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중순, 일산이 직장인 막내딸을 보러 갔습니다. 마침 이곳 청주에서 일산으로 가는 직행 버스가 있어서 행보가 수월했습니다. 지난해, 올해, 집안에 생긴 일로 힘들어하는 막내를 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얻은 사랑이, 그 딸 키우랴 직장 일하랴, 너무 많은 일로 숨 가쁘게 사는 딸이 안쓰럽고 안타까웠습니다. 어미가 멀리 있고 나이가 있어 도와주지도 못하고 애면글면 속만 끓이다가 며칠이라도 돌보아 주자 작정을 하고 집을 나셨습니다. 봄이 오는 고속도로 풍경은 수런수런 나무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점심시간에 만난 막내 얼굴은 그래도 화색이 돌아 적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딸네 집에 도착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벽에 걸린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어찌나 반갑고 감사한지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막내를 보살펴 주셨군요.” 맘속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 집에서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난 딸이 막내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선교를 나가겠다고 해서 좀 놀라긴 했지만, 뜻이 분명해서 가는 길을 막지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 집 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들을 위로하며 주님 말씀을 전했겠지요.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직장 생활을 하며 시나브로 주님과 멀어졌습니다.
직장은 많은 일을 하게 합니다. 가끔 집에서도 회사 일을 합니다. 그냥 쉽게 월급을 주지 않지요. 육아도 그렇습니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기쁨도 있지만,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을 요하는 일인지, 엄마들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주님대신 엄마들을 보내셨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잘해 내고 있어서 내심 고마웠습니다.
선물로 주신 사랑이가 어느새 초등생이 되었습니다. 입학식 사진을 보내왔는데 친구들 속에 서 있는 걸 보니 대견했습니다. 드디어 우리 사랑이도 사회생활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코끝이 시큰했습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딸은 회사로, 사랑이는 학교로,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대충 집안 정리를 하고 저녁은 무엇을 해 줄까 생각하다가 닭 볶은 간장 졸임으로 정했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태권도 배우며 놀다가 학원 차로 오는 사랑이를 맞이했습니다. 직장에서 돌아오는 딸과 손녀를 위해 정성껏 저녁상을 차렸습니다. 식사 기도를 드리고 오붓하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할머니 맛있어요.” 사랑이가 엄지손을 번쩍 들어 표현해 주었습니다. 며칠 함께 하고 돌아오는 날, 십자가 앞에서 기도드렸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출장 간 박서방, 손녀 사랑이, 우리 막내딸, 언제나 보살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여기 세 식구, 주님 계시는 성전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 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국립정신병원에서 12년 동안 정신 분석 전문의로 일했다. 경희대 의대, 성균관대 의대, 인제대 의대 외래교수이자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김혜남 신경 정신과의 의원 원장으로 환자들을 돌보았다. 두 아이의 엄마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그녀는 마흔 살까지만 해도 '내가 잘했으니까 지금의 내가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1년 마흔세 살에 몸이 점점 굳어가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나서 병마와 싸우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주어진 모든 역할을 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를 닦달하며 인생을 숙제처럼 살아오다 보니 정작 누려야 할 삶에 즐거움들을 너무 많이 놓쳐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것은 자신이 없는 데도 세상은 너무나 멀쩡하게 잘 돌아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들이닥친 불행을 도저히 받아 드릴 수 없었다. 세상이 원망스러워 아무것도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아직 죽은 게 아니며 누워 있는 다고 바 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병이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았다. 그래서 일어났고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지만 계속 미뤄 둔 일들을 먼저 하기 시작했다. 지은이가 쓴 앞날개 글이다. 책은 4 단락으로 나누어 있다. 30년 동안 정신분석전문의로 일하며 깨달은 인생의 비밀/ 환자들에게 미쳐해주지 못한 ,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 내가 병을 앓으면서도 유쾌하게 살 수 있는 이유/ 마흔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다. 책 내용은 일상 삶에 위안과 깨우치을 주고 있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불행이 찾아올 때가 있으며 완벽한 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누구나 서툴고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도록 놔두지 말 것이며 모든 것을 상처라고 말하지 말 것과 직장 선후배를 굳이 좋아하려고 애쓰지 말란다. 슬픔을 등에 지고 가지 말 것이며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법,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행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와 나도 남편을 르고 남편도 나를 모른다는 사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말 것과 때로는 버티는 것이 답이다. 더 많은 실수를 저질러 볼 것과 상처를 입더라도 많이 사랑하며 살라, 한 번쯤은 무엇에든 미쳐 볼일, 힘든 때 일 수록 유머를 잃지 않을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 소제목만 봐도 읽을거리가 참 많다.
사업에 실패하고 무기력 늪에 빠져 이번 생은 망했다고 말하는 40대 남자 이야기다. 그는 무슨 말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슨 말을 하나 보자 ' 하는 식으로 째려보고 있었단다. 죽어라 일했는데 그 결과가 참담한 것에 화가 나 있었다.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스스로를 포기해 버린 상태였다. " 만약 아들이 당신처럼 자라서 지금 당신의 위치에 서 있다면 뭐라고 말해 주고 싶으세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그에게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칭찬해 주라고 했단다. 마음 가짐을 바꿈으로 무기력 증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또 다른 인생을 꿈꾸기 시작한다는 것 , 한 번쯤 생각하게 하고 읽기에 유익한 책이다.