아침에 아빠 없는 아이들로 만들어 버렸다.   

“울고 싶을 땐 실컷 울어라. 그러나 조만간 울음을 그치고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아라. 좌, 우, 위아래를, 경거망동해선 안 되며 너를 바라보는 눈망울을 생각해라. 침착하게. 침착하게. 침착하게......”침착 하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하신, 내 은사님은 소식을 듣고 긴 편지를 보내주셨다. 비로소 나는 마냥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란 언제 어떻게 올지 그 누구도 모르는 일, 조금 일찍 떠났을 뿐이라고 납득은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년 탈상을 하고, 시어머님의 만류도 뿌리치고 나는 그의 흔적을 뒤로했다.

   이곳 시흥은 서울이라고는 했으나 변두리였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서울과 안양을 오가는 차들의 소음만이 간간이 들렸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조각배, 내 마음은 그랬다. 그로부터 나는 일하는 엄마가 되었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마음도 몸도 바빴다. 그러나 가슴엔 소망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잘 자라 주는 것과, 내가 시작한 일이 아이들과 함께 자라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 무렵, 우연히 박완서 씨의 단편,‘엄마의 말뚝’을 읽게 되었다. 자전적인 소설로 그분의 어머님은 자녀의 장래를 위해 대처(大處)로 나왔다. 삯바느질로 장만한 산꼭대기 허름한 집, 그 집은 자식을 잘 길러 보겠다는 엄마의 굳은 말뚝이 깊게 박혀 있었다. 시대는 달랐으나 뭔가 나에게 한 수 던져주는 것 같았다.

  우선 밝게 컸으면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어린이날은 하던 일을 놓고 아이들과 함께했다. 당시 세종 문화회관 대강당은 오월이면 어린이를 위한 뮤지컬 공연을 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관람하며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파랑새, 피터 팬, 이상한 나라 앨리스, 그 일은 여러 해 계속되었다. 지금은 작고한 분이지만 연극배우 추송웅 씨가 기저귀를 찬 아기 역할을 해서 관객의 박수를 받았고, 가수 윤복희 씨는 마녀로 분장해 열연을 했다. 돌아오는 길엔 조잘조잘 말들이 많았다.

  학기 초에는 잘 보살펴 달라는 편지를 담임선생님께 썼으며, 방학이 되면 엄마가 하는 일을 함께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를 태운 조각배는 그런대로 순항을 했다. 

 

  사람들은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한다고 하지만. 어떤 커다란 섭리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며, 어려울 때가 있으면 그 후에 기쁨을 꼭 마련해 놓으신다는 위로의 말을 고향 선배님은 늘 해주셨다. 덧붙여 그대는 잘해낼 수 있을 거라며 힘찬 응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 응원에 힘을 얻었다. 어려움이 생겼을 때도 씩씩하게 털고 일어섰고, 나를 보고 자라는 아이들도 힘이 생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내 주위에는 따듯한 분들이 있었다. 오랜 세월, 힘들 때 기댈 수 있었다.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뿐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 열심히 일하고 당당하게 살아라. 어두운 밤이 지나면 새로운 태양이 솟아오른다.”성년이 된 지금도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말이다. 

                                                              

노란 개나리가 그 동안 몇 번이나 피고 졌는지, 둘째가 결혼과 함께 보금자리를 찾아갔고, 큰아이는 조각을, 막내는 무역 일을 하고 있다. 영원한 타향이 될 거로 생각했던 이곳이 이제는 정이 들어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내 삶을 격려해 주었던 사람들, 그 마음을 나는 잊지 못한다. 봄볕이 화사하다. 아파트 주변 개나리가 피기 시작한다. 이제는 정녕 너를 슬픈 마음으로 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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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은 내 인생에 한줄기 청량한 바람이다.

   그것은 흐렸던 나의 젊은 날을 다시 맑음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삶이란 때로 평범한 일상에서 느닷없이 커다란 전환점을 긋고 간다.  삼십대 중반, 한쪽 날개를 잃은 그 혹독한 시기를 나는 책과 함께 보냈다. 이야기책을 좋아 하셨던 아버지 덕에 쉽게 책을 접하긴 했지만,  급작스럽게 바뀐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막막함을 견디기 위한 방편이었다.

  

   자주 서점을 찾았다. 뭔가 실 날 같은 삶의 끈이라도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만난 책이 당시 철학 교수이셨던 김태길 교수님의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라는 책이었다.  평범한 일상과 인간의 삶, 그 광대한 분야를 심도(心度) 있게 다루고 있었다. ‘삶이란 어떤 환경에서도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일이 있다’는 글귀를 읽으며, 희미하게나마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이기 시작 했다. 그 책은 나의 소중한 보물로 책장에 꽂혀있다.

  나는 책이라는 창을 통해 많은 것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동안 책을 가까이했다는 것, 그것은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은 단 한 가지의 덕목(德目)이다.

   이 십 여년의 세월을 생업에 종사하며 틈틈이 책을 읽었다. 제목이 좋아서 아니면 서문에 끌려서, 혹은 일간지에 소개된 신간을 골랐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엿보기도 하고 그들의 생각을 읽어갔다. 책장을 넘기며 웃고 울고 나도 모르게 내 가슴은 감동으로 파도를 쳤다. 그리고 밑줄을 그었다. 점차 글을 쓴 작가마다 독특한 향기가 있음도 알게 되었고 저마다 색채가 느껴졌다. 아름답고 오묘한 언어에 매료되어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리하여 수필가란 이름을 얻은 지 십년이다

 

  어느 해인가 과천 미술관에 갔을 때였다.

  본관 입구 잔디밭에 큰 사람이 서 있었다.  7척 장신의 사람은 외국작가가 만든 조형물이었다. 그 사람은 미술관을 뒤로하고 먼 산을 바라보며 ‘어-어-어’ 하고 리듬이 섞인 소리를 간헐적으로 내고 있었다.  제목을 보니 역시 ‘노래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노래라기보다는 마치 세상을 향해 하고픈 이야기가 많아 계속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인간은 끊임없이 노래하는 사람처럼 세상을 향해 하고픈 말이 많은 것인가.  그때 내 가슴속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림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갔다. 딸아이들을 보며 짠한 마음을 썼고 그 아이들을 보며 내 소망을 써 내려갔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름대로 사유(思惟)의 뜰을 거닐며 침묵했다.  한을 풀 듯 가슴속에 고인 물을 퍼냈다.  나의 글이 논픽션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임을 변명하지 않는다.  고인 물을 퍼내면 맑은 물이 고이듯, 내 마음속에 있던 앙금은 퍼 낸 만큼 맑은 물로 바뀌고 있었다.

   사회성이 부족해 편협했던 성격도 조금씩 너그러워졌다. 계절 따라 피는 꽃들, 창밖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새들, 비로소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인근에 있는 산행으로 하루를 연다. 낙엽을 밟으며 오르는 산은 늘 새롭다.  다람쥐 한 쌍이 겨울 준비를 하는지 부산하다. 나도 계절로 치면 가을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오르는 것처럼 어렵다.  허나 혼신을 다해 쓴 글이 활자화되면 그 희열이 기쁨으로 이어진다. 

   글감은 일상에서 특별히 경험하게 되는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데, 인간의 정이 느껴지는 이웃 이야기, 혹은 따듯한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글이 쓰고 싶어진다.  어떤 주제가 정해지면 며칠이고 생각에 잠긴다.  너럭바위에 앉아 혹은 잣나무 사이를 거닐며 글감을 정리한다.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어떻게 맺을 것인가, 그런대로 초안이 잡히면 글쓰기를 시작한다. 

  유머가 있고 위트가 있는 글, 그리고 해학과 품격이 있는 글을 쓰고 싶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이다.  다만 독자가 내 글을 읽으며 한번쯤 빙그레 웃어만 준대도 나로서는 감사하기 그지없다.

  이제는 청명하고 맑은 날의 글을 쓰고 싶다. 살아있는 것이 무엇이고 기쁨이 무엇인지, 그것들과 대화하고 싶다. 우리네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흥이 울림으로 다가오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Posted by 물오리
 

    


    ‘누구의 주제런가 높고 고운 산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조수미의 고운 목소리를 따라 흥얼거렸던 가곡금강산이다.

    그 아름다운 산을 정해(丁亥)년 오월에 친구들과 가는 길이다.  38선이라는 선을 긋고 국토가 반으로 토막난지 55여 년, 봉래산, 풍악산, 개골산, 그리고 금강산, 산수가 빼어나 불리는 이름이 계절마다 다른 명산을 드디어 찾아가는 것이다. 가깝다는 이유로, 혹여 녹슨 철마가 다시 달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미루었던 곳이다.    

   화진포아산 휴게소에서 등록을 마치고 오후 3시경 버스는 북쪽을 향했다.  철새들만 넘나든다는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지나 40여 명을 태운 차는 서서히 움직인다.  둥글게 걸쳐있는 철조망이 보이고,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민둥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윽고 북측 검문이다. 사람보다는 빨간 줄이 선명하게 박혀있는 제복이 먼저 눈에 띈다. 순간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상잔의 6 . 25, 지금은 아니 계시지만, 인민군이라면 치를 떨듯 두려워하셨던 내 어머니, 비행기 소리만 들어도 공포로 고조되었던 순간들, 그 유년의 기억이 아슴아슴 살아났다.  막상 그들을 마주하고 보니,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기분이 착잡했다.  검열하는 동안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 있고, 촬영 금지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었을 때, 역시 이곳은 자유스럽지 못한 곳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드문드문 엎드려있는 집들은 마치 1960년대를 연상케 한다.  남강다리를 건너 숙소에 들자 해는 하루를 닫으려한다.  창을 열어 밖을 보니 파란 바다와 해금강 호텔이 멀리 보인다.  해변은 고즈넉하다. 산과 바다, 그리고 모래밭, 아무리 둘러보아도 전혀 낯설지가 않은데, 이곳이 그 오랜 세월 내왕이 금지되었던 북녘 땅이던가, 참으로 믿기지 않았다. 적십자주관으로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도 부모와 형제를 이곳에 두고 그리움으로 애타 하는 실향민이 많다. 분단이라는 현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고성군 온정리-  아침공기는 맑고 쾌청하다. 짙어가는 녹음은 향기를 내뿜는다. 우리는 조반을 서둘러 먹고 비로봉 아래 있는 구룡폭포로 향했다.  

  “처음 버스에서 내려서 내 손으로 흙을 만져 보았어요.”

  “아, 그러셨군요.”

  일행 중에 팔순을 넘기셨다는 어른은 이곳이 고향이라 했다. 그분 얼굴에선 감회가 서렸다. 그 마음 밭이야 오죽하겠는가, 이 땅을 밟고도 그리던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다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수림대,  삼록수, 옥류담, 굽이굽이 비경을 감상하며 산을 오른 지 두 시간, 숨이 턱에 닿았다. 이윽고 구룡폭포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모두 환성을 질렀다.  계곡을 울리는 폭포소리와 웅장하게 쏟아지는 물줄기, 그 물은 바위에 떨어져 다시 튀어 오르는데, 어찌나 영롱한지 마치 옥 같은 구슬이 흩어지는 것 같았다.  높이 74m 아래 못까지는 120m, 이 거대한 폭포는 우리나라 삼대 폭포에 든다하였다.  동해의 구룡(九龍)이 유점사 53불과 싸우다 패하여 이곳에 숨었다는 전설이 있다.  깎아 세운 것 같은 석벽(石壁), 그 끝자락에는 일곱 빛깔 무지개가 걸려있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절승(絶勝) 앞에 나는 한동안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서너 해 전이지 싶다. 덕수궁미술관에서 북한산수 전시회가 있었다.  어느 화가였는지 이름은 잊었지만, 힘차게 쏟아지는 구룡폭포 앞에서 망연히 서있었던 생각이 난다. 그림을 보며 가슴속까지 시원했던 그 느낌, 기억이 생생하다. 바로 이 장대한 폭포를 앞에 두고 화가는 붓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서화가의 붓끝을 떨리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뿐인가, 금강산을 유람하며 신산(神山)의 자태에 감흥 하여 시를 읊은 이가 어디 한둘인가.  그 유명한 ‘흙’의 이광수도 (金剛山 遊記) 한시를 지었다.

    구룡이 숨은 뒤로 소식이 끊겼으니,

    천지 풍운(天地風雲)이 일 없는 지 오래로다.

    구룡연 물결이 움직이니 기다릴까 하노라.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은 변할 줄을 모른다.  선조들의 발길이 닿았을 것을 생각하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다. 구룡폭포의 절묘한 풍광명미(風光明媚)를 가슴에 담고 내려오는데, 목련관 앞에서 처녀아이가 말을 건넨다.

   “막걸리 한잔 맛 보시라요. 친구 분들 이래요?”

   함께 자란 동무들이라니까 반갑다며 생글 생글 웃는다. 열여덟 살쯤 되었을까, 얼굴은 잘 익은 사과 같았다.  우리는 조그만 탁상에 둘러앉았다. 두부안주에 한잔을 마셔보니 어릴 때 그 맛이라, 아버지 술 심부름하면서 한 모금씩 몰래 마셨던 농주 맛, 우리는 모처럼 추억 속을 거닐었다.  이곳은 분명 수십 년의 세월을 되돌려 놓고 있었다.  골마다 옥수가 흐르고 폐부 속까지 씻어줄 것 같은 맑은 공기, 공해 없는 하늘은 티 없이 고왔다. 양념이 적게 들어간 음식은 담백하여 본래의 맛을 느낄 수 있어 개운했다.

  구룡연 코스 곳곳을 설명 해주는 처녀안내원, 옥류관에서 냉면을 잘라주던 여성종업원,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에 아가씨들, 내가 만난 북쪽 여성들은 동글동글한 미인들이었다. 그것도 얼굴에 손을 대지 않은 천연 미인 말이다. 너도나도 성형이 난무 하는 시대에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삼일 째 되던 날, 만 가지 형상을 하고 있다는 만물상은 아쉽게도 안개에 묻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 다시 한 번 찾아오라고 남겨 놓은 거야. 가을에 오면 얼마나 아름답겠니.”

   아쉬워하는 나에게 친구는 말한다.  금강산 일 만 이 천봉, 이 기기묘묘한 산을 구경하려면 한 달이 걸린다 하였다.  삼일 동안 외금강 코스를 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큰 기쁨이다.  우리는 훗날을 기약했다.  그때는 기차를 타고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귀가하는 버스에 올랐다.  이 땅을 떠나며 못내 서운한 것은 민간인을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먼발치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꼬맹이와 그 아이 엄마로 보이는 젊은 아낙이 전부인데 초등학교 일학년쯤 되어 보였다.  초소마다 서 있는 청년들은 가무잡잡한 얼굴에 체격이 왜소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현실은 삶 자체가 궁핍해 보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과연 그 날은 언제일까. 

    “안녕히, 다시 오라요.” 확성기에서 여자인민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왔을 때, 내 가슴 한쪽은 짠하게 저리고 있었다.       

       


Posted by 물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